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5.010308 교복
무명천에다 검정 물감을 들여서 지은 교복은 아무리 모양을 내려 해도 그저 그런 옷일 수밖에 없다 . 그래도 목덜미를 가려주는 컬러는 깨끗하게 자주 갈아 달며 정갈한 복장을 하느라 신경을 쓰는 내 마음속 한구석엔 작은 근심거리가 있었다 . 그것은 이 교복을 빨아서 다려 입는 문제였는데 우리 집엔 신식양복 다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
우리 집 입성은 재래식 다리미로만 다리게 되는 한복이 일상이니까 다른 다리미가 사실상 필요 없었겠지만 신식다리미를 살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
기억에 , 교복을 한 벌을 갖고 사계절을 입고 다녔던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 모르긴 해도 누나의 도움이 컸지 않았나 싶다 . 누나는 흰 실로 목둘레에 맞는 뜨게 칼라를 몇 개씩 떠서 수시로 갈아 댄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
학생이 교복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이유는 학생의 신분에 걸 맞는 입성이라서 그렇겠지만 그보다는 학생들 간에 암묵적으로 용인된 제복을 다른 집단에서는 찾을 수 없도록 함으로써 다른 집단과의 차별성을 지키려는 단면도 있을 것이다 .
다른 집단에서는 그들과 다른 집단의 옷매무새나 옷에 대한 감각은 둔해서 무감각에 가까울 것이다 . 그래서 그나마 학생들이 입는 제복을 학생 이외의 사람들은 참견하려 들지 않는가보다 . 물론 지도하는 교사나 학교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학생들과 같은 입장이겠지만 그 밖의 사람들은 그들 부류가 입는 입성에 대해서만 오히려 깊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
이 점은 학생들이 입는 교복을 검은색으로 한 단일원칙을 채택하는 이유를 구성원의 구속을 위함도 있겠지만 학생의 신분을 고려해서 여러 가지 변형을 이룰 수 없도록 함으로서 공부 이외에는 어떠한 다른 명목으로도 옷에 신경을 쓰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고 옳다고 여겨서일 것이다 . 그러니 학교 내에서 이 옷에 대해서 신경을 쓰는 것은 오히려 학생스스로 밖엔 없다 .
학생의 자기네 옷에 대한 제약은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 검정색 옷이 더러운들 알아차릴 수 없는 학생들은 그냥 흰 목둘레 칼라를 검사하고 말 따름이다 .
그 실 , 우리가 제일 위 학년이니 우리 위엔 우리를 감독할 상급생이 없었음에 따라서 우리들은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 학교를 순풍에 돛단 듯 다닐 수 있었다 .
가교사에 다니는 판에 그까짓 풍기는 찾아서 무엇 한다는 것인지 씨알이 안 먹히는 소리다 . 그래도 어렴풋이 이성에 눈을 뜬 보람 있어서 그나마 교복을 빨아야하는 때를 찾아서 빨기는 했지만 다리는 것이 마땅치 않은 것을 안 누나의 주선으로 잘 때에 깔고 자는 방법을 터득해서 그런 대로 체면을 유지했던 기억이 새롭다 .
시골학교는 학생이 붙어 다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나마 고맙게 여겼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 늘 발판만 있으면 뛰고 싶은 충동으로 가득 찼던 내가 공부를 무서워 할 리가 없다 .
공부는 하면 되는 것이니까 문제가 없는데 , 정작 문제는 졸업장 이였다 . 해서 목적을 향해서 치닫는 사냥꾼에게 총 이외에는 부질없는 것이란 생각으로 생활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 외지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고향에 내려온 선배나 동창들과 마주치면 괜히 위축되고 뒤돌아보게 되어 분발의 불씨를 싸않기도 했다 .
훗날 , 한국에 정착하면서 때늦은 교복이 입고 싶어서 , 교복을 얼마나 선망했는지 모른다 . 그러나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걸어온 자취를 뒤돌아볼 뿐 , 모자와 교복은 영영 못쓰고 못 입고 말았다 . 그런 검은 모자와 검은 교복의 애착은 한동안에 그쳤을 뿐 , 군 복무와 사회생활의 하루살이에 눌려서 다시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 뿐만 아니라 나는 제대로 된 졸업장은 한 장도 없는 꼴이다 . 일본국민하교 5 년 중퇴 ( 해방 ). 북한 인민학교 1 년 ( 졸업 ?), 중학교 2 년 ( 월반 , 졸업 ?), 고등학교 1 년 ( 징집 ?) 이 전부다 .
다시 옷에 대해서 , 그러니까 무리 안에서 일어나는 제반사에 집착했던 과거가 부질없는 것이란 것을 알게 된 이즈음의 일반인들의 옷차림도 눈여겨본다 .
사람에 따라서 , 직업에 따라서 매일 옷을 갈아입는 사람이 있을 것 같고 , 옷이 있어도 입는 옷만 계속해서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계절이 바뀔 때까지 입는 이가 있을 것 같고 , 또 아무 옷이나 편하게 자유스런 옷으로 입고서 남을 의식하지 않고 묵묵히 살아가는 이도 있을 것이다 .
수도자나 성직자는 그렇다 치고라도 일상적인 생활인도 모름지기 수도자나 성직자 같은 의복 관을 갖고 있는 이가 있을 성싶은데 이들의 세상 보는 눈도 역시 다를 것 같다 . 즉 , ‘ 얼마나 신경 쓸 떼가 없으면 입는 옷에 신경을 쓰고 거기에 시간을 빼앗기겠는가 .’ 고 조소할지도 모른다 . 그들의 견지에서는 옷은 하나의 생활의 편의 수단이지 생활 그 자체는 될 수 없다는 생각일 수도 있다 . 그들의 또 다른 생각은 적어도 나는 당신들과 같은 부류는 아니니까 싸잡아서 취급하지 마시라는 항변이 옷으로 나타나는 것 같기도 하다 .
색다른 새 옷은 끊임없이 출현할 것이고 , 그 옷을 계속 추구한다면 옷을 위해서 사는 것이지 살기 위해서 옷을 걸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는 항변이 있을 수도 있다 .
이렇듯 , 모든 가치의 척도는 마치 자를 쥐고 있는 사람의 것이지 자 ( 尺 ) 가 없는 사람은 가치를 얘기할 수 없다는 듯이 , 재는 자를 해가지면 바꾸고 날이 새면 새것으로 하여서 남이 넘보지 못할 , 잘 입을 수 없는 것들을 걸치고 재고 다닌다 .
다양한 사회 , 다극화된 인간의 심성을 달래려는 이런 의복의 단조로움을 유지하는 계층이 옛날 우리들의 학교생활에서 우리 이외의 척도가 될 수 없는 , 그런 의복 개념으로 바뀔 날 도 머지않은 것 같다 .
이미 그런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 그것이 양복이다 . 그러니까 양복 한 벌과 생활 복 한 벌 그리고 노동을 할 때 입는 작업복 한 벌 또는 노동을 못하는 사람은 운동복 한 벌 , 이것이면 족하리라 . 그래서 우리의 주변이 옷 이외의 복지에 더 치중하여 전환된 삶에 가치를 부여한다면 얼마나 풍요로울까 생각해 보면서 , 어릴 때의 단벌 교복에 밴 내 냄새를 다시 한 번 맡아본다 . /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