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견 - 고

고사성어 2021. 6. 22.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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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 견 - 고



■ 견강부회 牽强附會
[끌 견/강요할 강/붙일 부/모을 회]
☞말을 억지로 끌어다가 이치에 맞추려고 우겨댐. 견 - 고
[유] 아전인수 我田引水/수석침류 漱石枕流/영서연설郢書燕說,추주어륙[推舟於陸>**牽 : 牽引(견인).牽引車(견인차).附着(부착)
[예문] ▷ 나는 최근의 팩션 경향에 반감을 갖고 있다. 역사적 현실을 소재로 사용하되 견강부회하여 갖다 붙이는 해석에 반감을 갖는 거다. 오히려 당대에 근접해 당 대를 최대한 살려내고 거기서 우러나오는 힘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2006 씨네21-2007 역사영화열풍>
▷ 하지만 정치권 외부의 전문가들은 백악관의 주장에 냉소적이다. 이라크의 상황 악화를 반군들의 정치적 의도와 연결지으려는 것은 지나친 견강부회라는 것이다. 워싱턴에 있는 국제전략연구센터의 앤서니 코데스먼은 “10월 미군 사망자가 늘어난 것은 미군이 수도를 장악하기 위해 더 많은 병력을 바그다드로 투입시킨 데 따른 것”이라고 일축했다<2006 서울신문>
▷ 공황이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을 맞아 루스 벨트는 국가가 무엇이고 정부가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극단적으로 말해 굶어 죽든 잘 먹고 잘살든, 그때까지는 개인의 문제에 속한 삶의 문제를 국가와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새로운 개념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지금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를 루스벨트의 경우와 비교하는 것은 견강부회에 가까울지 모른다. 그러나 굳이 비슷한 점을 찾자면 좌우의 샌드위치 신세라는 점이다. <2003 문화일보>
[참고] 영서연설[郢書燕說]郢땅 이름 영/書 쓸 서/燕 제비 연/說 말씀 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초(楚)나라의 도읍 영에서 온 편지에 대하여 연(燕)나라 측에서 해석한 것을 뜻한다.
《한비자(韓非子)》 <외저편(外儲篇)>에 의하면 편지를 쓴 사람이 날이 어두워 하인에게 등촉을 들라고 명령한 다음, 자신도 편지에 ‘거촉(擧燭)’이라 쓰고 말았다. 이것을 읽은 연나라의 대신은 거촉을 명철함을 존중하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현자(賢者)를 많이 등용하여 치적을 올렸다는 고사(故事)에서 유래한다. 견강부회와 통한다.


■ 견금여석 見金如石
[볼 견/쇠 금/같을 여/돌 석]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풀이되며 지나친 욕심을 절제함을 뜻함
[출전] 『용재총화(傭齋叢話)』
[내용] 최 영 장군이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가 항상 그에게 경계하여 말하기를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최영은 항상 이 네 자로 띠에 새겨놓고 죽을 때까지 가슴에 품고서 잃지를 않았다.최영은 비단 조각에 ‘見金如石’(견금여석)이라 써서 지니고 다녔다. 최영은 宰相(재상)의 班列(반열)까지 올랐으나 살림살이는 일반 百姓(백성)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는 “나는 평생 貪慾(탐욕)을 부린 일이 없다. 내 말이 사실이라면 나의 무덤에는 풀이 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遺言(유언)했을 만큼 자기 管理(관리)에 徹底(철저)하였다.
[원문] 崔鐵城瑩 少時 其父 常戒之曰 見金如石, 瑩 常以四字 書諸紳 終身服膺而勿失 雖秉國政 威行中外 而一毫 不取於人 家才足食而已


