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노데가시와

외통인생 2008. 6. 23.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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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데가시와

1620.001211 고노데가시와

지금도 고을마다 그곳의 기관들은 한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지만 일정시대에는 그들의 집단방어를 위한 듯 하나같이 기관이 잇달아서 지어있다. 그래서 어디서 누가와도 기관을 찾기는 쉬웠다. 으레 면소가 있으면 주재소가 있고 또 소방서가 있는가하면 학교가 있다.

 

이들의 명목상 우두머리는 조선인 면장이지만 그 실권은 '주재소'순사부장이다. 그들이 차고 있는 칼의 길이와 크기에 따라서 지위가 가늠되는 것이 우리꼬마들의 계급식별 방법이다. 그 칼에 얼마나 큰 ‘쇠불알’을 달았느냐가 또 우리 꼬마들의 관심거리다. 그래서 우리들의 관심은 당연히 제복을 입은 순사들에게 있지 사복을 한 일본인들은 그 지위를 알 수가 없어서 관심 밖이다. 그가 얼마나 높은지 모를 뿐만 아니라 두려움도 없다.

 

지금도 그들 칼의 손잡이 언저리에 달려서 덜렁거리는 '쇠불알'처럼 생긴 것이 무슨 용도에 닿는지 모른다. 헌데, 하루는 조회 때에 칼 차지 않은 일본사람 중에서 제일 무서운 교장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내일 ‘시가꾸’ 선생이 오신다고 하면서 학교의 안팎을 단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교장선생님보다 더 높은 선생은 어떻게 생겼을까 하고 의문이 생기면서 몹시 궁금하기까지 했다. 칼은 얼마나 큰 것을 찾고 ‘쇠불알’은 어떤 것을 달았는지 보고 싶었다. ‘시가꾸’ 선생은 이름이 ‘시가꾸’인지 아니면 네모잡이인 ‘시가꾸’ 모자를 쓴 대학생인지를 분간할 수 없어서, 더욱 초조히 그 날을 기다리는 바보짓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상급생들은 보아서 알고 있기 때문에 물어보지 않았을 테고 나처럼 모르는 애는 창피해서 안 물어보고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 날부터 이틀을 학교 뒤에 심겨 담장 처진 나무 울타리 밑의 검불을 줍고 풀을 맸다.

 

나무 울은 ‘고노데가시와’로 되어있다. 교장선생님이 심었고 교장선생님이 직접 다듬는 이 나무는 지금은 간혹 시골 기차역 주변에서나 볼 수 있는 나무다.

향나무 같은 잎이 연달아서 나 있고 침엽수인지 활엽수인지는 모르나 늘 푸른 나무다. 잎이 무엇에 눌린 것 모양 납작하게 뭉개진 듯이 돼서 한 가지에 아기 손바닥만큼씩 붙어있는 나무다.

 

이 나무는 내가 학교에 들어간 뒤 윗반 애들이 교장선생님의 지도아래 심었는데, 나무를 구해오고 어린이들은 신을 벗고 옷을 걷어붙이고 모두 함께 심었단다.

 

교장선생님의 이 나무에 대한 애착이 우리를 이 나무이름을 기억시킨 것이다. 전교생에게 나무 이름을 알리고 물을 주고 가꾸도록 했으니 오죽했으랴. 그래서 나는 이 ‘고노데가시와’가 ‘시가꾸’선생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꽉 차있었다.

 

그 날이 왔다. 조회 때, 긴장과 흥분 속에서 소개받은 ‘시가꾸’선생은 우리들 보통의 선생보다 키도 작고 머리에 ‘시가꾸’모자도 안 썼으며 더구나 그 무서운 순사복도 안 입었고 더구나  ‘쇠불알’ 칼도 차지 않았다.

 

한참 후에 그것도 해방이 되고 나서 그가 '장학사'임을 알았다. 어리석게 학교생활을 했으니 응당 그럴 것이지만 발음의 동일성을 지금도 탓하고 싶은 심경이다. 다만 우리나라 말이 아니니 어찌하랴.

 

사람의 마음은 이상하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그 많은 문물을 접했건만 그리움의 차도를 순서로 말한다면 옛것에서부터 점점 오늘에 이르는 역순인 것 같다. 왜 그럴까, 이다음에 골똘히 생각해보기로 하자. 우선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우리 모교의 그리움이 그것이다. 우리 학교의 울타리는 사면 중 앞면은 철길 둑이고 뒷면은 ‘고노데가시와’ 나무 울타리고 오른쪽은 면소와 교장 사택과 텃밭으로 되고 나머지 왼쪽이 허술한 맨 돌로 쌓인 돌담이다.

 

그런데 이 돌담이 지금도 내 마음에 거슬리고 우리학교를 안정되지 못한 것처럼 비쳐지게 한다. 돌담 곁을 지날 때마다 느꼈다. 내 어깨높이로 나란히 싸여있는 이 돌담은 우리가 기대면 무너질 것 같았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심지 않은 그 담은 필시 바꾸어야할 것이다. 이는 우리학교 출신들의 몫인 것 같다.

 

살아오면서, 여러 곳의 학교를 보아왔지만 우리학교처럼 허술한데도 없는 것 같아서, 아쉽고 안타깝다. 이미 내 머릿속에 자리 잡은 이 돌담이 무엇인가 못 다한 우리 학교의 설립공로자인 어느 전직 면장님의 유지가 헛되이 버려지는 느낌이 들어서 또 서운하다. 지금은 많이 변모했겠지만 내 옛날은 흐트러지지 않으니 그렇다.

 

‘고노데가시와’ 나무 울은 어떻게 변했으며 건드리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았던 운동장 한편의 담은 그대로 있는지 보고 싶다. 기어이 가보고야 말겠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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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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