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래잡기

외통프리즘 2008. 6. 2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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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래잡기

1617.001209 술래잡기

술래가 무슨 권한이 있는지 도둑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고 서로는 아무 뜻도 없이 그저 한쪽이 달리면 다른 쪽은 쫓아가 잡기로 기를 쓴다.

 

나와 같이 앉아서 같은 책상을 갈라 쓰는 동무와 벌어지는 둘만의 놀이는 좀 달랐다. 발단은 어느 한쪽이 상대편의 허를 찌르는 글 몇 마디를 몰래 써서 옆에 앉아 있는 상대편 옆에다 슬며시 놓아두면 그 쪽지는 짝에게 전달되며 이를 받아본 옆자리 아이가 흥분하고 그 해명을 얻어내려고 잡으러 다니는 실질적인 감정 놀이이다. 놀이가 아니라 싸움이라 해야 옳을 것 같다.

 

어느 날부터인가 내게 욕이 돌아 왔고 붙잡히면 혼이 날만 한 것을 아는 옆자리 친구는 시간이 끝나려 할 때 몸부터 빼서 통로를 향해서 움찔거린다. 그 자리에서 붙잡으면 되련만 우물쭈물하다가 놓친다. 느린 내 동작을 그는 간파한 듯 재빠르게 허리를 굽혀서 애들 사이를 빠져나간다.

 

천천히 그의 행방을 눈여겨보다가 가까이 가면 도망가는, 딱히 왜 도망가는지 모르면서 나만 보면 도망간다. 그러니까 그 무렵엔 금방 금방 감정이 순화되어서 잠시 전에 노여웠든 것이라도 책상을 떠나서 다른 친구와 말 몇 마디만 하면 얼음 녹듯이 녹아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맑고 깨끗해진다. 그러면서도 상대가 도망을 가면 나도 따라가는, 그런 의미 없는 놀음이 된지 일주일이 됐다.

 

 

어느 날 지치고 지친 우리 둘은 얼굴을 마주하고 운동장 한 복판에 앉았다. 무슨 이유로 도망갔으며 무슨 이유로 따라왔는지를 따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둘 다 하는 말이 걸작이다. ‘네가 쫓아오니까 내가 달아났지’, ‘너는 왜 나를 잡으려고 하는 것’이냐 고 되묻는다. ‘야 네가 도망가니까 내가 너를 잡아서 왜 도망 다니는지를 알아보려 죽자 사자 쫓은 것’아니냐 하면서 며칠 전의 것들은 모조리 논의의 대상으로도 삼지 않는다.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도 할 것 없이 운동장의 모래를 서로에게 뒤집어씌우고 또 달아났다. 그러나 도망가는 쪽은 여전히 상대방 친구다.

 

못 잡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쫓아오는 나를 놀리듯이 도망가고 도망가는 놈의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인내를 시험하듯 끝을 보는 나다. 도망가는 애의 머릿속은 지혜로 넘치고 쫓아가는 애의 머리는 의지로 충만하다.

 

이것이 우리인간 부류의 양대 산맥이다. 남이 쫓아오면 나는 돋보이려 도망가고 남이 나와 같아지면 손해 보는 것 같아서 비집고 솟아오른다. 그래서 발전한다고 하겠으나, 어쨌든 특출한 부류는 있게 마련이니 이 특수층을 따르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자기의 위치를 지킴으로서 다른 이가 도망가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맹목적으로 쫓는 우를 면할 것이요 쫓아가기 위한, 도망가기 위한 사회적 비용을 줄일 것이다.

 

이 얼마나 간단하고 명쾌한 대답이냐 말아다. 헌데 앞서의 나와 같이 달아나니까 쫓아가는 것이라면 안 쫓아가면 안달아 날것이 아닌가 말이다. 답답하다. 내가 모르는 것인지, 세상이 술래잡기 모양으로 숨어서 돌아가는 때문인지 도무지 아리송하다.

 

예전엔 숨겨져서 이루어지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보이는 것, 아는 것, 들은 것만 가지고도 어깨를 나란히 못하게 하는 시간이 길고 멀었다. 그래서 그들 특수층의 과시용 전시욕이 장시간 충족되어서 머물 시간이 맗았기 때문에 여유 있게 지내면서 조금 조금씩 움직여 도망갔다.

 

하지만 요새는 그 정보가 지극히 빨라서 도망가는 이가 눈을 밝히고, 주먹을 쥐고, 이를 악다물고 도망가지 않으면 어느새 바로 내 곁에 내 어깨와 나란히 서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아예 자지 않고 뛰는 것이다.

 

지구상의 어떤 나라는 이런 비합리성을 국민들 스스로 알아서 자리를 뜨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도망가지 않고, 뛰지 않음으로 서로가 평온하고 행복하게 사는 나라도 있다는 것이다.

 

모르는 탓이겠지만 우리도 이렇게 운동장 한 복판에 앉아 낯을 맞대고 털어놓아 빈 마음이 된다면 그들처럼 실낙원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다만 다시 일어나서 모래를 서로에게 끼얹는, 어리석은 짓은 말아야 할 것이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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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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