■ 견리사의 見利思義
[볼 견/이로울 리/생각 사/옳을 의]
☞이익되는 것을 보면 먼저 義理에 합당한가를 생각함.
[원] 견리사의 견위수명 [見利思義 見危授命]
[반] 견리망의[見利忘義]
[출전] 『논어』
[예문]
▷ 유교에서는 의주리종(義主利從)과 견리사의(見利思義)를 이야기한다. 공자는 "이익을 좆아서 행위하면 원망이 많게 된다"(放於利而行,多怨)고 하여 이익보다는 도의가 소중함을 말하였고, 맹자는 "군자는 의로움에 밝고, 소인은 이로움에 밝다"(君子喩於義,小人喩於利)고 하여 이익에만 전념하는 사람을 소인으로 경멸했다. <원광대 열린정신포럼>
▷ 이제부터라도 모두가 견리사의(見利思義)하는 마음으로 한 걸음씩 물러나 대회의 성공을 위해 힘과 뜻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동아 여론 마당>
▷ 앞으로는 강원도 전체의 발전과 개별 지역의 발전을 동시에 추진하기 위해 견리사의(見利思義)의 큰 정신을 회복하고 소탐대실(小貪大失)이 아니라 소실대탐(小失大貪)의 적극적 접근을 해야 할 것이다.<2005 강원일보>



■ 견마지년 犬馬之年
[ 개 견/말 마/어조사 지/해 년]
☞남에게 자기 나이를 낮추어 겸손하게 이르는 말.
[동] 犬馬之齒(견마지치) / 犬馬之齡(견마지령)


■ 견마지로 犬馬之勞
[개 견/말 마/어조사 지/수고로울 로] ☞개나 말의 수고로움. 정성껏 수고를 다하는 노력. 또는 자기의 노력을 낮추어서 일컫는 말.
[동] 汗馬之勞 한마지로,
[유] 견마지심(犬馬之心) 구마지심(狗馬之心),분골쇄신(粉骨碎身), 진충갈력(盡忠竭力), 구치(驅馳)
[출전] 『史記』
[예문] ▷ 수양은 나쁜 방면을 모름이 아니로되 그의 쉽지 않은 지혜를 높이 보아서 그를 긴히 쓰고자 함이었다.‘대감의 지혜와 지식 ― 국가를 다스림에 없지 못할 것이외다. 대감과 힘을 아울러 우리 전하를 도웁시다. 나으리 앞에서 견마의 노를 다 하오리라’수양은 인지의 손을 잡은 채 입을 닫았다.金東仁,『首陽大君』]
▷한 실장은 이날 동국대 강연에서도 현 정부의 업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김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도록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겠다"고말했다.<한국일보>
▷ 지금, 현재 가장 화급한 부분은 정책제시와 관련, 할 수 있는 최대규모의 ‘신뢰조성’이라는 공적자금을 시장에 쏟아붓는 일이다. 정말 보고 싶은 것은 문제해결을 위해‘견마지로’를 다하는 당국자의 모습이다. <2003파이낸셜뉴스>


■ 견마지양 犬馬之養
[개 견/말 마/어조사 지/기를 양]
☞개나 말의 봉양. 부모를 봉양만 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없음.--개나 말을 기를 때에도 먹이기는 한다. 부모를 모시는 데 먹는 것이나 돌보고 만다면 개와 말을 기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즉, 부모를 소홀히 대접하고 공경하지 않음을 뜻함 [출전] 『논어』
[참고] 견마지심 犬馬之心--임금이나 부모에게 바치는 충성, 효성(=狗馬之心,『史記』)


