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각

외통프리즘 2008. 6. 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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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각 風角

1516.010212 풍각風角

들어보지 못했던 말이 봇물 터지듯이 밀려나와서 한참동안을 우리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삼천리금수강산, 자유, 권리, 의무, 남녀평등, 문맹퇴치, 미신타파, 토지개혁, 산업국유화, 당, 정부, 위원회 등 수없이 많은 새 낱말이 작은 내 머리통을 어지러이 흔들며 밀어 넣는다. 그 중에는 우리의 민속놀이인 씨름도 있고 그네뛰기도 있었다. 특히 ‘삼천리강산’은 공짜로 생긴 듯이 기뻐하며 불러댔다.

 

억압받고 통제되던 시절은 가고, 해방과 함께 자유(?)가 강산을 뒤덮었다. 이러면서 모든 것이 이기적으로 편향되고 파당 중심으로 해석되어 자기이외에는 아무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당면한 문제를 차근차근 푸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토해냈다. 모두 자기의 것을 들어내면서 누군가를 잡고 한풀이하듯이 외쳐대고 날뛰었다. 이런 가운데 흥을 돋우는 놀이마당도 한 몫을 차지하고 나왔다.

 

불 것과 두드릴 것과 퉁길 것은 모조리 길거리로 들고 나와서 제가끔 있는 재주를 마음껏 보여주었다.  이러고도 신이 안 풀리는지, 마음 내키는 대로 소 잡고 돼지 잡고, 추렴하는 행사를 벌이고 있었다.

 

이 마당에는 애들이고 어른이고 선생이고 학생이고 머슴이고 주인이 따로 없이 끼리끼리 모이기만하면 먹자판을 벌였다. 허긴, 먹는 것도 한이 맺히긴 했으니 누가 막을 수 있을까만 이런 세상을 처음대하는 나는 지극히 흥미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떡을 해먹을 수 있나, 엿을 고아 먹을 수 있나, 흰 이밥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나, 모든 것이 통제되어 배급제였던 것이 하루아침에 그 울타리가 없어졌으니 이렇게 되었다. 더구나 내 것을 내가 먹는 것이니 아무도 탓할 사람이 있을 수 없다. 그 반응은 일 년을 못 넘기고 나타났으니 흉년을 맞아도 도움은커녕  입김도 낼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이런 형편에도 멋 바람은 얼마나 드세게 불었든지. 숨겼든 옷감이나 일용품들이 자랑이라도 하듯이 터져 나왔으며 저마다 낼 수 있는 멋은 다 부리곤 했다.

 

위생관념은 미쳐 생각할 겨를이 없고 멋 부리기만 넘쳐흘렀다. 이때까지 빡빡 깎던 머리가 긴 머리 일 수록이 멋쟁이처럼 됐고 이제까지 입던 '국민복'이란 녹색의 옷을 벗어 팽개치고 앞이 터진 양복에다가 낡은 넥타이라도 매야 행세를 하는 때가 됐다. 또 청년들은 저마다 자기 집에 처박혀있던 악기를 들고 나와 동네사람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보이려고 발광했다.

 

가히 교향악단을 방불케 하는 무대도 꾸몄다. 한풀이식 잡소리였든지, 날조된 엉터리 악단이었든지 그것을 가릴 이유는 전혀 없는, 그야말로 신풀이 한마당을 만들곤 했다. 조예 깊은 사람이 없으니 평할 사람도 없었다. 그리하여 신바람은 한껏 더했다.

 

당시의 유행이었던 아코디언은 가두 행렬에 어울리지 않는 악기였지만 누가 감히 막을 수 있겠는가. 있는 대로 들고 아무데나 나서는 만능의 대중 모으기 기구로 그 명성을 날린 것이 바로 이 아코디언이었다. 그러면서 아코디언이 몰고 온 낱말은 ‘삼천리강산’이었다.

 

해방된 날부터 한 해 동안은 노래와 구호와 시가 ‘삼천리강산’으로 꽉 차 있었건만 시간이 갈수록 '삼천리강산'이란 낱말은 그 쓰이는 빈도가 점점 줄어지더니 육이오 전란을 겪으면서 어느 쪽도 '삼천리강산'이란 말을 입에 담지 안았다.

 

뿐만 아니라 아예 우리나라 지도를 반 동강으로 잘라서 만들면서도 아무런 부끄럼 없이 지낼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양쪽에 이루어 졌다는 것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이 무렵부터 이미 하나하나가 무너졌고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지켜야 할 ‘삼천리강산’을 포기하지 않았나 하여서 오랫동안 섭섭했다.

 

이런 것을 왜 유독 나만 느끼는 것인지 씁쓸하기만 하다. 얼마나 돈이 더 드는지는 모르겠으나 ‘삼천리강산’의 지도를 그려서 남북을 함께 각자의 목적에 따라 공부하고 감상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면 모름지기 통일은 앞당겨지지 않았을까 하는 어린애 같은 생각도 지울 수 없다.

 

풍각쟁이들이 부른 ‘삼천리금수강산’이 아니라면 그림만이라도, 지도만이라도, 생각만이라도 '삼천리강산'을 그리고 새겼으면 좋겠다. /외통-

최대 다수에게 초대의 행복을 마련해 주는

그런 행동이 가장 좋다.(,F.허처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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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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