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1973년 제9대 국회의원까지 계속 당선되어 8선 의원이라는 기록을 세운 정일형 박사는 유엔총회 한국 대표, 외무부 장관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정치사에 그 이름을 남긴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이름과 함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였던 이태영 여사의 남편으로 누구보다 그녀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음이다.
그는 1927년 연희전문 문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의 어머니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갖은 고생을 하며 외아들을 키웠고, 미국에 유학까지 보냈다. 그런데 아들은 8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분명히 자신이 보낸 돈도 다 떨어졌을 텐데, 어찌 된 일인지 아들은 온다간다는 소식이 없으니 어머니는 하루하루 애가 타는 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에서 함께 공부한 아들 친구라는 청년이 찾아왔다. 어머니는 그저 반가워서 아들 소식부터 물어보았다. 그러자 청년은 눈물이 글썽해진 눈으로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어머님, 죄송합니다. 아드님을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으실 텐데, 저 때문에…”
“그게 무슨 말인가?”
“저, 그러니까, 제가 급한 일이 생겨 귀국해야 했지만, 돈이 없어 가지 못한다는 걸 알고 일형이가 자기 돈을 내주며 먼저 가라고 하기에 저만 먼저 왔습니다. 일형이는 지금 모자라는 여비를 마련하느라 아직도 미국에 있을 겁니다.”
청년은 어머니에게 몇 번이나 고맙고 또 죄송하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섭섭하기 그지없었지만 어릴 적 설이 되면 없는 돈에 명주 대님이라도 만들어 주면 해가 지기 전에 다른 아이에게 풀어 주고, 일본에 항의하느라 열네 살 때부터 경찰서에 잡혀 다니기를 십여 차례인 아들다운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좋은 생각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