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

외통인생 2008. 7. 5.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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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2.010306 노트


옆자리의 친구는 얼굴이 종이 장같이 희고 갸름하여 이미 농군의 아들임을 포기한 듯이 햇빛을 외면하고 문밖 나들이를 싫어한다. 그러면서 쉬는 시간에도 늘 책상에만 붙어 앉아 있는 폼이 여자 같은 애였다.

 

언제 보아도 갖출 것은 다 갖추고서 풍요롭게 공부하는 그 애의 조그만 덕을 입었기에 그 덕이 지금도 우러나서 이따금씩 나의 유년시절에 불을 붙인다.

 

만약 그 '임문환'친구가 내게 작은 공책을 내밀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내가 그 친구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집은 윗동네 이발소 아랫집이며 잡화와 고무신 가게를 겸하고 있는 집의 둘째아들이다. 형은 우리보다 두해나 선배이고 그도 역시 작은 키에 희멀건 얼굴인 것은 형제가 동색이다.


이점이 내가 이 친구를 기억하는 용모의 전부다. 그러나 그 집은 이따금씩 운동화 배급표를 들고 가면 친구의 어머니가 반기고 층층이 매 놓은 선반에서 내주는 새까만 운동화와 친구의 어머니의 흰 손이 너무나 대조되어 친구의 어머니 키와 함께 오히려 친구보다 선명히 떠오른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면 신을 신고 움직일 수 있을 만 한 너비의 공간을 두고 그보다 조금은 넓게 놓인 판자로 된 마루가 벽 밑까지 이어져서 주인은 맨발로 손님을 맞고 손님은 언제나 신발을 신은채로 물건을 사야하는, 그 시절의 가게들의 전형을 하나도 벗어나지 않은, 그대로의 가겟집이다.


다만 많은 가게들이 양철지붕으로 돼있지만 친구네 집은 아직 초가를 못 면하고 있는 것이 조금은 다르다.

 

길가의 집들이 이런 유형의 가게를 꾸밀 수 있도록 잇대어 지었다. 간혹 지붕은 양철을 이었으면서도 모양은 초가의 모양을 벗지 못하고 있는 집들이 많다.


얼룩강냉이 알 박이 듯 알록달록 이어진 우리 동네의 길가의 가게 집중 노란 지붕을 한 잡화점 집 아들이다. 그 집에서는 비단천도 광목과 함께 팔았다. 그래서 마루가 조금 넓게 깔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윗동네니 집 앞의 도랑물은 한결 맑고 힘차게 흐른다.

 

받아든 공책은 넉 줄씩 가로줄 쳐진 영어노트였다. 노트의 질은 그곳, 해방후 북쪽의 종이로 된 것이니 두껍고 면이 거칠어서 잉크가 번지지만, 줄을 긋는 수고는 더는 공책이다.


친구의 마음이 무척 고마워서 정성을 다하여 마지막까지 꼭꼭 채워서 다 써버렸다. 모름지기 그도 이 공책의 향배를 눈여겨보았을 것이다. 그때 나는 참으로 기뻤다. 기쁘기도 하고 무안하기도하고, 아무튼 주는 친구의 호의보다는 받는 내가 몇 배의 기쁨을 얻었으리라고 여겨진다.


친구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는지 담담히 하던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다. 아마도 일일이 잣대로 줄을 치는 내가 보기에 딱하고 안쓰러웠는가보다. 그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어디로 진학했는지 전혀 소식이 없고 격변의 와중에 어디론가 멀리 이사라도 갔는지, 이따금씩 그 집 앞을 걸어가다 보면 ‘소비조합’간판이 붙어있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날 따름이다.

 

야생마와 같이 뛰어 다니던 나와는 다르게 늘 집안에만 박혀 지내던 그 친구와의 이 조그마한 인연은 나를 이따금씩 고향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예정됐던 것 같기도 하고, 또 많지 않은 내 기억 속의 사람 중에 또렷이 기억되는 것은 아마도 그의 마음이 곱게 내게 칠해진 탓이리라. 그가 내게 준 노트의 가로 쳐진 넉 줄 위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잉크로 새겨졌기 때문이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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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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