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궁녀의 법적 신분은 종9품 내인에서부터 정5품 상궁을 최고로 하는 여 관직이다.
영조 때는 줄잡아 6백여 명, 고종 순종 때도 덕수궁 창덕궁에 2백여 명이 있었다지만 입궁 30년이 돼야 오를 수 있었다는 상궁이 몇 명이나 됐는지 모르겠다.
왕실의 사노예 역할을 해야 했던 궁녀의 운명을 하룻밤 사이에 바꿔 놓을 수 있었던 것이 승은(承恩)이다.
왕과 하룻밤을 보내는 승은을 입으면 자녀를 낳아 후궁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특별 상궁´이라는 지위로 뛰어올랐다.
한때나마 왕의 총애를 받아 후궁이 되면 숙원(종4품) 소원(정4품) 숙용(종3품) 소용(정3품) 숙의(종2품) 소의(정2품) 귀인(종1품)이 될 수 있었고 운 좋게 낳은 아들이 세자나 왕이 되면 비록 비(妃)는 아니더라도 정1품인 빈(嬪)이 될 수 있었다. 아들이 왕에 추존되면 생모도 빈의 칭호를 받았다.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는 궁중에서 막일하는 무수리였다고도 하고 침방 내인이었다고도 한다.
지금 청와대 옆 궁정동에 있는 육상궁(毓祥宮)은 영조가 왕위에 오르기 8년 전 이미 세상을 떠난 생모 숙빈 최씨의 신위를 모시기 위해 1724년에 세운 묘궁(廟宮)이다.
1882년 화재로 소실됐다가 이듬해 다시 지었다.
고종은 묘궁의 효율적 관리와 경비 절약 등을 위해 1908년 흩어져 있던 후궁의 묘(廟)들을 육상궁 경내로 옮겼다.
영조와 추존된 진종의 생모 정빈 이씨의 연우궁, 선조의 후궁이자 원종(추존)의 생모 안빈 김씨의 저경궁, 숙종의 후궁이며 경종(추존)의 생모 희빈 장씨의 대빈궁, 영조의 후궁으로 장조(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선희궁,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생모 수빈 박씨의 경우궁이 들어서 한 때는 ´6궁´으로 불리기도 했다.
1929년 이은공의 생모 귀인 엄씨의 덕안궁까지 옮겨 세워져 지금은 속칭 ´7궁´으로 불린다.
68년 무장 공비사건 이후 출입이 금지됐던 7궁이 오늘부터 공개된다고 한다.
조선왕조의 묘사(廟祀)제도와 왕들의 생모에 대한 효성을 살펴볼 수 있고 왕조문화의 그늘에 피었다 져간 덧없는 영화(榮華)의 주인공인 후궁들의 얘깃거리가 널려있는 사적(史蹟)이다.
/시마을- 한국경제신문 고광직 논설위원 kjko@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