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7.001115 희
윤에게 하나밖에 없는 누이동생이 학교에 갈 나이가 되도록 문밖출입을 못하는 중병을 앓고 있었다. 잘 자라든 '희' 가 몇 해 전부터 시름시름 하더니만 허리가 붓고 창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럭무럭 자랄 때인데도 제대로 자라기는커녕 창백한 얼굴이 되여 등이 굽어지며 굽은 등의 환부에서 분비물이 나오며 성장이 멈추었다.
희의 고통은 오죽이나 할까. 마는, 이를 백방으로 치료해도 완치하지 못하는 윤의 부모님과 온 식구들의 하루하루는 침울하고 무겁게 갈아 앉아 있었다. 윤은 다른 집 여자아이들의 뛰노는 모습을 볼 때마다 희의 생각에 우뚝우뚝 설 때가 있었다. 그 때마다 윤의 눈은 환각에 쌓여 희의 얼굴을 확인하려 애써 그 앞에 다가가다가 머리를 흔들곤 했다.
윤이 방학을 맞아서 객지생활을 봇짐에 싸들고 고향집에서 지날 때의 어느 날 이였다. 눈을 뜨고는 차마 볼 수 없는, 차라리 감고 싶은 광경이 벌어졌다. 아니 아예 증발하거나 땅 속으로 꺼져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럴 때를 일러서 환장이라는 표현이 있었든 것도 같다. 무슨 말로도 나타낼 수 없는 슬프고 슬픈 모습이었다.
할머니 무릎에서 희 스스로, 짚으라기 같은 두 팔에 매달린 단풍잎같이 얇디얇은 손바닥으로 제 무릎을 짚고 힘겹게 일어나서 치마폭을 돌리며 팔을 벌려 나비같이, 아니다 천사와 버금가는 춤을 추어가며 오빠 윤을 향해 야윈 얼굴에다 웃음을 그리며 제 마음과 제 영혼을 오랜만에 만난 오빠 윤에게 실어 보낸다. 몇 바퀴를 돌며 팔을 벌려 아래로 내렸다 어깨까지 올렸다, 때로는 쪽 팔로 때로는 양팔로 발장단에 맞추어 가며 허리를 짚어가며 돌았다. 학이 깃을 펴는 것 같기도 하고 솜구름이 솟대 위를 머무는 것 같기도 한, 부드럽고 연한 춤사위였다.
윤에게 비친 희의 춤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이고 이 세상 모든 이에게 들려줄 노래와 노래 말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학교에서 부르는 아이들 노래 소리와 풍금소리가 바람을 타고 커졌다 작아졌다, 때로는 끊어 졌다 이어 졌다 한다.
‘이젠 끝날 시간이 됐다 희야, 다음 시간 종치면 또 하자’ 할머니의 이 말씀에 희의 춤은 그치고 할머니는 다시 희를 무릎에 앉혔다.
윤은 달려가 희를 조심스럽게 보듬었다. 앙상하게 가벼웠다. 더는 참지 못하고 할머니와 더불어 소리 내어 울었다. 말이 필요 없다. 더 할 말이 없다. 윤은 밖으로 튀어 나왔다.
윤이 하늘을 향해 또다시 눈을 감는다. 윤은 희에 대한 모든 것, 오늘까지 있었을 인고를 떠올린다. 뜸을 뜨면서 참는 희의 희망에 어린 눈동자와 고통에 다문 어금니와 절망에 떨어지는 눈물이 백지 같은 얼굴 위에 얼룩지는, 나날을 지냈을 희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면서 몸은 자지러든다.
조용하든 방안에선 희의 짧고 꺼지는 비명이 새어나왔다. 또 뜸을 뜨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윤의 가슴은 하얗게 비었다가 잠시 후엔 새까만 먹지 장이 되었다.
희가 그렇게도 가고 싶던 이승의 학교엘 가지 못하고 끝내 학을 타고 솟대를 거쳐서 먼 나라 학교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은 윤은 또다시 하늘을 향해서 눈을 감는다.
희야 네 몫을 다해 살았어야 할 오빠 윤이 네가 내려다보는 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음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외통-
-오늘의 하나는 내일의 둘의 가치가 있다.-B.프랭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