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을 갖고 이에 열중하는 이는 비교적 수명이 길다는 통계’가 있다는 내 말끝에 그는 ‘너만 오래 살고 나는 일찍 죽으란 말이냐?’며 지동치듯 부르짖는다. 평소와 생판 다르게 정색하여 노려본다. 마주 달려오는 열차 같다. 그 외길에서 나는 비킬 수가 없었다. 그대로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내 속내다.
믿음에 관하여 누구도 이처럼 반골(叛骨)일 수가 없다. 두껍게 깔린 그 무엇과의 갈등, 앙금이 내 말에 흔들려서 맑고 맑은 자기 껍질을 뚫고 터져 나오는 울부짖음 같다.
같은 문제에 부닥치는 많은 이가 내면의 저항과 비웃음을 미소로 둘러싼 외모로 포장해 비껴가건만 그는 포효(咆哮)하듯 토하며 막 부닥친다. 그는 내면에 스미는 믿음이 남모르는 그 어떤 계기에서 얻은 일시적 거부감으로 벽을 치고 덧붙여 철옹성 안에 자기를 가두고 지키려 했을 것이다.
이 껍질을 두드려 자각(自覺)의 부림으로, 스스로 밖에 귀를 기울이도록 권하고 싶은 충동에서 벗어나지 못한 내 심기가 그 벽을 밖에서 두드려, 마침내 불을 지른 꼴이 되었다. 이에 대한 그의 거부 의사였다.
그는 언젠가는 믿음의 길에 들어설 것이다. 확신한다. 비껴가지 않고 대척(對蹠)의 길목을 밟아 부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씽긋이 웃거나 수긍하는 척, 시늉이라도 했을 것이다. 이런 이는 믿음과는 담을 쌓고 사는 것이 틀림없으니 그렇다.
일의 발단은 그도 나도 부위는 다르지만, 같은 병명, 암과 겨루는 동병상련의 내 심사가 가시지 않았던 그때였지만 이제 그는 먼저 갔다.
모름지기 마지막쯤엔 그가 가야 할 곳, 그를 이승에 보내신 이에게 혼신으로 의탁했을 것이다. 그리고 평안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그를 위해 기도하며 나날을 이어간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