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

외통넋두리 2008. 9. 2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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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

5500.030126 은총

 

고만고만한 달동네 살림집이라지만 남의 집 대문소리가 오늘따라 크게 들리는 것이 이상한데, 아내를 기다리는 마음이 이렇게 유다른 것은 아마도 그의 오랜 방황을 지켜보면서 아내에 대한 우려가 내 몸에 농익어서 고막조차 엷어진 탓이 아닐까 싶다.

 

이제 아내의 활력소가 된 신앙의 진원(震源)에 대한 나의 궁금증이 쌓여 넘쳐서, 행여 아내가 너무나 깊게 빠져들어서 나중에 헤어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믿는 사람답지 않은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것은 솔직히 언젠가 내가 손잡고 헤어 나올 생각부터 했기 때문일 게다.

 

내가 퇴근했을 때엔 언제나 나를 맞는 아내의 지킴이 노릇이 서서히 무너지는 것이 아닌 가 해서 인간적인 욕심 섞인 염려 또한 되는 것이다. 어쨌든, 오늘은 동네방네 대문소리가 모조리 요란하게 들리는데, 우리 집 대문 가는 빈집처럼 조용하다.

 

아들은 곯아 떨어져서 꿈길을 오가는지 허우적거리고, 댕그러니 홀로 앉은 라디오만 양철소리를 낼 뿐이다. 떨어질 듯이 매달린 형광등은 밖으로 둔 내 눈을 더욱 어둡게 하면서 내 시선을 아래로 끌어내리고 아들의 나무필통을 열도록 내 손을 잡아 끌어간다. 나는 필통 속의 연필을 죄다 꺼내서 밝은 불빛에 올려대고는 자세히 보았다. 하나같이 연필심이 부러지거나 닳았다.

 

이즈음의 아내는 집안 보다 밖을 더 신경 쓰나보다. 그나마 최신형의 연필 깎기를 사준 것이 내게 작은 위안이 된다 싶더니 갑자기 아들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려는 몸짓이 되어 연필 깎기에 손이 간다.

 

아내가 무척 볼일이 많아 바쁘구나 싶기도 하고 이즈음의 새로운 생활이 보람 있어서 보이기에 퍽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달리, 이점이 또한 염려스럽다.

 

고요히 귀를 기울이며 온갖 것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아내의 오늘에 또 무슨 이변이 있는지 모를 일이어서 궁금하니 발자국소리와 대문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는 것이리라!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기를 바라면서 불안한 순간을 잇는다.

 

이때 대문소리가 났다. 늘 아내의 마음을 담아 소리 내는 대문은 평소와 사뭇 다르게, 크고 힘차게 그 소리를 내게 전해주고 있다. 무언가 이루어질 것 같은 느낌이다.

 

연필 깎기를 동댕이치고 밖을 보니 아내는 네 활개를 높이 쳐서 팔 그림을 담 밖으로 넘긴다. 소리는 컸지만 지척의 대문이 이토록 작아 보이니 변고는 일어났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기분이 좋아?’   내 물음에 대답은 하지 않고 다소곳이 앉아서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짓더니 ‘임신 이래!’ 라며 기쁨과 두려움이 엇갈리듯 ‘어떻게 해?’ 한다.

 

나는 용수철처럼 어깨를 추겼다.

기뻤으나 곧 억지로 정색했다.

 

신의 가호다. 신은 우리에게 무엇을 깨우치려 이렇게 나타나는 것인가? 우리의 욕심을 질책하려 극한의 고통을 주었던 신은 아직 우리를 버리지 않았으니 우리의 앞날 또한 밝지 않겠는가?

 

번개같이 스치는 이 많은 물음에 신은 아무런 응답이 없다. 다만 내 마음에 투명한 막을 깔아서 그 위에 내가 새기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아내의 배앓이 병이 말끔히 낫지 않았건만 아내의 변화를 통해서 우리에게 어떤 시련을 주며 우리의 각오를 시험하려 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정말로 가당치 않게도 신을 의심하는 지경에 빠지는 혼란을 느끼고 있다.

 

신은 나에게 아내를 택할 것이냐 자식을 택할 것이냐를 묻지 않는가? 아니다. 신은 아내도 자식도 함께 축복으로 주시는 것이다! 만약 아내가 출산으로 인하여 생명을 잃는다면 내 욕심으로 인해서 저렇게 곤히 담든 아들의 꿈길조차 짓뭉개고 마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는 보장을 해주세요!! 아니지.

 

이미 신은 이 모든 것을 아시고 아내의 그 상태에서 허락하셨으니 분명 아내의 임신은 은총의 아룀이다. 옳다.  그렇다면 아내에게 그의 생각을 물어보자! 이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생각됐고, 그리고 물었다.

 

‘여보! 당신 그 몸으로 애를 낳기나 하겠소?’ 아내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낳아야지요!’ 바라든 대답이지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윽고 아내의 반문이 이어졌다. ‘당신은 어떻소?’ ‘나는 당신 몸이 우선이요, 당신이 아무래도 자신이 없질 않소?’ 나는 아내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그의 마음씀씀이에 한없이 감사한다. 만약 그때에 내 욕심을 들어내어 아내에게 기쁨의 표현과 함께 아들 낳기만을 종용했다면 모름지기 아내는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선 고민에 빠지고 신과의 협상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할 수 없는 처지에 이미 신앙적으로 깊어졌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자기의 희생을 각오하고 낳기로 결정하면서 잠시 동안의 망설임이 기쁨으로 승화되어서 멀리 별나라에 가있는 ‘희’를 만날 수가 있었다.

 

몸과 마음이 청아한 빈 항아리처럼 지고(至高)의 순수함에 가득해졌다. 그렇게 크게 들리던 남의 집 대문소리가 멀리, 저 멀리 남의 동네에서 들려오듯 멀어지고, 아내와 나는 곤히 잠든 ‘영’의 이마와 두 다리를 번갈아 만지면서 별이 되어버린 ‘희’를 끌어들여서 만나고 있었다.

 

‘희’는 동생을 보내어 다시 사는 것이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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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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