상처

일반자료 2023. 3. 30. 09:49

글 찾기 ( 아래 목록 크릭 또는 왼쪽 분류목록 클릭)

외통궤적 외통인생 외통넋두리 외통프리즘 외통묵상 외통나들이 외통논어
외통인생론노트 외통역인생론 시두례 글두레 고사성어 탈무드 질병과 건강
생로병사비밀 회화그림 사진그래픽 조각조형 음악소리 자연경관 자연현상
영상종합 마술요술 연예체육 사적跡蹟迹 일반자료 생활 컴퓨터
상처

빈집에 혼자 내버려져 있던 경험을 여러 번 가지고 있는 아이가 있다.

그러니까 엄마는 일하러 갔거나 계 하러 갔거나 그도 아니면 시장에 가느라 빈집에 남겨져 있던 경험을 가진 아이들이 있다. 낮잠에서 깨어난 아이는 빈집에 남겨져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생각한다. 모두 나를 두고 어디로 간 것일까. 아이가 아는 것은 집 안의 방들과 마루 그리고 부엌 그리고 광 안이나 다락 속이 전부이다. 아니면 집 앞의 골목 학교 가는 길….

그 바깥의 세계는 아이가 알 수가 없고, 안다 해도 제힘으로 어쩔 수 없는 미지의 공포이다. 식구들이 자신의 손이 미치지 않는 그 경계 밖으로 나가 버리고 아무 소식도 없을 때, 남은 아이에게 달려드는 것은 무력감과 공포뿐이다. 그리고 그 공포의 이름은 자신이 버리면 받았다는 절망감이다. 이 공포는 단 한 번 빈집에 남겨져 보았거나 단 한 번 엄마에게 자신의 예쁜 생각이 무참히 거절당했다거나 하는 경험이 아니라, 그런 여러 가지 경험의 반복으로 인해 아이에게 각인된다. 아이가 멀쩡한 성인으로 자란다 해도 그 버림받는다는 것에 대한 감정은 아이의 가슴속에 공포의 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아이는 이 공포의 핵을 결코 알 수도 없고 인식할 수도 없다. 자신은 그저 그런 집안에서 자랐다고 자신의 신상 명세서를 친구에게 담담히 이야기하거나, 아니면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난 어린 시절에 대해 도무지 생각나는 것이 없어….

이런 말을 자주 하는 성인들의 특징 중의 하나는 친밀한 어떤 관계의 위기가 닥쳤을 때, 이런 생각을 자주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네가 나를 버리기 전에 내가 너를 먼저 너를 버리고 말 거야. 그들은 어머니가 자신을 혼자 내버려 두었던 벌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상대방에게 줌으로써 일종의 복수를 꾀하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너를 떠나는 것, 그것은 자신이 알기로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특징 중의 하나는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 것만큼의 빈도와 강도로 결코 그 만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누군가와 헤어지는 것에 대해 원초적으로, 이미 마음의 핵이 되어버린 죽음보다 강한 공포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네가 나를 떠나기 전에 내가 너를 버릴 거야, 하는 생각을 해본 일이 있거나 한 번의 헤어짐으로 인해 필요 이상의 고통을 오래 받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면 당신은 먼저 눈을 감고 당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아야 한다. 세월의 더께 때문에 그 상처들은 흐려지거나 덧씌워졌을 뿐 상처는 언제나 거기 그대로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공지영 - ´착한 여자´ 중에서-



'일반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언  (0) 2023.03.30
개 조심  (0) 2023.03.30
있을 때 잘해  (0) 2023.03.30
한 마디  (0) 2023.03.30
구종인간(九種人間)  (0) 2023.03.30
Posted by 외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