■ 견문발검 見蚊拔劍
[볼 견/모기 문/뽑을 발/칼 검]
☞모기를 보고 칼을 뺀다. 보잘것 없는 작은 일에 지나치게 큰 대책을 세움. 또는 사소한 일에 화를 내는 소견이 좁은 사람.
[유] 割鷄焉用牛刀--닭잡는데 어찌 소칼을 쓰리오『논어』/ 노승발검(怒蠅拔劍): 파리를 보고 화를 내어 칼을 빼어 들고 쫓는다는 말로, 사소한 일에 화를 잘 냄
[예문] ▷ 이러한 상황에서 세계에 대한 미학적 경험을 중시하는 자율 지성은 딛고 설 땅이 없다. 하하하. 웃어서 죄송합니다만, 자꾸 웃음이 나오는군요. 제가 즐겨 쓰는 표현입니다만, 견문발검(見蚊拔劍)이라고나 할까요? 모기 보고 칼을 뺀다. 이런 말씀입니다<인물과 사상>강준만
▷ 미 정보국 첩보로도 핵폭탄을 1~2개 가지고 있을지 말지 하고 미사일 정확도는 형편없는데 대포동2호가 개발되면 애리조나의 피닉스와 위스콘신의 메디슨이 사정거리에 들어간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럼즈펠드 보고서)은 견문발검(見蚊拔劍), 즉 모기 보고 칼 빼드는 격이 아닐 수 없다.<중앙일보 김영배 칼럼> ▷ 미신고 고액과외 교습자에 대해서는 세무조사를 실시하겠다고 하나 모기 보고 칼을 빼는 견문발검(見蚊拔劍)의 감이 있다. 국가의 조세권이 징벌 수단으로 남용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세무조사는 결코 해결책이 아니며 세금 내기를 두렵게 만드는 부작용이 따른다<2001동아일보>


■ 견물생심 見物生心
[볼 견/만물 물/날 생/마음 심]
☞물건을 보면 욕심이 생기게 마련임.
[동]이목지욕 耳目之慾--귀로 듣고 눈으로 봄으로써 생기는 물욕 / 온갖 종류의 욕망, 감각적 욕망『文選』
[예문]
▷ 견물생심으로 금을 보고 그대로 둘 사람이 누구랴.≪이기영, 신개지≫
▷ 휴학을 한 이후 용돈이나 벌고자 취업한 백화점에는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명품 의류들이 즐비했다.`견물생심(見物生心)`이 발동했다.열흘 정도 살펴보니 백화점 내부 경비시스템도 생각보다 허술했다..<2006 헤럴드경제-견물생심에 눈먼 여대생>
▷ 2년간 쉬면서 사람이 됐다는 두 멤버는 스타, 인기에 대한 욕심을 버린 듯 초탈해 보였다."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옛날엔 협찬 제품을 받는 것도 좋았어요.<2006 연합뉴스-연예>


■ 견백동이 堅白同異
[굳을 견/흴 백/같을 동/다를 이]
☞是를 非라 하고 非를 是라 하며 同을 異라 하고 異를 同이라 하는 것과 같은 억지논리.궤변
[출전] 『史記』
[내용] 전국시대 조나라의 학자 공손룡이 "단단한 흰 돌을 눈으로 보아서는 흰 것을 알 수 있으나 단단한지는 모르며, 손으로 만져 보았을 때는 그 단단한 것을 알 뿐 빛이 흰지는 모르므로 단단한 돌과 흰돌과는 동일물이 아니다"라고 억지 논리를 폈다
[참고] 상리근의 제자들과 오후의 무리들과 남방의 묵가인 고획, 기치, 등릉자의 무리들은 모두 묵자의 경전을 읽고 외웠지만, 서로 어긋나 주장이 같지 않고 서로 묵자와 다르다고 공격을 했다. 견백동이(堅白同異)의 궤변으로 서로 욕하고, 혹은 남과 어울리기도 하고, 혹은 자기 홀로 이치에도 맞지 않는 말로써 서로 대응했다. 그리고 자기 파벌의 스승을 성인이라 하며, 모두가 묵자의 종주가 되어 후세에 묵가의 후계자가 되기를 바라는 상태가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묵적과 금활리의 생각이 옳을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행동은 옳지 못하다. 후세의 묵가들로 하여금 반드시 스스로를 괴롭힘으로써 넓적다리에는 살이 없고 정강이에는 털이 없도록 만들어주고 있을 뿐인 것이다. 이것은 천하를 어지럽히기는 해도 다스려지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묵자는 진실로 천하를 사랑하기는 했다. 올바른 도를 구하여 얻지 못한다면 비록 몸이 깡마르게 되는 한이 있다 해도 그만두지 않을 사람이다. 그가 재사임에는 틀림이 없다.(相里勤之弟子, 五侯之徒, 南方之墨子苦獲, 己齒, 鄧陵子之屬, 俱誦墨經, 而倍譎不同, 相謂別墨. 以堅白同異之辯相자, 以기偶, 不오之辭相應, 以巨子爲聖人, 皆願爲之尸, 冀得爲其後世, 至今不決.墨翟.禽滑釐之意則是, 其行則非也. 將使後世之墨者, 必自苦以비无발脛无毛, 相進而已矣. 亂之上也, 治之下也. 雖然, 墨子眞天下之好也, 將求之不得也, 雖枯槁不舍也, 才士也夫)<장자>


