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비늘 반짝이는 유년의 강둑에선
발꿈치 들어가며 몇 번이고 키를 쟀지
어려선
내일을 업고
무럭무럭 자랐단다.
새벽을 문신하는 산마루에 올라 앉아
큰 소리 질러가며 눈썹을 휘날렸지
젊어선
오늘을 업고
거드름을 피웠단다.
기우뚱 흔들리는 저녁 해를 바라보며
그 많은 추억들의 빗장을 열어놨지
늙어선
어제를 업고
그럭저럭 사는 거다./이우종(1925~1999)
'유년의 강둑'은 빨리 지나서 늘 그리운 법. 땀을 닦다 보면 '물비늘 반짝이는' 맑은 시절의 물가들이 더 간절하다. 눈썹 휘날리던 시절 역시 한참 지나 돌아볼 때에야 귀한 줄 알게 된다. 그때의 푸른 '거드름'들이 젊음의 특권이듯 맹목 같은 이 더위도 한때의 뜨거운 분출일 터. '어제를 업고/ 그럭저럭 사는' 내일로의 길이라도 '빗장 열어' 놓고 돌아볼 추억의 층계들이겠다.
하고 보면 야속하기까지 한 이 폭염의 고공행진도 딛고 나갈 하나의 층계다. 곧 처서니 계절의 층계에도 가을바람이 들 것이다. 바람 중의 최고로 치는 처서 바람을 당기며 지친 몸을 추스른다. 길게 보면 이 또한 잠시의 가혹한 찜통 속. 살아 있기에 맞는 진한 땀이라고 '오늘을 업고' 나선다.// 정수자 시조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