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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통넋두리 2008. 11. 7.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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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91.041027 지관

 

   좋은 자리란 어떤 자리인지 모르던 내가 묏자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장모님을 모실 자리를 더듬으면서부터다. 이 방면에 특별히 잘 아는 아내의 동기간도 없었다. 아무려나,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외로운 나를 늘 생각하던 아내의 입김이 더하여 내가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나를 혼자 내세우기엔 어딘가 불안했거나 아니면 나중의 일을 생각해서라도 자기 식구 중 누군가가 끼어야만 훗날 있을 수도 있는 내가 맞을 바람을 막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지, 연만하시지만 현대적 교육과 서구의 물을 마신 처숙부를 묶어 놓으면서 별안간 어디로 하든지 간에 묏자리를 찾아보란다.

 

   갑자기 불러대는 묏자리 타령에 처숙부도 어리둥절했던 모양이다. 좀처럼 찾아오시지 않던 우리 집까지 오신 것으로 보아서는 아마도 안사람보다 목청큰 언니들의 말발이 먹혔는지 모르겠다. 처숙부는 느닷없이 찾아와서 나를 붙잡고 날을 받으라고 하신다.

 

   봉우리가 지어져 있는 선조의 묘역을 찾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산소에 가 본적이 고작인 내게 묏자리 잡는 상상은 과거를 지우려는 나의 노력을 허사로 할 뿐 아니라 내 삶에서, 내 자란 터전에서 멀어졌던 자연에의 선회, 회귀의 몸짓조차 느끼게 하는 일순(一瞬)이었다. 나는 그러나, 늘 향수(鄕愁)에 젖어 사는 나의 처지를 이해한 아내의 배려를 직감하고 처숙부의 느닷없는 제의에 내 마음을 들어 낼 염두도 못 내고 곧 처숙부에 동조(同調)하여 날을 받았다. 황당하지만 이미 아내의 식구들끼리 있었음직한, 그들의 의논 끝에 나온 일을 내가 토를 달 수 없으리란 생각에, 어느 한 일요일을 그 날로 잡아서 나섰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경기도의 한 공원묘지를 담아 말씀하시는 처숙부의 의견을 되물을 바탕은 없다. 그러니 닥친 일을 수습하고 마무리하는 수밖에 도리 없는 일, 서둘러 그 곳으로 떠났다.

 

   길길이 넘은 갈대꽃 숲을 지나 소나무 향기가 폐부를 넓히던 고향의 산소 길, 아버지와 맞들려 내려진 함지박에 담겨진 제사음식에선 풀밭에서 맡을 수 없는 또 다른 향이 어울려 함지에 가득히 풍긴다. 이런 생각도 잠시, 산바람을 타고 올라와 코끝을 치는 휘발유 냄새가 과거 오십년 전 나를 순식간에 이제로 되돌려 놓았다. 경외(敬畏)하여 마지않는 산, 신비감마저 젖어오는 내 고향 산세는 사라지고 자연의 해진 옷자락, 누덕누덕 기운 산자락만이 눈앞에 펼쳐졌다. 죽어서 마저 치장을 하여야하고 분을 발라야하는 넋 잃은 거푸집, 나간 영령(英靈)의 잔해만이 봉우리 형체를 덮고 있는 이 처량한 풀밭, 비로써 눈에 선하다.

 

   고향산천. 나게 한 모토(母土)와 조화로운 안식(安息)이 되어야 마땅한 유택(幽宅)이 꼭 이런 것이라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내 지관(?)체험이다.

 

   찻길에서부터 시작된 묘역개발은 이미 산등성을 넘어 남쪽으로 찻길을 내고 점령해 들어 간 곳, 우리는 돌이 많은 산 밑 후미진 곳의 아랫녘으로 안내되어 왔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개발지구의 막바지여서 그런지 그럴듯하고 안정감 있고 평화로운 묏자리는 아무데도 없었다. 그렇다고 발길을 되돌릴 수 없는 것, 처숙부께서 생각하시는 당신기준을 내가 알 수 없으니 그분의 발길을 따라 밟는 오늘만은 내가 아니다. 줄곧 떠나지 않는 처삼촌의 시선은 산비탈을 정지하여 나란히 계단식으로 만든 끝자락에 머물러 서계신다. 발길을 옮겨놓지 못하고 그 계단의 몇 기(基)의 묘와 다음 단락의 평지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산골 논두렁 같은 언덕을 껑충 뛰어 올라 그 다락 밭 같은 위의 커다란 바위 옆에 있는 한 묏자리 위에 굳게 두발을 딛고서, 여기가 어떠냐고 하신다. 대답할 겨를도 없이 잇따라 하시는 말씀은 애들이 바위를 보고 묏자리를 쉽게 찾을 것이란 설명이시다. 더불어 바로 옆에 깊은 물길이 있어서 손도 씻을 수 있으니 좋을 것 같다는 설명인데, 나는  그 뜻을 명확히 이해 할 수 없었다. 아마도 그 기준을 이해할 수 없는 나름의 기준이 있어서 그랬으리라. 흘러 들은 말, 좌청룡 우백호가 이런 곳일 수는 없다는 내 나름의 기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곳은 버려진 땅 '개굴창' 같은 느낌이었다.

 

   계약은 끝났다.

 

   사람이 난 곳으로 돌아감은 섭리인 것, 태어난 곳을 닮은 자연조건을 찾다보니 좌청룡 우백호를 찾고 안산(案山)을 찾을 터인데, 이곳은 안산이 보이지 않았다. 안산을 바라보고 닭소리를 듣고 인기척을 느끼며 영면(永眠)하고 싶다는, 비교적 정정했을 적에 말씀하신 장모님의 넋두리를 평소에 전해들은 내 마음은 납덩이같이 가라앉는다. 내 생각은 끝내 묵살되는 얼치기지관이 되었다. 장모님의 뜻에 맞는 묏자리가 아닌 성싶다.

 

   문득 내 할머니, 내 아버지, 내 어머니의 묘소는 어떻게 되었으며 어디다가 마련했으며 어떤 절차로 모셔졌는지 궁금해진다. 갑자기 가슴이 미어진다. 흰 두루마기를 입고 눈앞에 다가오신 아버지. 눈을 들어보니 먼발치에 석상만이 우뚝 서 있다. 다리에 힘이 빠진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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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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