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솔

외통궤적 2008. 4. 2.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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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001106 관솔

'관솔'을 손가락 길이로 잘라 잘게 쪼개어 불소시개로 드리면 그렇게 좋아하시든 어머니! 늘 바쁘기만 하시던 어머니, 그 속에서도 생 솔가지로 불 지피실 때의 허둥대시든 어머니! 지금 당장 나타나시어 자식 사는 모습에 놀라워하실 어머니! 죄스럽고 황송하기만 합니다.


" 관솔이 불소시게로는 꽤 좋은 것이긴 해도 솔 옹이를 따는 데는 손 조심, 발 조심, 눈 조심해야 할 터다. 소나무에 올라가지 말고, 잔솔밭에 가면 생가지 처낸 그루터기가 새까맣게 됐거나 송진이 하얗게 말라붙은 것이래야 오래된 것이다. 오래된 것이라야 불쏘시개로 좋단다." 책보 내던지고 꼴망태 메는 내 허리춤을 잡고 한사코 밥 한술 떠먹이시며 하시는 할머니 말씀이시다.


일 년 삼백 육십오일 설날 추석날 빼고는 하루도 쉼 없이 논밭에서 혹은 돈벌이되는 일터에서 허리가 휘시도록 자수성가의 꿈을 현실로 실현하시는 아버지를 도와 거의 매일의 일과가 된 이즈음, 오늘도 이렇게 나의 산행은 시작되었다.


이미 '홀 낫' '뭇 낫'을 가릴 줄 아는 나니 뭇 낫 한 자루를 망태 속에 쑤셔 넣었다. 더 어릴 적 어머니와 매 흙 파러 강터고개 길을 여러 번 올라 다녔고, 봄이면 진달래꽃 산수유 꽃 꺾으러, 아니지, 꽃 따먹으러 다닌 낯설지 않은 야산을 찾아간다.


깡마르고 작은 내 키에도 생각 없는 나무 가지는 튕겨 얼굴을 때리고 있다. 집신바닥을 뚫고 올라온 나무그루터기가 오른쪽 발가락을 찌르는 순간 왼발이 땅에 닿으면서 수그린 얼굴에 또 풀 잎 끝이 눈꺼풀을 찌른다. 깡충 춤도 출 수가 없다.


할머니의 말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늘 내 버릇대로 목표를 항해 내달리는 우직함은 천성이런가.

평평한 산꼭대기에 올랐다
. 하얗게 뿜어 나온 송진 묻은 옹이거나 빨갛다 못해 새까맣게 된 솔 옹이에 눈이 닿았다. 그루터기는 육중한 뭇 낫에도 튕기기만 하며 겨우 낫 자국만 남기는데, 솔 딱지 튕길세라 이번에는 눈을 감고 내리치니 찍히는 자리가 또 다르다. 한자리에 거듭 맞아도 잘릴까 말까 한 솔옹이는 온통 부스러기가 될지언정 잘리지 않고 뭇 낫의 날만 부러뜨린다.



벗어놓은 망태 속엔 흰 속살이 드러난 솔가지가 드물게 있긴 해도 쓸 만하셨던지 이 빠진 손자귀를 내어오신다. 그리고 툇돌 앞에 않으셔서 손자새끼 눈 다칠세라, 손 찍을세라 멀찌감치 내쫓으시고 가는 한숨 내쉬시며 조심스럽게 쪼개 내시는 할머니. 손가락 마디와 꺼내놓은 솔 옹이가 어찌 그렇게 닮았는지 

나무나 사람이나 고생하고 외부로부터의 침입에 상처 입은 흔적은 세월을 두고 깊어 가는 것인가
!



할아버지 쓰시든 돋보기라도 내다 드릴 것을. 할아버지의 유품을 들고 나왔대서 혼났을 것이 틀림없는 할머니 속마음을 읽을 생각도 못한 철부지의 생각이다 


아들 앞에 다가와 서신 어머니는 삼베 행주치마에 묻은 검정 숯 자국을 비켜서 내 땀범벅 낯을 닦아주셨다 

흙 굴뚝을 돌아 나온 소슬바람에 매운 연기가 또 한 번 스쳐가고
, 연이어 두엄더미 돌아 나온 맞바람에 거름 향이 향긋했다./외통-

유일한 인생을 남을 위해 사는 것은
살만한 가치 있는 인생이다.-A. 아인시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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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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