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을 뽑으며

시 두레 2013. 2. 16.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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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을 뽑으며

 

            이사를 와서 보니

            내가 사용할 방에는

            스무여 개의 못들이 필요 이상으로 박혀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어디에라도 못을 박는 일

 

            내가 너에게 못을 박듯이

            너도 나에게 못을 박는 일

 

            벽마다 가득 박혀 있는 못들을 뽑아낸다.

           창밖으로 벽돌지고 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선명하게 드러나는 못 자국

            그 깊이에 잠시 잠긴다.

 

            뽑음과 박음, 못을 뽑는 사람과

            못을 박는 사람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못을 뽑고 벽에 기대어 쉬는데

             벽 뒤편에서 누가 못질을 한다. /주창윤

 

    새 방에는 아무것도 들이지 않으리라 다짐해도 곧 이것저것 늘어난다. 물건이 늘어나고 생각도 늘어난다. 미처 몰랐던 사실들이 드러나며 근심도 늘어난다. 물건은 바닥을 다 메우고는 벽으로 기어 올라가기 시작한다. 하나씩 못이 늘어난다. 넝쿨식물처럼 못을 타고 올라가는 갖가지 누추한 생(生)의 징표들. 새로 만나는 사람도 방과 같다. 처음엔 아무 선입견이나 편견 같은 것이 없어서 신선한 메아리도 살았지만 곧 나의 온갖 욕망의 잡동사니들이 걸린다. '나'라는 방에도 타인들의 못들이 가득하다. 내 맘대로 빼지지 않는 것이 비극이다. 입춘이 지났다. 심실(心室)의 못을 다 빼고 도배를 한다. 다시는 못을 박지 않으리라! 그저 비워서 잠시 앉아다 가는 것들만 들이리라. 그게 생(生)이니까.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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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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