■ 견원지간 犬猿之間
[개 견/원숭이 원/어조사 지/사이 간]
☞개와 원숭이 사이처럼 사이가 아주 나쁜 관계.
[예문] ▷ 아무리 형제 사이가 견원지간이라 해도 혈육인 바에야 자기가 도와주지 않고 어쩔 것이냐….≪최일남, 거룩한 응달≫
▷ 퍼거슨 감독과의 관계가 많이 좋아졌다는 소감도 밝혔다.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두 명장은 설전을 주고받는 견원지간이었으나, 첼시가 강호로 급부상하면서부터 서로에 대한 반감의 수위가 전보다 많이 낮아졌다.<MBC스포츠> ▷ 후쿠다 총리와 다나카 의원은 고이즈미 정권 초기 관방장관과 외상을 지내면서 대북 문제를 놓고 견원지간(犬猿之間)으로 불리기도 했다. <2007 경향신문>


■ 견위수명 見危授命
[볼 견/위태로울 위/줄 수/목숨 명]
☞(나라가)위태로움을 당하면 (나라에)목숨을 바침[=見危致命]
[출전] 『논어』제14편 헌문(憲問)편
[내용 자로(子路)가 인간완성에 대해 묻자 공자가" 지혜, 청렴, 무욕, 용감, 예능을 두루 갖추고 예약으로 교양을 높여야 한다. 그러나 오늘에는 이익을 보면 정의를 생각하고 (見利思義),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칠 줄 알고(見危授命), 오랜 약속일지라도 전날의 자기 말을 잊지 않고 실천한다면(久要不忘平生之言) 역시 인간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고 답한 구절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 글귀는 '정당하게 얻은 부귀가 아니면 취하지 않는다',' 의를 보고 행하지 않는 것은 용감함이 아니다'는 뜻을 담고 있다. 見 利 思 義 見 危 授 命ㅡ견 리 사 의 견 위 수 명-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안중근 의사가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며 뤼순 감옥에서 쓴 것. 현재 동아 대학교간직되어 있다. 보물 제 569-6호.


■ 견인불발 堅忍不拔
[굳을 견/참을 인/아니 불/뺄 발]
☞굳게 참고 견디어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함.
[예문] ▷ 다방면에 걸쳐 독창적인 사상을 전개한 것은 그의 천부의 긴 생애와 시종일관한 견인불발의 학문적 사색과 노력의 산물 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안병욱, 사색인의 향연≫
▷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라는 애국가의 가사처럼 반만년 역사속에 거센 외세의 풍설에도 이겨낸 견인불발(堅忍不拔)의 정신. 바로 이것이 우리 민족혼의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소나무 같은 기개라 할 수 있다.<경기도 양평군 홈페이지>에서
▷ 올해 북한의 최대 화제는 정성옥의 세계여자마라톤 제패였다."정성옥 선수처럼 견인불발의 투지로 싸워 나가는 사상의 강자, 신념의 강자가 돼야 한다" 며 '정성옥 따라배우기' (노동신문 9월 4일) 의 거센 바람이 불었다.<중앙일보>


