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승리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여왕말을 희생시키겠다는 수법 자체가 중요한 것도 아니다.
내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여러 개의 시금석이 있다. 아이디어나 금언, 실제 있었던 일, 자주 참고로 삼는 생각들. 나는 이런 시금석들을 마치 여행 중에 지도를 보는 것처럼 자주 꺼내어 본다. 이런 보물 중에는 체스에 관한 이야기도 하나 있다.
여러 해 전 체스 대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프랭크 마샬이라는 사람이, 지금까지도 장기판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로 여겨지는 한 수를 두었다. 러시아 대표와 맞붙은 중요한 대국에서, 마샬은 여왕말이 심각한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을 알았다. 여왕말은 아주 중요한 공격말이었고 또 몇갈래 도망칠 길이 있었던 터라, 관전자들은 마샬이 으레 다 그렇듯이 여왕말을 안전하게 뒤로 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샬은 숙고끝에 주어진 허용 시간을 다 써 버렸다. 그는 여왕말을 집어들고 잠깐 생각하는 듯 하더니 아주 엉뚱한 곳에 말을 놓았다. 상대편의 공격말 세 개가 여왕말을 먹을 수 있는 위치였다.
마샬은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나 쓸 수 있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로 그의 여왕말을 희생시켰다.
상대편과 관전자들은 당황했다.
러시아 대표는 루크 (Rook, 한국 장기의 차에 해당함) 로 여왕말을 잡아 먹은 후 대국을 계속했다.
대국이 계속되는 동안, 이것이 마샬의 전략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교묘한 심리전을 시도한 것이다. 그의 심오한 작전은 상대방의 대국관을 흐려놓았고, 그의 기술과 운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상대방은 점점 기세를 잃어가고 있었다. 여왕말이 어떻게 잡혔든 이제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러시아 대표가 패배할 확률이 점점 더 높아져갔다.
마샬이 둔, 위험한 한 수의 충격에서 벗어난 관중은 장기판위에 돈을 뿌려댔다. 마샬은 결국 희귀하고 담대한 작전으로 승리를 쟁취했다. 여왕말의 희생이 승리를 부른 것이다.
마샬의 승리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여왕말을 희생시켰다는 그 수법 자체가 중요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마샬이 통념을 뛰어넘었다는 것이다.
마샬은 관습적이고 정통적인 대국 양식에서 벗어나, 오로지 자기의 판단만으로 정면 승부를 걸었던 것이다. 결과에 상관없이 마샬은 진정한 승리자였다.
나는 이 이야기를 수도 없이 써먹곤 했다.
내 삶의 지침이 되는 점검표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여왕말을 버릴 때가 아닌가?´
예기치 않은 상황에 처할 때 마다 이 구절을 떠올리곤 한다.
이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나의 ´시금석 모음´에서 어린 시절의 참고서를 끄집어 내어 보기로 한다. 여러분은 ´짜맞추기 게임´을 기억하는가? 나무 조각들이 길쭉한 원통형 곽 안에 들어 있다. 요즘 나오는 것 들은 재료가 플라스틱으로 바뀌었지만.
미술을 가르칠 당시, 나는 학기 초가 되면 이런 짜맞추기 게임을 했다. 학생들의 창조 본능을 자극하고 싶어서였다. 월요일에 학생들 앞에 선 나는 조그만 게임 세트를 내놓고, 간단한 말로 모호한 과제를 내 주곤 했다.
˝짜맞추기 세트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보라. 주어진 시간은 지금부터 45분간. 그리고 주말까지 날마다 45분씩.˝
꽤 많은 학생들이 단번에 떨어져 나갔다. 그들은 별로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이 과제가 시시해 보였던 모양이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궁금한 정도였고, 그래서 학급의 다른 친구들이 어떻게 해오는지 기다리는 눈치였다.
몇몇 학생들은 통 안에 들어있는 설명서를 읽어 보고, 거기 나와 있는 견본을 따라 만들었다.
상상력을 발휘하여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학생도 있었고, 얼마나 높게, 혹은 얼마나 길게 만들 수 있는지 알아내려고 시도하는 학생도 있었다.
게임 세트의 속박에서 벗어나 더 자유로운 표현을 찾는 학생이 딱 한 명 정도는 있곤 했다. 연필, 클립, 공책 종이, 또는 아무거나 화실에 뒹구는 것들을 섞어서 만든다. 때로는 교실을 빠져나가, 구내 식당에서 주스 빨대를 모아 오거나 학교 운동장에서 조그만 나뭇가지나 작대기 같은 것을 가져오기도 했다. 한번은 한 학생에게 권해 본 적이 있다. 자유 시간이 날 때마다 짜맞추기 게임 기구로 설치미술을 해 보라고., 그가 만든 작품은 화실의 천정을 가득 채우고, 집의 지하실을 거의 다 차지했다.
그런 학생이 나타난 것이 나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예외적으로 창의력을 발동시키는 학생.
