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

외통프리즘 2008. 10. 2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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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

5534.030919 소동

무학여고의 벽돌담이 유난히 붉고 길다.

돌아 나와서 큰길로 들어서는 언덕길에는 바닥에 늘어놓은 형형색색의 물건들이 현란하다.

 

하나같이 나를 쏘아보며 몇 번이고 마주 오는 사람과 어깨를 부닥치게, 보이는 것 모두가 나를 현혹한다.

 

늘어놓은 물건은 발길에 채이도록 길 폭을 좁혀 들어와 있다.

새까만 길바닥이 구불구불 뱀처럼 굽어있다.

 

길 양쪽에 펴놓은 난전의 물건으로 메워져서 맞닿아 길은 곧 없어질 것같이 좁다랗게 열려있다.

 

아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닿지 못할 영원의 틈이 되어서 오가는 사람을 맞을지 모른다. 그것도 아니다.

 

이 까만 아스팔트길이 아물어 양쪽이 붙어서 하나의 상가가 되어 들어오는 모든 이를 싸안아 용해할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확신을 얻으려는 듯, 비슷한 형국에서 바둑알을 놓아야하겠기에 몸부림친다.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무엇인지 모를 괴력에 내 힘을 빼앗겨서 어쩌지 못하여 끌려가는 것 같은 무력함을 느낀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먹혀들지 않을 뿐 아니라 빨려만 들어가고 있다. 상황을 변화시킬 수도 없다.

 

어깨가 늘어진다.

 

옆 돌아볼 겨를 없이 사는 주제에 말 탄 기사의 흉내를 낸 꼴이 되어서 더욱 마음이 개운하지 않지만 손위 분에게 시시콜콜하게 물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미루어 짐작을 할 수도 없어서, 안절부절 못하다가 반승낙은 했지만 딱한 사정이 있어서 그러실 것이라고 생각을 가다듬고서야 마음을 수습한다.

 

하라는 대로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나오는 이 발걸음이 이렇게 무거울 수가 없다.

 

모든 것을 내 식으로 생각하고 처신하는 나에게 이런 주문은 너무나 가혹한 것이다.

 

일방적인 진행에 내가 제동한다는 것은 그의 일에 깊이 개입함으로써만 가능한데, 이 일은 그럴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지금은 반드시 화합의 굳은 포옹의 마무리를 기대하고 그 길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화합을 전제함으로서 가능한 내 작심의 결과적인 행동이다.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이렇게 망설이지는 않았고 내 앞날의 설계에서도 이렇게 고민하지 않았다.

 

무엇인가 빠진 것 같은 허전함이 엄습하며 허우적거리고 있다.

 

버스는 종로를 향해서 출발했다.

눈을 감고 생각한다.

 

형님과 처음 만났을 때, 외롭고 쓸쓸하던 외톨이 나에게 혈육의 따스한 정을 흠뻑 퍼부어 주신 형님이시다. 형님은 단숨에 달려와서 나를 포옹했었다.

 

가정을 꾸리고 사시는 행복한 형님의 늘 비어있던 향수의 공간을 내가 채워 드렸으리라.

 

나는 나대로 부모와 버금가는 혈육을 만났으니 세상을 얻은 기분이었다.

 

저녁노을이 지고 땅거미가 질 무렵에 우리는 아무도 없는 개울가 제방 뚝 위에서 별빛을 받아 고기비늘처럼 반짝이는 여울을 앞에 두고 이역의 땅에서 살아갈 깊고 깊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균열(龜裂)은 없지?’ 짧은 한마디 물음에 ‘전혀 없습니다.’고 칼로 자르듯이, 일순(一瞬)의 주저도 없이 나는 대답했었다.

 

충격에도 금갈 수 있고 불만의 포화(飽和)로 분출의 금이 갈 수도 있을 것인데, 일생의 설계에서 빼서는 안 될 과정(過程)임을 암묵적으로 시사(示唆)한 것, 그 과정을 형님께서 밟고 계시는 건지, 두렵고 불안하다.

 

나는 형님내외의 균열 위에 발을 딛고 버둥거리고 비틀거려도 아무소용이 없다.

 

다만 아물기를 바라는 충정으로 꽉 차있을 뿐이다.

아스팔트길도 금간 것 같고, 잡다한 물건을 스치고 걸어온 길목의 양쪽 상인들도 금간 것 같고, 지금 내가 탄 버스도 어딘가에 금이 가 보수를 해야 할 것 같다. 대체 나에게는 무엇이 ‘균열’일 수 있는지 거듭 생각해본다.

 

‘일체’는 ‘분할’의 전제이고 균열은 당초부터 합성(合成)의 부수적(附隨的) 산물이니 봉합이 전제된다고 하기엔 한참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내가 봉합하리라. 그리고 그 땜 자리는 영구히 다시 금가지 않으리라!

 

균열, 균열, 균열. 아무리 외어도 풀리지 않는 오묘함이 있어, 마치 밀도가 다른 두 물질의 결합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소리 나는 금(龜裂)은 때울 기회를 잃지 않는다.

나는 아직 소리가 나지 않는다.

 

과연 안 깨지는 것인가.

아니면 깨지면서 소리 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인가.

 

오늘부터 더듬이를 세우고 살피는 부지런을 떨어야 할 판이다.

 

미아리고개를 넘는 버스가 숨찬 소리를 지르면서 시꺼먼 매연을 길바닥에 토하고 있다.

 

내 마음은 아직 타고만 있다. 소리 지를 공간도, 뱉어 낼 힘도 없다. 노란 하늘이 보일 뿐이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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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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