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발자전거

외통프리즘 2008. 6. 2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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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8.001209 세발자전거


새 문물의 보급은 행정을 맡은 읍면을 통하여, 경찰의 치밀한 민심파악으로 도움을 얻으면서 펴졌다.


자동차가 없던 시절,  느리지만 기차를 통하여 이동하는 것이 보편적었다. 그래도 전통마을인 우리 동네는 여전히 주춧돌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새로 짓는 집을 바라보고 담담히 감상할 따름이다.


새로운 양식의 건축구조를 보이고, 새로운 색깔의 지붕도 길가에 얼굴을 들어낸다.


비록 전모는 아니지만 전통적인 우리의 건물 일부를 뜯어서 분칠하는 곳도 있다.


일본인들의 비위에 맞는 몸짓을 보여서 그들로부터 인정받고 소위 문화인임을 자처하며 등용되려는 속셈을 들어내 보인다.


이렇게 해서 개명의 물결에 앞장섰고 그들의 뜻이 집치장을 통하여 밖으로 드러났다.


이런 개량 집과 전통 초가집 모양이 또렷이, 신ㆍ구가 금 그어지는 시골의 작은 마을인 우리 동네다.


전통한옥을 달아내어서 마루에 통째 미잗이문을 달고 손바닥만 한 유리조각을 끼워서 비와 바람을 막는, 소위 ‘아마도(雨戶)’를 만들어 달아야만 그들과 대화 할 수 있고 그들을 초청할 수 있는, 지위를 얻는다는 생각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아무튼 일본인들과 관련된 사람들의 집은  하나같이 이런 모양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단순히 영농과는 거리를 둔, 그런 생활에서 연유된 것도 있을 것이다.


우리네의 가옥구조가 농사일과 주거공간을 한꺼번에 한 지붕 밑에 마련하고자하는 소박한 생각을 버리지 못해서, 좀 더 위생적인 주거공간을 생각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 무렵, 어린 나이에도 이런 집들을 보면 금방 이 집은 끈을 대고 사는 집이구나 하는 것을 생각했을 정도로 우리의 정서와 조금은 떨어져있는, 어색한 분위기를 풍긴다고 느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신발은 유리창문 밖에 벗어놓고 들어가야 하는 불편함도 있지만 도무지 빈틈이 없어서 숨이 막힐 것 같다.


먼지하나가 떨어지면 그 자리에 표 나고 옷에 묻은 흙먼지를 받아드릴 흡입 장치가 없는 집이다.


그나마 우리 가옥구조의 맥을 이었다면 온돌에 장판을 깐 탓으로 다다미방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위안이다.



어느 날, ‘경방(警防)단장’ 아들인 내 친구는 우리를 몰고 자기의 집에 들이 닥쳤다.


그의 부모가 모임에 가셨거나 따로 볼일을 보시려고 외출했는지 알 수는 없었다.


예의 ‘아마도’ 문을 열고 들어갔다. 기다란 마루를 온통 유리문으로 막아서 복도식 마루를 만들어놓은 곳에 들어서게 됐고 다시 큰 미닫이문을 열어 두 칸짜리 통짜 방에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우리의 놀이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없다. 그 날의 초청 자 ‘경방단장’ 아들은 의기양양했다.


작은 책상 위엔 새까만 수동식 전화기가 놓여있고 전화기에선 높은 옥타브의 벨소리가 울렸다.


아들은 우리를 향해서 하소연하듯이 내몰았고 우리는 각기 이런 집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몰려났다.


친구들 누구나 같은 심경이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조금도 아쉬움 없이 물러났다.


그것은 내가 있을만한 포근한 자리가 아니라 내가 이 자리에 어떤 해를 끼칠까 먼저 생각하게 해서 불안하고,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정갈한 유리 상자 안 같은, 그런 집이었었기에 그렇다.


그의 아버지는 우리 면에서 유지 축에 끼는 젊은 분이었다.


새 문물 중에는 자전거도 있다. 자전거를 타는 이는 신식사람이요 자전거를 못타는 이는 시대에 뒤쳐진 사람으로 여겨도 될 만했다.


이즈음 골프를 못 치는 이와 버금갔으리라. 나는 극성맞은 성격 탓에 구장 집 조카를 꾀어서 구장 집의 자전거를 그 조카와 함께 몰고 기찻길 건널목 언덕에서 혼자 타고 몇 번을 내려오면서 배우긴 했다.


우리 집의 형편으로는 두발 자전거는커녕 세 발 자전거조차도 엄두를 낼 수 없는 처지였다.


이래서 자전거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정거장에서 언덕을 조금 내려오면 철도관사가 있다.


이전엔 들어보지 못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조용한 시골 마을의 청명한 하늘위로 하니 바람을 타고 하늘높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닭 우는 소리, 소 우는 소리, 개 짓는 소리, 아기울음소리, 다듬이방망이 소리, 애들이 부르는 소리, 이 소리에 섞여서 쇠의 마찰음 소리가 짤막짤막하게 들렸는데 이것이 세 발 자전거 타는 소리임을 한참 뒤에 단장의 아들인 내 친구의 구설수를 기화로 해서 알게 됐다.


단장의 아들, 내 친구는 잘 생겼다. 잘 먹어서 그런지, 타고나서 그런지, 아무튼 발군의 용모를 갖춘 미남이었다.


그가 우리학교에서 친구들로부터 놀림감이 된 것은 단순히 한 가지 이유에서였다.


역장 딸의 세 발 자전거를 밀어 주었다는 것이다. 들을 건너서 한참을 가야하는 정거장까지 가서 ‘자전거를 밀어’ 주었다는 것이 입에 오르내리는 방아거리이고, 남녀가 따로따로 놀던 우리의 학교놀이에서 조차 그 시절에 걸맞지 않는 풍기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당연히 아무것도 아닌 것인데도 한 동안은 곤혹을 치렀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남의 일을 빌려서 내 아름다운 꿈을 만들어보려는 잔잔한 물결을, 물결이 일면서 눈을 감는다.


그 단장의 아들은 이 일체의 일을 잊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삼 사 학년 때의 일이다.


동구 밖에 외나무다리를 건너서 정거장으로 가는 지름길을 자주 다닌 내가 그 때마다 들려왔든 삐걱 삐걱 소리가 단장의 아들, 내 친구가 역장 딸의 세 발 자전거를 밀어주는 소리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면, 이제 슬그머니 부화가 오른다.


역장의 집은 관사여서 유리문이 겹으로 있는 겹집이었다.


개량된 집에 유리문을 달고 나서 생각해볼 일인 것을, 돌이킬 수 없는 지난날의 아름다운 시샘이다.


세발자전거는 소리가 나야 세발자전거 같다. 요사이처럼 아무소리도 나지 않는다면 나 같은 둔한 놈은 어떻게 무지개를 타고 소리 없는 자전거를 찾아갈 것인가.


유리문은 어느 집이나 달았을 테니 더욱 그렇다. 세발자전거 소리가 듣고 싶다.


눈을 떴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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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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