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

외통프리즘 2008. 6. 7.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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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9.010219 단장


행사 때마다 말끔하게 단장하신 분, 두꺼운 뿔테안경을 쓰고 말석에 앉아 근엄하게 표정 짓고 계신다.


양손을 주먹 쥐고 무릎에 얹어놓은 품이 무슨 일이 있으면 일순에 앞으로 뛰어나갈 차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준비된 태를 남다르게 갖추고 계신 분이 ‘경방(警防) 단장’이시다.


젊고 앳되게 보이는 그분은 우리 반 친구의 아버지인데 내가 하도 어려서 그 집 내력이나 전력을 알 길이 없다. 그대로 어린 내게 비쳤던 피상적인 모습만 판에 박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다.


조그마한 시골 면에 관공서란 것이 있어야 고작 ‘면소’와 ‘주재소’다. 민간으로 자체 조직을 갖고 있는 ‘경방단’은 동네의 장정들로 짜여서 경찰을 도와서 소방과 구조 활동을 하는데, 때마다 순사 나리가 지시하고 수습할 뿐이니까 경방단은 별로 실효가 없는 명목상의 단체일 뿐 그 실 '주재소'에서 관장하는 꼴이다.


무릇 단체는 공동의 목적으로 행동하기 위해서 일정한 시간과 통일된 복장을 필요로 하는데, 동네의 경방단은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어색하다.



불 끄는 연습을 하거나 실제로 불이 났을 때 각자의 멋대로 입은 옷차림으로 바퀴가 두 개 달린 소방펌프를 밀고 당기고 들고뛰는 것이 볼만하다. 그럴 때면 '국민복(?)'을 입고 종아리에는 '각반'을 친 단장과 대조되고, 조선 사람과 일본사람의 양끝에서 고민하는 단장의 몸짓이, 어정쩡한 몸짓이 역력히 드러난다.


끌리는 힘이 있어서? 보이지 않는 정신이 맞물려있어서? 그래도 급한 것을 먼저 해야 하는 것, 때문에 피차가 어쩔 수 없어서? 마치 오월동주(吳越同舟)같은 단장(斷腸)의 쓰라림을 그 때는 못 느꼈다.


하지만 이제 생각해보면 누군가가 담당했어야할 몫을 기꺼이 짊어진 젊은 단장(團長)의 단장(斷腸)의 비애를 나는 이해할 수 있다. 누구든지 그때에 살던 사람 치고 꼴을 못 보아서 잠시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나, 눈감고 귀 막고 입 막고 화석같이 굳었다가 때가 돼서 움직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편에 섰거나 다른 편에 섰거나 다 같이 있어야 될 이유 때문에 한몫을 다한 것뿐이다.


마치 살아있는 대지 위에 소슬바람이 불다가, 먹구름을 몰고 휘몰아치는 태풍이 불다가, 어느새 일시에 돌개바람으로 변해서 땅위의 잡것들을 쓸어서 멀리 바다로 내동댕이치는 회오리가 일기도 하는데, 우리가 어찌 소슬바람만을 맞으려고 문밖에 선 것을 탓하며 우리가 왜 태풍을 피해서 태풍의 눈 속으로 숨은 것을 손가락질 할 것이며 우리가 무슨 권리로 회오리를 피해서 돌 뿌리 잡는 것을 질타(叱咤)할 것인가. 모든 것은 힘으로 응집되는 것이니 그 힘이 무엇이며 그 힘을 어떻게 모을 것이며 그 힘을 언제 쓸 것인지를 살필 때까지는 잊지 않고 참아 기다리면 될법하다.


단장은 세상을 달리하고서도 곧바로 적응됐다. 이 삶이 슬기로운지 우직하게 바닥에서만 기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가름하기 어렵다. 그래도 인류는 이 환경 적응을 어느 짐승보다 잘했기 때문에 비록 고통을 받기는 해도 멸종을 면하는 것이 아닌가하여서 그 쪽으로 손들어 주고 싶다.


단장은 새로운 조직의 단장이 또 되었고 이번에는 연미복 같은 양복에다가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고 ‘도리우찌’모자를 덮어쓰고 왼팔에는 붉은 완장을 찼다. 단장은 여전히 윗물에 노닐면서 강바닥에 엎드려서 활동반경을 못 늘리는 어족(?)을 위해서 물위의 정보를 열심히 헤엄치며 꼬리처서 전해주었다.


먹을 것이 어디에 떨어지고 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자세하게 일러주었다. 그는 우리 마을을 위해서, 후손을 위해서 지금도 열심히 일할 것이다. /외통-


발전의 크기는 그것이 요구하는 희생의 크기에 의해 명가된다.(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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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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