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2 구두

외통프리즘 2008. 7. 5.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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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010305 시험2 구두 


자동차 운전면허 필기시험은 말할 나위 없고 각종 자격시험이나 공공요원 채용시험에 나도는 문제를 각각 다 이해한다면 그 시험엔 나름의 자신을 갖고 응할 것이다. 그래도 자격시험은 수준이상이면 되겠지만 좁은 문은 남을 밀치고 떨어뜨려야 제가 들어 갈 수 있으니 얼마나 살벌하고 기막힌 일인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경쟁시험은 시험이 아니라 싸움인 것이다.

 

누구는 여린 자기의 딸을 이 싸움터에 내 보냈다가 낙방의 고배를 들고서 마음을 다졌다. 싸움터에 딸을 내 보낼 것이 아니라 숫제 자기가 싸움터를 만들어서 자기의 딸은 싸움터에 내보내지 않고 싸움 없이 들여서 딸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았다고 하는데, 딸에 대한 어버이사랑은 찬양받을지 몰라도 그 딸이 별도로 얻는 허탈함은 말할 수 없으리라.


질시와 따돌림과 심지어 아부하는 부류까지 생길 터이니 싸움을 벌이는 그 학교에 아무리 싸움 없이 쉽게 들어가서 공부를 한들 어떤 인격으로 형성될지 걱정이 됐을 것이다. 어버이의 또 다른 고민이 이번에는 더 크게 더 무겁게 짓눌렀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아마 평생을 두고 고뇌했을 것이다.

 

사람의 일에 완벽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자랄 때에 이런 일도 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치른 일이니 생생하다.


온전히 자기의 실력만으로 시험을 치러야한다는 취지에서 시도한 방법, 이름 하여 기말 구두시험이다.  각 과목마다 주관식으로 서술해야 하는 문제를 만들어서 세 문제씩을 한 묶음으로 손바닥만 한 종이쪽지에 적어넣고는  그 쪽지를 책상위에 엎어서 늘여 펼쳐놓는다. 한 학생씩 시험장에 들어가면서 이 쪽지를 임의로 한 장 뽑아 든다.


그리고 시험관인 선생 앞에 내놓고 문제의 순서에 따라서 설명이나 풀이를 해야 하는 것이다. 즉 학생이 선생의 입장이 되고 선생이 학생의 입장에서 듣고 판단해서 채점하는 것이다.


이 시험에서는 남의 답안을 곁눈질하여 베끼거나 불러주는 옆의 학생소리를 엿들어서 답안지를 쓰거나 손바닥에 써온 것을 보고 쓰거나 심지어는 요술쟁이처럼 곽 종이쪽지에 고무줄을 달아서 팔소매 속에 꿰매어서 집어넣다 빼냈다하는, 시험 날 부정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부정을 막으려는 선생님과 부정이라도 해야겠다는 학생간의 신경전을 말끔히 해결하는 기발한 방법의 시험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허면, 다른 과목은 몰라도 수학은 어떻게 하느냐는 것인데 수학은 문제를 풀어야하는 시간을 따로 주어서 그 자리에서 풀도록 하는 철저한 관리를 하는 까닭으로 치르는 과정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수학을 제외한 다른 과목의 채점이 문제다. 이즈음 예체능 시험장처럼 시험관의 입장과 진배없이 난처하게 됐다.


구술의 내용이 만족할만한 수준이 되지 못할 때에 얼마만큼의 점수를 주느냐 하는 문제다.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학생과의 평소 감정이 가미되지 않는다는 보장을 누가 하는지, 어떤 장치가 마련돼 있는지 해답이 없다.


단지 시험장에서의 부정을 방지한다는 미명의 이 제도가 또 다른 부정, 즉 선생의 편파적 채점은 없을 것인지를 아무도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시험은 실행됐다.

 

완벽은 없는 것이다. 학생의 응답이 어떻게 됐는지 검증할 길은 전혀 없으면서 오직 교사의 인격을 담보로 실행한 것이다. 그래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시험은 무사히 마쳤다. 이를테면 교사의 양심을 기준으로 점수도 주었을 것이고 석차도 조정했을 것이다.

 

자기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교사의 본질을 지탱하는 선과 이 선을 흔들면서 사적인 정분이나 과거나 미래에 있을 이해관계까지를 감안한 봐주기 의 탈선을, 무한정 벌려갈 수 없는 한계까지를 굳이 이름 짖는다면 ‘교사양심변동 한계 각(?)’ 이라고나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이 두 선 즉 교사의 명에 고수(유지)선과 이탈 선과의 각도를 측정해서 이 각이 좁을수록 그 시험은 잘 치렀다고 할 것이다.


허면, 이 각의 한계를 누가 만들고 감독 할 것인가. 이것은 사회의 구성원 전체의 책임이고 환경조성의 결과에 달려 있을 것인즉, 모두의 책임이고 모두가 감시해야한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 이 시험도 정착하지 못하고 말았지만 이것으로 보아도 그 사회도 허점은 있었나보다.

 

밤새도록 외고 쓰고 풀기를 거듭하고 맨주먹으로 시험장에 들어서면 나의 모든 것이 저 앞에 앉아 계신 선생님의 눈길에 발가벗겨지고 숨을 곳 없는 유리상자 위에 올라가는 기분이다.

 

잘만 집으면 통째로 아는 문제일 것이고 운이 나빠서 잘못 집으면 헛고생이 되는 꼴이니 가슴은 매양 방망이질을 한다.

 

여기엔 있는 그대로가 들어 난다. 투명한 유리 상자 안에서 자기를 감출 곳은 엄두도 못 내고 오직 내가 아는 것을 얼마나 잘 토해내느냐가 전부이다.


하루면 될 것을 며칠 동안을 계속 이런 고초를 겪는다는 것은 자기를 알차게 하지 않은 학생은 감히 앞에 나서기조차 힘든 시험이다. 그럼에도 아무도 불편해하거나 이설을 다는 애는 없다.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새 역사의 시험무대이기 때문이었다.

 

이 시험제도를 잘 보완하여 도입한다면 좀 다른 풍토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교육이민'으로  TV가 달아 있기에 나도 삿대질을 한번 하는 것이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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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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