■ 견토지쟁犬兎之爭
[개 견/ 토끼 토/어조사 지/다툴 쟁 ]
☞개와 토끼의 다툼이란 뜻. 곧 양자의 다툼에 제삼자가 힘들이지 않고 이(利)를 봄에 비유. 횡재(橫財)함의 비유, 쓸데없는 다툼의 비유.
[동] 전부지공(田父之功). 방휼지쟁(蚌鷸之爭). 어부지리(漁父之利). 좌수어인지공(坐收漁人之功).
[출전] 『戰國策 齊策』
[내용] 전국 시대, 제(齊)나라 왕에게 중용(重用)된 순우곤(淳于)은 원래 해학(諧謔)과 변론의 뛰어난 세객(說客)이었다. 제나라 왕이 위(魏)나라를 치려고 하자 순우곤은 이렇게 진언했다." 한자로(韓子盧)라는 매우 발빠른 명견(名犬)이 동곽준(東郭逡)이라는 썩 재빠른 토끼를 뒤쫓았사옵니다. 그들은 수십 리에 이르는 산기슭을 세 바퀴나 돈 다음 가파른 산꼭대기까지 다섯 번이나 올라갔다 내려오는 바람에 개도 토끼도 지쳐 쓰러져 죽고 말았나이다. 이 때 그것을 발견한 '전부(田父 : 농부)는 힘들이지 않고 횡재[田父之功]'을 하였나이다. 지금 제나라와 위나라는 오랫동안 대치하는 바람에 군사도 백성도 지치고 쇠약하여 사기가 말이 아니온데 서쪽의 진(秦)나라나 남쪽의 초(楚)나라가 이를 기화로 '전부지공'을 거두려 하지 않을지 그게 걱정이옵니다." 이 말을 듣자 왕은 위나라를 칠 생각을 깨끗이 버리고 오로지 부국강병(富國强兵)에 힘썼다.
**세객 : 교묘하고 능란한 말솜씨로 각처를 유세(遊說)하고 다니는 사람. 제국 (諸國)의 군주(君主)가 저마다 패자(覇者)를 지향하며 패도정치(覇道政治)를 펼쳤던 전국 시대(戰國時代)에는 책사(策士) 모사(謀士) 또는 종횡가(縱橫家) 출신의 세객이 많았음.
[예문] ▷ 지나친 이해관계에 의해 상쟁하는 견토지쟁의 국면을 빨리 벗어나겠다<2004 연합뉴스-이해찬 인사청문>
▷ 지난 10년을 돌이켜 보면 견토지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국민 소득 1만 달러를 못 벗어나고 있다.<2004 연합뉴스-이해찬 인사청문> ▷ 선진국은 달아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상황에서 견토지쟁(犬兎之爭)으로 날을 새우다가는 중국 인도 같은 후발개도국에 추격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처지에 꼭 맞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2006 한국경제칼럼>


