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외통인생 2008. 10. 6.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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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5515.030609 마음

마음이 편치 않다. 왠지 오금을 방바닥에 붙여 놓을 수가 없다. 몸은 어느새 아들 방 쪽으로 기울어있고 두 손은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면서 허공을 긋고 있다. 아들 방을 흘끔거리지만 뾰족한 수가 나지 않는, 걱정스런 밤이다. 문갑 위에 약봉지가 불룩 배불러 있지만 어쩐지 마음은 불안하기 그지없다.

 

포개어져 아가리 터지도록 불룩한 하루치 알약 쌈이 내게 위로의 말을 던지지만 나는 평안하게 있지 못했다. 어쩐지 약봉지가 우리를, 나를 헷갈리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미쳤을 때 몸은 용수철처럼 튀어서 마루를 질러 아들 방문 앞에 이르게 했다.

 

조용히 귀를 기울여 아들의 숨소리를 들으려고 하다가는 못내 못 견디고 문을 살며시 열고서야 가슴에 가득 찼던 불안한 검은 김이 서서히 빠져나갔다. 그러나 후련함은 그 순간일 뿐, 아들의 색색거리는 숨소리에 불안은 다시금 엄습하고, 지금 머리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꿈길을 헤매고 있는 아들의 그 꿈이 벼랑 끝에서 무서운 짐승의 이빨을 바라보며 절규하는 것 같았다.

 

손을 가만히 이마 위에 얹어서 신열을 가늠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아비가 아들에게 하는 일상적 표현일 따름이지 아들의 꿈을 시원하게 해결할 방도는 되지 못하였다.

 

아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홀로 꿈길을 걷는 외로운 들길을 내가 함께 걸어 줄 수는 없을까하는 마음에서 문을 열었건만 애는 괴로운 숨을 할딱거리고만 있었다.

 

업어준들 낫겠는가?

안아준들 눈뜨겠는가?

 

내 모든 것의 더함이고 살아온 시간의 함축이고 미래를 담은 덩어리인 아들이 험한 꿈길을 아무 탈 없이 걷게 하고 아비가 기다리는 품으로 손을 들고 달려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모아 눈을 감고 신명에게 빌었다.

 

나는 조용히 이마에서 손을 떼고 고른 숨소리를 귀에 담으면서 방문을 나섰다. 의사의 처방에 의해 수급되는 약봉지 속에서 아들의 생명이 좌지우지되는 엄마의 생각에 비해 나는 약 이외의 것에서 치유의 효과를 기대한다.

 

이런 생활에서의 평행괴도를 지닌 내게 오늘 밤 따라 예감이 이상하여 촉수를 곤두세우고 더듬는 나의 비현실적 태도에 아내는 둔감하게 움직인다.

 

뒤를 따라 나온 아내의 아들진단이 있은 후 아내와 나는 아들 방을 나섰다. 다른 선택이 없는 아내는 아들의 병을 현대의술에만 의존했다. 그래서 약봉지를 믿고, 아들이 무사할 것이라는 믿음에 아내의 마음이 평온하다. 아들의 '고뿔'에 견디지 못하는 어미의 마음이 약봉지로 위로 받고 있는 사이 나는 천 갈래의 변수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복수(複數)의 삶을 살 수 없는 모든 이가 절박한 선택기로를 강요당하는데도 불구하고 무시하고 있는데 반해서 나는 미리 그 가능성을 열어 배제하지 않는 마음 씀씀일 게다. 또 내 그런 용렬(庸劣)한 처신을 알기에 오늘에 떤다.

 

송곳 끝에서 돌아가는 팽이의 삶을 연상한다. 잠시도 쉬지 않고 회전시켜 늦추지 않도록 하는 내 삶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나는 이 시간을 흘릴 수 없다. 이 시간을 흘려 지나쳐버림으로써 어쩌면 내게서 대(代)가 끊어질지 모르는 절박한 심경으로까지 이어졌다.

 

이 밤을 그냥 넘김으로써 내게 까마득한 옛날로부터 이어온 내 생명의 줄이 소리 없이 끊어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의 한 끝이 선명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독백의 외침으로 문을 박찼고 아들 방으로 달려갔다. 주저 없이 아들 옆에 누었다.

 

그리고 잠을 청했다. 나는 불안에서 해방되었고 평안을 찾았다. 이것은 무슨 조화인지 어떤 소치(所致)인지 나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들은 편안히 잠들어 있었고 알음소리도 신음소리도 없었다.

 

 

잠시후. 벌떡 일어나서 아들을 껴안았다. 아들은 심하게 경련(痙攣)하며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있었다. 나는 고함 질렀다. 병원을 나서면서 아내는 나에게 무한한 신뢰의 눈빛을 보였고 업혀오는 아들의 뒤를 따르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아내는 나의 준비된 행동에 무척 고마워하면서 온 동네와 이웃과 자기의 형제들에게 자랑하고 또 추겼다. 무슨 영감이 있었기에 그날따라 예전에 안 하던 ‘짓’을 했느냐는 것이다. 신기하고 자랑스럽고 믿음직했던 것이다.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의 모든 것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 크기의 순서대로, 무게의 순서대로 조합하여 기억하는 치밀함을 가지지는 못했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헤아려 실질적 행동에 옮김에 주저하지 않는 자기희생의 결과임을 작게 쪼그려 느끼면서, 언제나 나의 오늘을 감사하면서 내가 살아있는 오늘, 숨 쉬는 이 시간을 환희로 응답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죽음이 있기까지는 포기 할 수 없는, 내 생활의 정당성을 찾을 그 날이 있기까지는, 뼈가 바스러지고 살덩이가 뭉개어지는 한에서도 나는 고난의 길을 외면할 수가 없다.

 

자칫 했더라면 천추(千秋)의 한을 남길 번한 그 날의 그 밤이었다. 아슬아슬했던 그 한 밤이, 먼 옛날의 조상께 또 아득히 먼 훗날의 자손이 될 수 있는 혼령에게 씻지 못할 땟국을 남길 뻔 헸던 그 한 밤이었다.

 

평소에 없었던 일을 단 몇 초의 번뜩임으로 내 갈 바를 찾은 그 예지에 어떤 힘이 있었는지 두 팔을 높이 들어 읍()하고 두 손 모아 감사할 뿐이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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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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