喪兒後 初出湖上 悲悼殊甚 詩以志之
딸을 잃고 처음 강가로 나갔다
藥圃花園屋左右(약포화원옥좌우)
집의 좌우에
약초밭과 화원이 있어
閑居何處不從行(한거하처불종행)
어딜 가든
따라오지 않은 적이 없었다.
傷心未忍開書帙(상심미인개서질)
마음이 아파도
책은 펼쳐보지 않는다.
日他時憶爾擎(쇄일타시억이경)
책을 말리던 그날
네가 받쳐 들던 모습이 떠올라서다.
영조 시대에 천재로 알려진 지산(芝山) 심익운(沈翼雲·1734~?)이 어린 딸을 잃고 썼다. 사는 집의 좌우 양편에는 약초밭도 있고 화원도 있어 한가로이 집에 머물 때면 자주 나가봤다. 그때마다 딸은 꼭 뒤따라 나와 함께 걸었다. 이제는 집에 틀어박혀 있어도 약초밭이고 화원이고 가질 않는다. 그나마 아픈 마음을 잊기에는 책을 읽는 것이 좋을 텐데 그 책도 펼치지 않는다. 햇볕에 책을 말리던 날 제가 도와준다고 날라 오고 받쳐 들고 법석을 떨던 생각이 떠올라서다. 집 안팎 어디에도 딸이 남긴 추억이 서리지 않은 곳이 없다. 자리를 박차고 마포 강가로 나갔다. 딸의 흔적이 없어도 흐르는 눈물 주체할 수 없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