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姓

외통프리즘 2009. 1. 2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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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姓

9578.040731 성姓

흔치는 않지만 제 성을 걸어 맹세의 다짐으로 농담하는 경우를 본다. ‘...면 내 성을 갈겠다’. 내기에 건 성이 너무 무거워서 차라리 거짓이고 너무 날이 서서 맹세의 효력조차 잃을 것 같다. 거기에 숨은 진짜 농이 있음을, 말하는 이는 잊고 있지 않나, 한번 눈을 감고 생각해보자. 우리 성의 순도(純度)가 얼마나 되는지를.

 

성은 목숨과 바꿀 수도 없는 내 존재의 전부이니 이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의 그 가치를 극대화 하는 의미로 쓰일 때만이 쓰인다고 할 때, 그 속에 더 큰 거짓이 숨어있어서 해학적이다.

 

아무튼, 이렇게 불멸하는 성의 절대 가치도 곰곰이 생각하면 많은 곡절이 그 속에 숨어있는 것 같아서 씁쓸하고, 그래서 그 말의 어원을 곱씹게 한다.

 

성을 걸고 맹세함은 정통성, 즉 혈통의 의심할 바 없음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지, 미심쩍거나 의문의 여지는 터럭만큼도 있을 리 없다는 의미에서 시작된다. 그러니까 부모와 조상은 믿어 의심하지 않으니 우리 부모와 조상을 걸고 맹세 한다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이 말, 그 맹세의 뒤에는 많은 사람이 그렇게 되어있지 않다거나 그렇게 되지 않을 개연성도 있음을 숨겨둔 말이리라.

 

과연 그런가 생각해 본다.

 

초기의 성은 권력의 산물이고 그 권력이 지속적이고 배타적 목적에서 생긴 일종의 종(種)의 이름이라야 그 의미에 손색이 없을 것인데, 그렇게 순수한가에는 의문이 간다. 그러니까 권력의 핵에서 멀어질수록 성의 쓰임새나 있을 이유가 희박해지는 것이 그 한 예이다.

 

한 집안이 권력에 끈이 달려있어 빛이 나는 성이었을 지라도 전락되어 그 반대로 된 경우, 어떤 연유로 해서 권력의 핵에서 지극히 멀리 떨어져 나가게 되어서 그가 갖고 있는 성씨가 오히려 먹고사는데, 즉 권력의 그늘에 기생할 때는 성은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권력으로부터 말살의 대상에 오를 것이니 스스로 성을 없애야 할 처지에 놓인다.

 

이런 경우는 고대 국가에서나 그랬을 것이고, 농경 시대에서는 지역적 권력으로 확산되면서 권한이 잘게 쪼개지는 사회구조에서 성씨가 차츰 여러 가족에 보편적으로 퍼졌다고 볼 때, 이때부터 여러 가지로 종의 보존수단이 생겨났을 것이고, 이 중에는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경향도 있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권력은 잡았는데-비록 작은 권력이라도- 대를 이어 내릴 남자아이가 없어서 '보쌈'을 해오는 일, 씨를 받기 위해서 씨받이를 드리는 일 등은 엄밀하게 성을 갈았다고 할 수 있겠고 피가 묽어졌다고 생각 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감쪽같다.

 

그런데 여기서도 우리는 성을 걸고 맹세하는 일을 상정해 볼 수 있는데, 이때에는 그 말하는 사람이 온전히 거짓, 아니 참말을 하게 되었고 부모나 조상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참말이 되었으니 우리네 성은 참으로 오묘한 데가 있어서 흥미롭다.

 

성씨의 기원은 참으로 상상을 뛰어넘는다. 조상으로 모시는 분의 업을 최대로 부각시키고 되도록 권력의 핵에 소급하여 연대하려 함은 아마도 지금의 위치나 권위의 상징이 과거의 행적에서 연유함을 절실히 드러내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핵으로 들어가려다가 실패함으로써 역적으로 몰려서 삼족이 멸하는 화를 입게 되는 것이다.

 

그 화를 면하려고, 그야말로 성을 가는 일이 있었을 것이고 거꾸로 노비의 신세를 면하려고 족보를 사고 끼워 넣고, 온갖 수단으로 버젓이 양지로 드러나는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일이 반복돼서 일어나는 집안도 있을 것이다. 그런 암울한 세태 속에서의 배태로 지금의 각성바지가 생겨났으리라고 생각하니 이 또한 흥미롭다.

 

뒤집어서 말해보면, 성을 갈아가면서 살아온 많은 하층민의 애환이 담겨있는 농익은 농담 속의 진담, 진담 속의 농담인데, 겉으로는 불변의 성으로 여기고 살고 있다. 모두 사회적 권력의 핵으로 향한 부나비의 형국에서 예외인 성은 없을 것이다.

 

성을 담보로 하는 농담은 언젠가는 그 불 속으로 들어가려고 변두리를 도는 궤도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의 생활 속의 농담인, 제한성을 갖고 있다.

 

우리 성은 어떤 유형일까? 궁금하다. 기록으론 알 수 없는 우리네 삶의 진수이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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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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