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伴林僧宿 (야반임승숙) 밤 되어 스님하고 함께 잤더니
重雲濕草衣 (중운습초의) 짙은 구름 무명옷을 적시었구나.
巖扉開晩日 (암비개만일) 해 늦어 사립문을 여는 소리에
棲鳥始驚飛 (서조시경비) 잠든 새가 그때야 놀라 날았네.
조선 중기의 명사 백호(白湖) 임제(林悌·1549~1587)가 언젠가 산사를 찾았다. 스님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이 되어 함께 잠을 청했다. 깊은 산중이라 짙은 구름이 산을 온통 둘렀다. 입은 옷이 모두 축축 젖었다. 얼마나 잤을까? 절문을 열고 보니, 아! 언제 저렇게 해가 중천에 떴을까? 아침이 된 줄도 모른 채 나도 스님도 쿨쿨 늦잠을 잤구나. 그런데 우리만 늦잠 잔 것이 아니다. 문 여는 소리에 나뭇가지에서 새들이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 날아올랐다. 승려 진감(眞鑑)에게 주었다는 이 시는 참 싱거운 시다. 산에 구름이 많이 끼어 늦잠 잤다는 말일 뿐이다. 하지만 이 산중에서는 저 세상과 시간이 달리 간다. 구름이 속세의 시간을 멈춰놓아 나도 스님도 그리고 새들마저도 깊은 잠을 잘 수 있다. 세상의 무거운 질서와 의무로부터 벗어나 몸이 원하는 대로 자유로운 공간이다. 하룻밤만 잤는데도 마음이 열리고[開] 깨달음에 놀랐다[驚]. 몸이 가뿐하다.//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