■ 결자해지 結者解之
[맺을 결/놈자/풀 해/어조사 지]
☞맺은 사람이 그것을 푼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그 일을 끝맺음.
[출전] 『순오지』 [원문] 結者解之 其始者 當任其終
[예문] ▷ 이리로 생각하고 저리로 생각하니 널로하여 생겼든지 널로하야 못살겠다 널로하여 죽게 되니 절로는 살길없다. 暫見復望이오 結者解之라니 다 썩고 남은 간장 고칠 길이 전혀 없다.(歌詞, 相思陳情夢歌)
▷ 무엇보다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 주식 400만 주 출연을 둘러싼 엇갈린 평가가 눈길을 끌었다. 중앙일보는 3면 '거액 사재 내놓은 결자해지' 기사에서 보듯 이 회장의 결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기자협회보>에서 ▷ 과학 기술자는 물질문명의 발달에 기여한바도 크지만, 그에 못지않게 환경 오염 문제를 유발한 책임도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오존층의 파괴, 지구 온난화 문제 등 환경오염의 구체적인 실상을 밝혀낸 것도, 그리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것도 과학 기술자이다. <현대과학은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 결초보은 結草報恩
[맺을/풀 초/갚을 보/은혜 은]
☞풀을 묶어서 은혜를 갚는다. ①죽어 혼이 되더라도 입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다. ② 무슨 짓을 하여서든지 잊지 않고 은혜에 보답하겠다. ③남의 은혜를 받고도 배은망덕한 사람에게 개만도 못하다고 하는 말.=結草啣環(결초함환)
[유] 刻骨難忘(각골난망)./ 難忘之恩(난망지은)/. 銘心不忘(명심불망)/白骨難忘(백골난망)
[속담] 머리털 베어 신을 삼는다. /털을 뽑아 신을 삼겠다. /개새끼도 주인을 보면 꼬리를 친다.
[출전] 『左傳』
[내용]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위무자(魏武子: 위주)에게 젊은 첩(조희)이 있었는데 위무자가 병이 들자 본처의 아들 과(顆)를 불러, "네 서모를 내가 죽거들랑 개가(改嫁) 시키도록 하여라." 하였으나, 위무자의 병세가 점점 악화되어 위독한 지경에 이르게 되자 아들 과(顆)에게 다시 분부하기를,"내가 죽거들랑 네 서모는 반드시 순사(殉死)케 해라." 라고 명하였다.그리고 위무자가 죽자 아들 과(顆)는, "사람이 병이 위중하면 정신이 혼란해지기 마련이니 아버지께서 맑은 정신일 때 하신 말씀대로 따르리라." 하고는 아버지의 처음 유언을 따라 서모를 개가(改嫁)시켜 드렸다. 그 후 진환공(秦桓公)이 진(晉)나라를 침략하여 군대를 보씨(輔氏)지역에 출전시켰다. 진(秦)의 장수 두회는 천하에 둘도 없는 유명한 장사였다. 본래는 백적(白翟)사람인데 일찍이 청미산(靑眉山) 밑에서 살다가 하루는 산으로 사냥을 나가서 주먹으로 호랑이 다섯 마리를 때려잡아 모두 가죽을 벗겨 가지고 돌아왔다. 진(秦의) 환공(桓公)이 두회의 용맹함을 소문으로 듣고 불러 우장군으로 삼았다. 두회는 장군이 되자 삼백 명의 군사만을 데리고 아차산(嵯峨山)에 할거하고 있던 산적 만여 명을 잡아들여 이름이 진(秦)나라 안을 진동시켰다. 그 공으로 두회는 대장군이 되었다.보씨(輔氏)지역에 있던 진(晉)의 장수 위과(魏顆)는 진을 펼치고 두회와의 싸움에 대비하였다. 두회는 말도 타지 않고 큰 도끼를 손에 들고, 역시 손에 도끼를 든 역전의 용사 삼백 명을 거느리고 아무 것도 거칠 것이 없다는 듯이 진군(晉軍) 쪽으로 돌입해 왔다. 두회와 300명의 용사들은 밑으로는 말의 다리를 찍고 위로는 장수들을 베는데 마치 그들은 모두 하늘에서 하강한 악귀처럼 보였다.
