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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구'의 참 말뜻은 모르지만 내가 알고 있기는 운송 수단중의 하나로 불린다고 안다 . 나무로 만든 것으로 우마차가 다닐 수 없는 곳을 거뜬하게 다니는데, 특히 오르매가 센 곳에서 이용되며 소가 끌고 다니는 일종의 썰매 같은 것이다 . 소와 사람이 함께 다닐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간다 . 송아지에게 달구지를 메이기 전에 길 드리기로 쓰이는 도구이기도 하다 . 즉 , 물댄 논을 써는 연장에서 그 끝에 달린 빗살과 같은 것이 없을 뿐이다 .
철원에서 갓 이사 온 ‘ 덕재 ’ 친구를 따라서 친구네 아버지가 농사 짖는 먼 곳 , 깊은 골짜기에 발구의 뒤를 따라 한나절을 갔다 . 친구 따라 강남 간다드니 내 꼴이 그 꼴이었다 . 아직은 그런 말도 모르고 , 그저 동무가 있으면 어디든지 좋기만 한 개구쟁이 시절이었다 .
우리 집엔 달구지는 있어도 발구는 없다 . 발구는 쇠붙이가 붙어있지 않은 나무로만 만들고 크기도 달구지에 비해서 놀이 감처럼 작고 아담하다 . 그래서 짐을 싣는 곳도 아주 작고 땅에 닿을 듯 낮다 .
내가 먼저 슬며시 발구 뒷자리에 매달렸다 . 얼마를 가다가는 아예 앉아본다 . 우리 둘은 번갈아 가며 탔다 . 얼마동안은 그대로 갔지만 호사스럽고 재미있는 이 발구에서 내가 내려오질 않았으니 ‘ 덕재 ’ 는 내게 질세라 저도 발구 위에 올라왔다 . 이때 소의 걸음이 느려졌다 . 그러니 소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고 방울소리는 요란해질 수밖에 , 곧 ‘ 덕재 ’ 아버지는 뒤돌아보게 됐다 . 소를 사랑하시는 ‘ 덕재 ’ 아버지는 우리를 발구에서 내리도록 하신다 . 아쉽지만 할 수 없다 . 발구는 쉬지 않고 가는데 우리끼리 멈추어서 네 탓 내 탓만을 할 때가 아니다 .
골짝에서 내려오는 바람은 나뭇잎을 훑고 그늘을 스쳐서 , 한여름임에도 우리들의 목덜미를 제법 시원하게 한다 . 산은 첩첩이 우리가 가는 길 양옆을 병풍치고 맑고 푸른 손바닥하늘만 빤히 열려있다 . 수리 한 마리가 무엇을 노리는지 우리 위를 맴돈다 . 골짝을 흐르는 개울은 쳐진 나무 그늘에 숨어서 돌 틈을 빠지는 뾰족한 소리만 요란하다 . 가재 발 씻는 길가의 다락 논에는 새파란 물총새가 벼 포기 위를 미끄럼 타면서 물가 숲속으로 숨어버린다 .
철거덩 철거덩 쇠 소리는 나는데 사방은 아무것도 없다 . 소리는 점점 커진다 . 끊이지 않는 깡통소리는 골짝을 울려서 메아리친다 . 적막해야 할 골짝은 웬일인지 동네 한 복판처럼 우리의 귀를 시끄럽게 한다 . 아무리 둘러봐도 소리날만한 곳은 없다 . 허수아비 하나가 한 팔을 올렸다 내렸다 한다 . 살아 있는 허수아비다 . 덕재에게 물어서 알았다 . 이는 논두렁에다 만들어 놓은 작은 물방아 고에서 나는 소리이고 허수아비의 팔놀림도 물방아를 이용해서 살린 허수아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 들짐승들을 쫓는 자동 인기척이다 . 물방아는 들짐승으로부터 농사 피해를 예방하는 경고용 물건인 셈 이지만 내게는 매우 흥미 있는 놀잇감이다 .
한나절 , 그 물방아는 나의 물고 와 고에 붙은 깡통 조정으로 해서 그 소리가 길게 짧게 크게 작게 무디게 날카롭게 갖가지로 변했다 . 또 허수아비의 팔놀림도 빨리 되거나 더디게 되게 했다 . 그 날의 그 곳 짐승들은 새로운 소리에 놀라서 며칠을 그곳에 얼씬하지도 못했을 것 같다 .
발구래야 들어갈 수 있고 발구래야 농사지을 수 있는 골짜기가 내가 사는 곳에도 있다는 것이 놀랍다 . 넓은 들판만 바라보고 자라든 내겐 이 논두렁 물방아 골짜기가 잊혀 지지 않는 추억의 산촌 풍경으로 남아서 , 늘 옛 동무를 그리게 하고 나를 그 산골짝으로 데려다 준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