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백자

사적跡蹟迹 2009. 6. 4.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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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백자

백자는 규사와 산화알루미늄을 주성분으로 하는 백토로 성형한 그릇 長石質의 유약을 입혀 구워낸 도자기를 말한다.

백자의 색은 토의 성분, 유약의 성분, 가마 안의 조건 등에 따라 차이가 나며 특히 철분(특히 FeO, Fe2O3)의 함유가 많이 영향을 준다.

이러한 조건에 의해 백자는 乳白色(15세기),雪白色(16세기),灰白色(17세기),靑白色(18~19세기), 등으로 제작시기와 지역에 따라 색조의 차가 있게 된다.

조선백자는 고려계통의 연질백자와 중국의 원?명계통의 경질(또는 치밀질)백자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으나 고려계통의 연질백자는 조선 초기인 15세기에만 제작되고 중국계통의 경질백자가 조선백자로 발전하게되었다.

백자는 분청사기와 함께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자기로 초기에는 분청사기에 비하여 양적으로 매우 적었지만, 15세기 후반의 官窯의 설치와 함께 양적?질적으로 발전하여 분청사기가 임란 이후 완전히 백자에 흡수되어 소멸된 것과는 달리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제작되고 사용되었다.

조선조에 들어와서 초기부터 백자의 생산과 관리에 힘을 기울여 독특한 조선 백자의 발전을 이루었다.

왕실에서 백자를 널리 사용함에 따라 광주 분원을 비롯하여 서울 근교에서 백자를 많이 생산하였다. 전기의 백자는 약간 푸르름을 머금었고, 태토는 순백이어서 마치 소복이 쌓인 함박눈 같았다.

이 시기의 기형은 원만하면서 풍만하지 않고 유연한 선의 흐름에서 절제하는 가운데 내면의 선비다운 절조를 담고 있어 당시 조선 왕조의 이념을 형상화한 품격이 있다.

중기의 백자는 태토는 순백이며 유약에 미량의 철분이 들어 있어 전기보다 더 담담한 푸르름이 깃들여 있고, 유약은 망상의 빙렬이 있는 경우가 많다.

기형은 준수한 모습으로 좁고 길며, 각이 진 형태가 나타나기도 하였고, 항아리의 구연부(口緣部)도 부드러운 각으로 마감한 것이 많다. 특히 이 시기에는 왕실 이외에도 양반 집안의 제기와 사대부들의 문방구 등에 사용되면서 다양해졌다.

후기에는 관영이 밀려나고 민영화되면서 실용적인 백자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이 시기에는 태토는 순백이며, 대부분 기벽과 유약이 두꺼우며, 유약에 철분의 함유가 많아 푸르름이 더 심해져서 청백자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고화도에서 완벽하게 자화(磁化)가 이뤄어져 매우 치밀하고 견고하였다. 기형은 너그럽고 풍만하면서 대접, 병 등의 구연부가 밖으로 벌어지거나 특별한 모양을 내는 것이 없고, 몸체에도 유연한 곡선이 없이 솔직하고 단정하였다.

중기보다 실용적이고 기능적이면서 새로운 많은 기형이 생겨나고 형태도 다양해졌다.

국보 93호,백자 철화포도문호


국보 107호, 백자 철사포도문호


국보 166호, 백자 철화매죽문대호



국보 168호, 백자 진사매국문병


국보 170호, 청화백자 매조죽문호


국보 175호, 백자 상감연


국보 176호, 청화백자(홍치명)송죽문호

국보 219호, 청화백자매죽문호


국보 222호, 청화백자매죽문호 


국보 258호, 청화백자 죽문각병


국보 261호, 백자호

국보 262호, 백자대호


국보 263호, 청화백자 산수화조 문대호


국보 281호, 백자 주자


국보 286호, 백자발

국보 294호, 청화백자 철사 진사 국화문병

백자부(白磁賦) / 김상옥 (金相沃)

찬서리 눈보라에 절개 외려 푸르르고
바람이 절로 이는 소나무 굽은 가지
이제 막 백학(白鶴) 한 쌍이 앉아 깃을 접는다.
드높은 부연(附椽) 끝에 풍경 소리 들리던 날
몹사리 기다리던 그린 임이 오셨을 제
꽃 아래 빚은 그 술을 여기 담아 오도다.
갸우숙 바위 틈에 불로초 돋아나고
채운(彩雲) 비껴 날고 시냇물도 흐르는데
아직도 사슴 한 마리 숲을 뛰어 드노다.
불 속에 구워 내도 얼음같이 하얀 살결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지다.
흙 속에 잃은 그 날은 이리 순박(淳朴)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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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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