拓戶鉤簾愛晩晴(탁호구렴애만청) 창문 열고 발을 올려 비 갠 저녁 내다보니 夏天澄綠似秋生(하천징록사추생) 여름 하늘 맑고 파래 가을 온 듯 선선하다. 已聞巷裏樵車入(이문항리초차입) 벌써 골목에는 덜컹덜컹 나무 실은 수레 들어왔고 正憶田間秧馬行(정억전간앙마행) 무논에는 이제 한창 모심는 기구 다니겠군. 靑嶂排空回舊色(청장배공회구색) 푸른 산은 허공을 밀쳐 옛 빛깔로 돌아왔고 綺霞沈樹澹餘情(기하침수담여정) 고운 노을은 나무를 잠가 아쉬운 정을 가라앉힌다. 今宵解帶不須早(금소해대불수조) 오늘 밤은 띠를 풀고 잠을 자러 서둘지 말고 坐待星河拂滿城(좌대성하불만성) 성안 가득한 은하수를 마냥 앉아 기다려야지.
구한말의 시인 명미당(明美堂) 이건창(李建昌·1852~1898)이 여름철 비가 개고 난 뒤의 저녁 풍경과 감회를 썼다. 비가 개어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보니 가을이 불쑥 온 듯 청량하다. 날이 개자마자 나뭇짐을 실은 달구지가 벌써 골목길을 다니며 나무를 판다. 들녘 논에서는 농부들이 일을 서두를 게다. 허공을 밀치며 푸른 산은 짙푸른 빛깔을 회복했고, 노을은 하루해가 가는 아쉬운 마음인 양 저문다. 여름날 이렇게 상쾌한 기분을 맛보기 참 힘들다. 잠을 자지 않더라도 서울의 밤하늘을 맑게 뒤덮을 은하수를 꼭 봐야겠다.//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조선일보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