그 학생은 교사인 나에게도 중요한 가르침을 베푼 셈이다. 덕분에 나는 뜻하지 않은 보조 교사를 거느리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의 창의력이 다른 학생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창의력을 발휘하는 학생들을 ´여왕말 희생자´라고 생각한다. QS(Queen Sacrificer)식 사고방식의 소유자.
QS식 사고방식은 다방면에 적용이 가능하다. 아주 작은 일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나는 학교 동창회실에서 자원 봉사를 하다가 그런 학생을 하나 만났다. 동창회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주요 독지가들에게 우편물을 발송하던 도중이었다. 봉투에 우표를 붙이던 학생이었다. 그 학생은 우표에 침을 묻혀서 봉투에 붙이는 식이 아니라, 봉투 위 적당한 자리에 침을 묻힌 다음 그 자리에 우표를 붙혔다. 침을 묻힌 자리에 우표를 얹어 놓고 한쪽 주먹으로 꽝 한 번 내려 치는 식이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표의 접착제는 맛이 영 틀렸다. 반면에 봉투에서는 괜찮은 맛이 난다. 게다가 이 방식대로 하면 우표도 더 잘 붙는다.
이런 사고 방식을 인정하는데는 어려운 점도 있다.
나는 남다른 사고 방식을 갖고 있는 학생들을 잃을 뻔한 위기를 맞곤 했다. 그들은 거의 예외없이 이렇게 잘라 말한다.
˝저는 그렇게 창조적인 사람이 못 되는 데요.˝
˝자네는 잘 때 꿈을 꾸지 않나?˝
˝물론 꾸죠.˝
˝그럼 흥미있었던 꿈 이야기를 하나 해 주지 않겠나?˝
그러면 학생들은 꿈 이야기를 쏟아낸다. 날아다니거나, 타임머신을 타고 다른 혹성에 갔던 이야기. 머리가 세 개나 생겼던 이야기.
˝그것 꽤 창조적이구만. 누가 그런 꿈을 꾸게 해 주나?˝
˝예? 꿈은 자기 혼자 꾸는 것 아녜요?˝
˝정말인가? 밤에 잘 때 말이지?˝
˝그럼요.˝
˝그걸 낮에 해보지 그래. 수업 시간에 말야. 알겠나?˝
내친김이니 시금석 이야기를 하나 더 하는 것으로 이 조각그림 맞추기를 끝내기로 한다.
8월 하순의 찌는 듯이 더운 어느 날이었다. 그리스의 크레타 섬. 오래된 항구 도시인 카나리아에서였다. 나는 해변가에 자리잡은 카페의 차양 아래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섭씨 38도를 넘는데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였다. 게다가 매우 북적댔다. 관광객들과 웨이터도 날씨만큼이나 열이 바짝 올라 있어서 자칫하면 말다툼이 일어나기 십상인 분위기였다.
내 옆 테이블에는 매력적으로 생긴 젊은이 한 쌍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마(麻)로 된 주름진 여름옷에, 비싼 가죽 샌들을 신고 있었다. 작은 체구, 올리브색으로 그을은 얼굴, 검은 머리카락에 구레나룻을 기른 남자였다. 금발의 여자는 호리호리한 몸매에 얼굴빛이 하얘ㅆ다. 웨이터를 기다리면서 그들은 손을 잡고, 속삭이고, 키스를 하면서 킥킥대거나 크게 웃곤 했다.
갑자기 그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방파제로 테이블을 들고 가더니 부두의 얕은 물가에 내려 놓았다. 남자가 첨벙대며 의자 두 개를 가져왔다. 그는 허리까지 차는 물에 여자를 정중히 앉힌 후 자기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보고 있던 사람들은 웃으면서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웨이터가 나타났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러고는 식탁보와 냅킨, 식기 들을 집어들고는 물 속으로 첨벙대며 들어가서는 연인들의 식탁을 차리고는 주문을 받았다. 웨이터가 물가로 나오자 이번에는 웨이터를 향해 박수가 쏟아졌다. 몇 분 후, 웨이터가 얼음통에 든 샴페인과 유리잔 두 개를 쟁반 위에 얻은 채 나타났다. 웨이터는 주저하는 기색도 없이 샴페인을 갖다주러 물 속으로 철퍼덩 뛰어들었다. 이 한 쌍은 서로를 위해, 또 웨이터와 군중을 위해 축배를 들었다. 군중은 답례로 환호와 함께 식탁 위에 놓인 꽃들을 집어 던졌다.
바닷물 위의 테이블은 이제 세 개로 늘었다.
더워서 숨이 막힐 것 같았던 분위기는 축제 분위기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여름 정장을 차려 입고 물 속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안 될 게 뭔가? 손님들을 바닷물 속에서 맞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안 될 게 뭔가?
관습의 선을 넘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다.
반드시 교실일 필요도 없고, 체스 게임일 필요도 없다.
인생은 조각그림 맞추기 같은 것이다. 여왕말을 버려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문학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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