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등성이 배롱꽃이 하롱하롱 흔들렸다
물에 젖은 소맷자락 높이 들어서
이제 어느냐 나를 불렀다
배롱나무 몇 그루 심어 놓고서
어머니를 버리고 산에서 내려온 후
무너져 내릴 듯 아슬아슬 한 여름
석 달 열흘 소원은 한 가지뿐이라고
열 손가락 마디마다 불을 켜 달고
평생의 그 기도를 잊어버리지도 않고
앞뒷산 메아리로 다시 보는 배롱꽃
내 어머니 뻣가루로 피어나더니
세상에서 진하고 제일 예쁜 진분홍
부끄러이 다가서서 더듬거렸다
눈물로는 용서를 빌 수 없어요
고요에 흔들리는 듯
고요를 흔드는 듯
배롱꽃 그늘로 스며들었다
배롱꽃 그늘에 나를 묻었다
/이향아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