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아내가 한없이 울었습니다. 아내의 어깨가 너무나 왜소해 보여서 힘을 주어 꽉 안아주었지만, 아내는 숨이 넘어갈 듯 ´꺽꺽´ 소리를 내며 울었습니다.
삶은 참 천국과 지옥 그 중간쯤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겨우 내 나이 서른넷 그리고 26개월 된 아들, 사랑스러운 나의 아내 그것이 제가 가진 삶의 전부이자 생의 활력소입니다. 그런 제 아내가 작년 여름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병원 두 군데에서 검사했지만, 결과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으로 나왔어요. 그래서 저는 평소에도 아내에게 따뜻한 말은커녕 늘 밉살맞은 누이처럼 참 많이도 아내 마음을 상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병원 문을 나서자마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 IMF에 돈만 엄청나게 날렸지, 검사는 또 왜 이리 복잡해? 당신은 밥만 줄여서 아랫배만 들어가면 모든 병은 사라질 거야 알아?˝
라고 염장 지르는 말만 했지요.
가뜩이나 내성적인 아내는 고개만 푹 숙이고 죄지은 사람처럼 제 뒤를 졸졸 따라오다가
˝여보. 배고파요. 우리 무라도 먹고 가요˝
라며 저를 붙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역시 회사 빼먹고 헛수고한 것 같은 마음에
˝집에 가면 밥통에 밥이 가득한데 지금 제정신이야.˝
라고 쏘아붙였지요
그 뒤 아내는 시름시름 앓다가 큰 병원에서 대장암이란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내의 그 똥배가 밥을 많이 먹어서 나온 게 아니라 암세포가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라니….
저는 정말 나쁜 놈입니다. 그토록 아내를 사랑했으면서도 늘 아내에 대한 묘한 자격지심으로 아내를 힘들게 했습니다.
언젠가 아내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의 머리를 감겨주는 장면이 너무도 인상적이었다며 저에게도 감겨 달라고 했습니다.
감상적인 아내를 탓하며 그냥 넘겨버렸지요. 그런데 며칠 전 아내의 머리를 감겨보니 참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지녔더군요. 한 번도 염색하지 않은 새까만 머리에 유난히 많은 머리숱
˝여보 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아내가 죽는다는 생각은 꿈에도 생각한 적 없었는데 아내의 그 말에 저는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아내에 대한 화라기보다는 저에 대한 질책이었어요. 다행히 아내는 수술을 무사히 마쳤고 수술 결과도 좋아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어요. 의사 선생님도 천운이라는 말씀을 몇 번이나 하시더군요. 하늘도 저의 아내를 버리지 않는걸. 보면 아마 아내의 그 착한 마음씨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6개월이 지난 지금 아내는 다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재발할 우려가 너무 큰 병이라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어제 아내는 무서워서 삶이 힘겨워서 그토록 울었던 것입니다.
근데 밤새 설사약을 먹고 장을 비워야 하는 그 고통의 순간에도 아내는
˝당신 빨리 자. 그래야 내일 출근하지˝
라며 금세 울음을 그치더군요. 이렇게 사랑스러운 여자 보신 적 있으세요?
오늘 아무 이상 없다는 결과를 받고 건강한 웃음으로 집에 들어올 아내를 생각하며 저는 새로 사다 놓은 향수 샴푸를 만지작거려봅니다.
오늘 아내가 들어오면 다시 한번 머리를 감겨 줄 생각이거든요.
/오미희-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중에서-시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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