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회

외통인생 2008. 6. 29.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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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회

1651.001227 운동회

별로 볼거리가 없던 옛날엔 일 년에 한 번 벌리는 운동회가 그 지역의 큰 잔치였다. 모든 어린이가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신나게 즐겼다. 헌데 그런 날에도 내 마음은 맑지 못했다. 이런 마음을 한동안 털어 버리지 못하는, 이른바 후유증을 앓던 나다.

 

무엇이든 완벽해야 마음이 놓이는 이상성격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가 일 이 삼 등에 들어야만 신이 나고 그렇지 않으면 기가 죽는다. 나는 이런 강박관념이 달리기의 실제 상황에서도 일어난다. 즉 달릴 때는 있는 힘을 다해서 전 속력으로 달려도 될까 말까 한데 번번이 옆을 처다 보고, 뒤돌아보면서 뛰는 것이 습관화 됐다. 그러니까 찰나를 다투는 달리기에서 그만큼 정신과 육체의 이완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내 신체적 조건을 평등화했을 때에 닿는 말이다.

 

만약 나의 부위별 무게를 단다면 머리와 몸통의 무게는 다른 애들 보다 같거나 가벼운데 반해서 팔과 다리의 무게는 여느 애들 보다 훨씬 무겁지 않나 생각하여서, 재미있는 추리가 가능하다. 이들 부위를 따로 떼어서 달아보지 못하는 이상 말할 근거를 잃지만 대개의 경우 키가 작고 다리가 짧은 애가 단거리에서 빨리 달리기 때문에 이 말이 성립되는 것이다.

 

아무튼 요행수로 앞선 누군가가 넘어지거나 포기해야 겨우 등수에 들어서 공책이나 연필을 타게 되는데, 이렇게 탄 상품도 창피스러워서 고개를 못 드는, 숫기 없는 애였다. 그렇지만 장애물경기에서는 내가 일등을 할 때가 더러 있었고 그럴 때마다 이상할 정도로 나를 의심하곤 한다.

 

혹시 다른 애가 자기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서 반사적 이득을 얻지나 안 했나하는, 그런 생각이다. 신체적으로 조금은 유리한 조건이 경기종목과 맞아서 등수에 들었다 치고, 기마전에서는 언제나 말의 역이고 한 번도 사람, 기수가 돼 본적이 없는 육 년 이였다. 그 밖의 단체종목에선 그런대로 따라 했다. 왜 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서 등수를 가리는 것을 즐기는지 생각하게 한다.

 

생각해본다. 능력을 계발하고 향상시키는 긍정적인 면이 있겠지만 많은 탈락자들의 심리적 훼손을 보상하는 별도의 프로그램이 이룩돼야 할 것 같다. 이를테면 일정거리를 뛰게 하여 앞선 애들을 순차적으로 뒤쳐진 애들과 짝짓게 해서 다시 되돌아오는 것, 일 등한 애와 꼴찌 한 애를 한 팀 그 다음 이 등한 애와 꼴찌로 두 번째 애와 또 다른 한 팀, 이런 식으로 한다면 공동의 참여도가 어느 한 개인의 열(劣)성을 감싸기 때문에 좋은 반응이 있을 것이 아니겠냐 말이다.

 

더 좀 실감나게 말해보자. 많은 학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권위를 먹고(?)사는 선생들을 한자리에 모아서 암산(暗算)대회를 시켜, 그 등위를 마련하여 상을 준다고 하자. 꼴찌를 한 선생님의 체모는 무엇이며 그 선생님께 배우는 학생들의 처지는 또 어떻겠는가를 상상해보자.

 

말만 나왔다면 어린이의 인격을 운위하면서도 이런 것은 어른의 편의적 발상의 악습이라 해서 지나친 말이 아닌 것이다.

 

만국기가 펄럭이고 환호와 박수가 끊이지 않는 열기 찬 운동장의 한구석에서 가족들에 둘러싸여 삶은 밤톨이나 까먹으면서, 이날이 빨리 저물었으면 하고 해를 올려다보든 운동회 날이었다. 그래도 내색하나 없었던 부모님과 웃음을 피워 들이지 못하고 안타까이 재롱떨던 나를 생각한다. 지금도 달리기의 장면이 눈에 생생하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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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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