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외통인생 2008. 10. 23.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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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9.031030 강남

어느새 어둠이 깔렸다. 가로등 불빛이 차창을 스쳐 지난다. 출발한지 퍽 오래되어 강박감에 더욱 초조하다. 고모부를 돕는다면서 내 차를 탄 조카 녀석도 우리가 가야하는 새 집을 모르기는 마찬가진데, 그 앤들 내게 무슨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다만 판에 박힌 물음으로 '강남'을 욀 뿐이니 대답하는 쪽도 손가락으로 대충 가리킬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내게 아무런 도움도 안 되고 물어서 대답을 얻었을 리 없고, 한숨을 내쉬면서 위로를 받지만 얼마가지 않아서 또 불안해진다. 그래서 다음 갈림길이나 네거리에 닿으면 더욱더 초조하다.

이삿짐은 떠난 지 벌써 몇 시간은 되었고, 우리는 그 뒤를 따라서 바로 나섰는데 도무지 방향을 알 수가 없다. 밝은 대낮이면 동서남북은 가늠할 수 있어서 어림으로라도 한강은 건널 수 있을 것 같은데, 모로 가는지 외로 가는지 모르면서 바퀴만 굴리고 있으니 난감한 일이다.

이래저래 내 고생길은 수습이 어려운 지경으로 빠지고, 지금도 가고자 하는 곳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다급한 마음까지 일고 있다. 내가 정확히 어디를 향해 가는지 모르는 길을 가며 핸들을 움켜쥐고 있을 뿐이다.

도대체 자기 집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면 말이 되지 않을 성싶은, 바로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있으니 말할 수 없는 수모를 겪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모름지기 어떤 힘이 나를 각성시키려고 이렇게 홀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두려움도 있다.

한번쯤은 새 집에 가보았어야 할 일이다. 마이카 족에 낀 것은 흐뭇하지만 이런 때 차를 놓고 택시를 이용했더라면 무리 없이 집을 찾았을 것이다. 그러니 차를 버릴 수도 없는 노릇, 돌이킬 수도 없다. 분명한 것은 ‘강남’과 아파트 동 호수를 알뿐인데 어떻게 찾을 것인가. 더군다나 처음 길이고 거리는 온통 낯설다.

시골에서 자란 내가 서울을 알기를 우습게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한강만 건너면 되리라는 간단한 생각을 하고 오기를 부렸던 것이 이렇게 된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서울과는 다르게 턱없이 넓고 길도 복잡하다. 더군다나 내가 직접 차를 몰고 가는 그 용기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엉뚱하다. 아니 무모하다.

나는 이렇게 살고 있고 이렇게 살아왔다. 과거의 연장이 오늘에 있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코 그 평평한 삶이 아닌 내게는 오늘 같은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져야 마땅한 것이다. 분명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거기서 나를 단련시키고 고행을 감수하면서 세상을 배우며 사는 나인지라, 어쩔 수 없다. 그 내막은 아무도 나를 이끌어주지 않는 이유도 있겠고, 그보다는 몸으로 부닥쳐서, 피부로 느껴서, 해결하는 성격의 일면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반복 될 것이다. 세 개밖에 없는 한강다리를 더듬어 찾아 건너는 일은 그야 말로 퍼즐 맞추기나 다름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집을 찾아 들어갔을 때 아내는 내 얼굴을 빤히 올려보면서 막 파출소에 신고하려고 나서려든 참이라며 반긴다. 시간은 어느새 일곱 시가 되어 있었다. 강을 건너는데 무려 다섯 시간이나 걸린 것이다. 유례없는 기록일 것이다. 그래도 나는 만족한다. 처음으로 내 손으로 차를 몰고, 밟아보지 못한 길을 뚫고, 알지 못하는 강남땅에 와서 새 집을 처음 보는, 행운을 맛보고 있기 때문이다. 밝고 화사한 거실이 모든 피로를 앗아갔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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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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