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체조

외통인생 2008. 6. 26.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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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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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을 의식화 하는 데는 노래와 율동과 체조가 우선하는 것인지, 말기의 일제는 우리의 부모를 계도한다는 미명으로 우리를 군의 훈련병으로 만들면서 각자의 집에서 총동원의 나발을 불도록 은근히 옥죄었다. 그러나 그것은 부정적인 측면과 함께 건강한 체력을 기르는 한 방법으로써, 자라는 우리들의 체력을 잘 발달시키는 한 방으로서의 다른 좋은 측면도 있었다.

 

첫잠을 잔 누에가 뽕잎을 갉으며 내는 소리, 비 오는 소리에 놀라 잠을 깨어 방문을 연다. 뽕잎 향을 머금고 방문을 나서 물안개를 뚫고 학교로 간다. 돌담을 끼고 들어서면 물안개는 가라앉고, 이미 마련된 단상의 라디오가 까맣게 드러나서 나를 맞는다.

 

우리 동네 애들이 다 모여야 스무 명 남짓 되는 까까머리뿐이다. 지도 선생님 한 분이 나와서 시간을 재고 대오를 정비하면 드디어 준비운동이 시작되고 우렁찬 행진곡과 함께 힘찬 구령이 앞산에 메아리져서 온 마을에 울려 퍼진다.

 

새마을 운동의 효시 같았다. 이어 근로 봉사란 이름으로 길을 쓸고 나면 구수한 밥 냄새가 담을 넘어 발길을 재촉한다. 방학 때 일과의 아침 첫발 디딤이다.

 

내 체격조건이 체조를 즐길 수 없음에도 체조에 관심을 갖는 까닭은 내가 워낙 허약하게 생겨서 그렇다. 한사코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느리고 둔하여 매사 민첩하지 못한 내가 스스로를 게을리 한 자괴감에 시달리면서도 선천적인 물림을 탓하기 전에 그대로를 이어서 단련하려고 한 어릴 때의 다짐은 오늘의 나를 지탱하는 밑 걸음이 됐다.

 

이 점은 참으로 다행한일이다. 만약 내 체격이 다른 애들처럼 굵은 골격에다 탐스럽게 살이 붙어 있었다면 아마도 지금의 나는 병으로 고생하다 죽었거나 골골하게 연명하고 있을 것이다. 나를 재촉하는 원동력은 다름 아닌 나의 취약 체격 조건이었다.

 

기회를 만들어서, 못하면 변칙의 방법으로라도 꾸준히 끌어온 나의 행로는 이웃이 잘 알고 있다. 혹자는 비웃기도 하지만 그런데 상관하지 않는 것이 또한 특질인 나의 모습이다. 일단 내가 정한 것이면 남이 뭐라든지 오불상관(吾不相關)이다. 그 무렵엔 태권도란 이름도 못 들었고 검도도 살아지고 오직 총검술과 들것 나르기뿐이다.

 

헌데도 애들은 이단 앞차기를 한다며 보지도 못한 싸움판의 얘기를 수군거리면서 저희들도 의기양양 으스대니 나는 기가 죽고 자신이 없어진다. 도대체 어떻게 나를 보호할 것인가. 생각 끝에 내가 이단 앞차기를 하면 유사시에 써먹을 수 있지 않겠나 하고 마음을 굳히고 귀가즉시 실행에 옮겼다.

 

비 오는 날을 생각해서 처마 밑을 택했다. 그 중에서도 툇마루를 깔지 않은 양지쪽에다가 새끼줄을 길게 맸다. 처음엔 가슴높이, 다음날은 턱 높이, 일취월장 외발높이가 올라가고 드디어 양발을 이용한 차기의 높이가 내 키를 훨씬 넘어서 위로 머리하나를 더 얹힌 높이만큼 양발을 이용하면서 한발로 차내는데 까지 올렸다. 이쯤 되니까 내 마음은 한결 푸근해지고 자신이 생겨서 모든 분야에 생기가 일었다. 이것이 나를 연마한 대가이지만 차기의 격투실행은 한 번도 없었다.

 

퇴학 감이니까. 그저 자신을 얻음으로서 매사에 적극적, 긍정적 효과를 봤을 뿐이다. 이렇게 해서 상당기간 후에도 나는 내 키를 넘는 발차기를 할 수 있었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활화함으로서 가능해졌다.

 

방학 중의 라디오체조가 나를 체조의 공포에서 해방시켰고 그 라디오의 외치는 구령이 메아리쳐서 오히려 우리나라를 해방시켜 되돌려 주었을성싶다.

 

양면성에 고뇌한다.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거쳐야하는 순서’일 뿐이라고 되뇌어본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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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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