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외통궤적 2009. 1. 3.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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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12.010206 노래

히노마루’를 고개가 젖혀지도록 올려보는 까까머리의 눈동자 속 까만 점이 점점 커졌다. 눈을 똑바로 뜨고 깃봉 동그라미와 깃발 속의 붉은 동그라미를 자꾸만 보았지만 깃봉과 깃발은 점점 흐리게 보였다. 웬일인지 오늘따라 ‘히노마루’를 보는 까까머리의 까만 눈망울은 날 다르게 흐릿하다. 늘 펄럭이든 깃발의 흰 바탕 속의 붉은 동그라미가 오늘은 반쪽이 가려진 채 힘없이 늘어져서 올라간다. 늘 그렇게 올라갔지만 여느 날은 무심히 올려만 보았는데 오늘은 다르게 보인다. 반쪽 해가 까까머리의 눈을 뗄 수 없게 하고 웬지 모르게 마음을 울적하게 한다. 죽창을 준비한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따가운 햇볕아래서 뒤통수가 뜨겁도록 빌었어도 전세는 자꾸만 우리의 가슴을 조여 왔다. 까만 까까머리와 까만 얼굴하며 까만 무명옷과 까만 운동화, 이렇게 까만 것 일색의 까까머리 촌뜨기의 내 가슴도 어김없이 조여들었다. 축 늘어져서 겹쳐 걸려 있는 저 빨간 ‘히노마루’와 이를 우러러 보고 '기미가요'를 부르는 까까머리와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았다.

'모래알이 바위가 돼서 이끼가 끼도록…’번영해야한다고 까까머리 입에서 분명히 되뇌고 있었다. 부르다가 잠이 들, 이 느린 박자의 '기미가요'를 오 년이나 불렀지만 부르는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를 가리기엔 까까머리의 딱지가 덜 떨어져있다. ‘조선’은 무엇이고 ‘일본’은 무엇인가? 까까머리는 그저 제가 있는 곳에 올린 깃발과 깃발을 올리는데 필요한 힘주기 노래가 애국가인 것으로 알 뿐, 까마득히 앞날을 모른 채 노래하는 앵무새 구실만 했다. 그가 있는 곳, 그 하늘을 차지한 깃발이 그의 눈을 끌었고 그의 입을 벌렸다.

하늘은 여전히 그 하늘이고 땅도 변함없는 그 땅이요 사람도 그대로 그전 사람인데 깃발은 달랐다. 세상이 변했다.

시골뜨기 까까머리의 까만 눈에는 반쪽은 까맣게 칠해지고 나머지 반쪽은 ‘히노마루’가 있는, 그런 깃발이 비쳤다. 이 깃발은 하늘 높이 올라가고 온 땅을 뒤덮는 것이었다. 까까머리는 반쪽이 붉고 반쪽이 검은 네 귀 딸린 깃발을 바라보며 새 세상의 새 맛을 찾으려 눈망울을 굴리며 쳐다보고 또 불렀다. 반쪽  ‘히노마루’ 걸고 졸업식 때 부르던 귀 익은 곡, 외국의 민요곡을 붙여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기리 보존 하’는 애국정신을 다지면서 부르며 올라간 깃발, 반쪽이 검고 반쪽이 붉은 빛이 유난히 마음을 아프게 한다.

뒤늦게 태극기의 유래와 뜻을 새기긴 했어도, 반쪽이 꺼림직 하다. 그러면서 슬프고 애달픈 곡이 까까머리의 눈시울을 또 흐리게 한다.

구호대가 거리를 돌더니 또다시 새로운 세상맛이 눈을 홀린다.

깃발을 올리며 부르던 노래는 어느새 다른 곡으로 바뀌는 가 했더니 이번에는 ‘마르고 닳도록’ 다 썼으니 ‘기리 보존’할 것이 없다(?)면서 팽개치고 마니, 까까머리의 까만 눈동자의 검은 점이 이번에는 작아졌다. 사괘가 달린 붉은 칠 반, 검은 칠 반의 동그라미 태극은 하늘높이 남쪽으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귀에 선 곡도 따라서 날아갔다. 아니 새론 깃발에 떠 밀려서 별들이 무수한 남쪽 하늘로 옮겨 떠나갔다. 촌뜨기 까까머리는 아직 한 뼘도 움직이지 않았건만 깃발과 나라를 사랑해야 하는 노래는 자꾸만 바뀌어간다.

생소한 깃발이 촌뜨기 까까머리 눈앞에 또 나타났다. 기폭(旗幅)의 비가 사뭇 다른 기다란 깃발이 꼬리를 흔들 때 까까머리의 눈은 맴돌기 시작했다. 깃발에는 반드시 붉은 색이 들어가야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새삼스레 또 놀란다. 붉은 색은 우리들 마음을 설레게 하는 특별한 색인가 보다. 깃발이 있으니 또 노래가 따라 나올밖에 없는데, ‘아침은 빛나라…’는 것은 저녁의 어두움도 없앤다는 건지, 진종일 아침같이 떠오르기만 한다는 것인지, 아리송했다.

여전히 까까머리 촌뜨기는 깃발이 올라가면 노래는 따르는 것으로 알았고 이즘은 이골이 나도록 익혔으니 이젠 서슴없이 입술과 목젖을 움직인다. 그러면서 새 깃발에 밀려서 별 속으로 숨어버린 태극이 극점을 맴돌다가 반드시 내려오리라고, 이번에는 까만 눈동자의 검은 점이 극점을 향해서 빛을 반짝였다. ‘아침은 빛나’는 것이지만 저녁은 어두워지는 것, 아침 해만 보고 따르던 까까머리 촌뜨기는 밤중에 길을 잃고 헤매다가 날아가 버린 태극의 극점으로 빨려 들어갔으나 까까머리가 옮긴 발은 겨우 눈에 보이지 않는 선, DMZ를 넘었을 뿐이다.

까까머리 촌뜨기는 아직 낮이면 박꽃이 하얗게 피어 처마 밑으로 드리워 하늘거리는 동그라미 박 순 끝을 매만지고 밤이면 달이 걸린 감나무 아래서 계수나무와 달 토끼에 손짓하건만, 남북은 여전히 두 깃발을 떠받히며 ‘동해 물’에서 ‘아침은 빛’날 수 없다고 하거나 ‘아침은 빛’나서 ‘동해 물’은 마를 것이라고 한다. 또 ‘동해물과 백두산’은 ‘아침만 빛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보우’로 세세에 ‘삼 철리’를 지키며 ‘아침은 빛나’ 봤자 잠시 뿐이라고 한다.

까까머리 촌뜨기는 이번에는 까만 동자의 까만 점을 아예 닫아 버린다. ‘동해물’에서 ‘아침은 빛나’니 이제 새로운 깃발과 이 깃발을 밀어 올리는 새로운 노래가 탄생될 터인즉 이 노래가 까까머리의 목젖을 울리고 혀끝을 맴돌아서 입술을 놀리는 날, 기막힌 그 날이 또 까까머리의 생전에 밀어닥칠 것인지?

그렇다면 그때에 까까머리 촌뜨기는 박 순의 동그라미 순을 매만지며 감나무 끝에 걸린 보름달 계수나무 토끼에게 ‘내 비록 때를 잘 못 만나서 ’한‘ 자리에 ’양‘발을 디디고 ’세‘ 깃발을 향해서 ’네‘ 노래 말과 ’다섯‘ 곡이 붙은 깃발 밀어 올리기 나라사랑 노래를 내 한 입으로 했노라!’ 고 말하리라.

그 때에 토끼는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까까머리는 오늘도 토끼의 목 고개가 어디 있는지 찾으려고 처마 밑에 하늘거리는 동그라미 박 순을 매만지며 달 걸린 감나무 언저리를 떠나지 못한다. 까까머리는 아직 ‘한’자리에서 떠나 본적이 없이 ‘두’ 발로 버티고 서 있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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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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