진(晉)의 병사들은 그렇게 생긴 악귀를 그 때까지 본적이 없었다. 두회와 그 부하들을 막을 수가 없었던 당진군의 전위부대는 크게 패하였다. 위과는 당진군에게 후퇴명령을 내리고 진을 굳게 봉쇄하고 절대 출전하면 안 된다고 명령을 내렸다. 두회가 삼 백의 도부수를 데리고 진군(晉軍)의 진영 앞으로 나와 삼일 밤낮을 욕설을 하며 싸움을 걸어왔지만 위과는 감히 싸움에 응하지 못했다.위과는 막사에서 앉아서 여러 가지 궁리로 고민을 하였으나 별 뾰쪽한 방법이 없었다. 이윽고 시간이 삼경(三更)이 되자 피곤을 못 이기고 몽롱한 상태에서 깜빡 잠이든 중에 누군가가 귀에 대고 "청초파(靑草坡)"라고 말해 주는 것을 들었다. 위과는 얼떨결에 꿈에서 깨어났으나 그 뜻을 풀 길이 없었다. 다시 잠을 청하여 자는데 똑같은 꿈을 꾸게 되었다. 위과는 동생 위기를 불러 자기가 꿈속에서 들은 이야기를 했다. 위기가 꿈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보씨(輔氏)들이 사는 땅 왼쪽으로 십리를 가면 큰 언덕이 한 개 있는데 그 이름을 청초파(靑草坡)라고 합니다. 혹시 우리가 이곳에서 섬진군을 물리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한떼의 군마를 끌고 먼저 가서 매복을 하고 있으면 형님께서는 남은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여 이곳으로 적군을 유인한 하여 좌우에서 협공한다면 승리를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위기가 매복을 하기 위하여 먼저 가고 위과는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진채를 거두어 모두 여성(黎城)으로 돌아간다 "위과가 후퇴를 한다고 군대를 물리치자 과연 두회가 그 뒤를 추격 해 왔다. 위과(魏顆)는 두회와 몇 합을 겨루다가 못 이기는 척하며 전차를 돌려 도주하여 두회를 청초파까지 유인하였다. 그러자 두회의 뒤쪽에서 갑자기 큰소리가 나며 위기(魏錡)의 복병이 쏟아져 나와 두회의 군사를 공격해 왔다.
위과도 도망을 치다가 몸을 돌려 위기와 함께 두회를 양쪽에서 포위하여 공격하였으나 정작 두회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120근 짜리 도끼를 상하좌우로 힘껏 마구 휘둘러 많은 장졸이 두회의 도끼에 죽어 나갔다. 비록 두회가 거느린 살수들이 위씨 형제들의 포위 공격에 어느 정도 피해를 입었으나 싸움을 승리로 이끌지는 못했다. 위씨 형제는 군사를 독려하여 두회와의 싸움에서 끝까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잠깐 사이에 청초파의 중간 지점까지 달려온 두회는 갑자기 헛발을 내딛고 앞으로 넘어졌다. 마치 신발 밑창에 기름을 바르고 빙판 위에 걷다가 미끄러지는 것처럼 두 다리로 버티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진(晉)의 군사들이 지르는 함성을 듣고 위과가 두 눈을 크게 뜨고 진군 (秦)쪽을 자세히 살펴보니 한 노인이 멀리서 보이는데 도포를 걸치고 짚신을 신은 것이 마치 농부의 모습을 하고, 파란 풀들을 한 가닥으로 묶어 두회의 발목을 붙들고 있었다.
위과와 위기의 전차 두 대가 두회에게 다가가서 둘이 동시에 창을 겨눠 땅바닥에 쓰러트린 다음에 군사를 시켜 생포하여 결박을 지우게 하였다. 두회가 거느렸던 살수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가다가 진(晉) 병사들의 추격에 거의 다 죽고 도망갈 수 있었던 사람은 사오십 명에 불과하였다. 위과가 사로잡힌 두회에게 물었다." 너는 스스로 영웅행세를 해 왔는데 어찌하여 포로가 되었는가?" 두회 " 나의 두 발이 마치 무엇에 걸리는 것 같아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것은 하늘의 뜻이라 내 힘으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위과가 속으로 참으로 기이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위기가 두회의 처리 문제에 대해서 의견을 말했다." 두회는 힘이 무쌍한 사람이라 군중에 그대로 놔두면 큰 변이 일어나지 않을까 근심이 됩니다." 위과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 위과는 즉시 두회를 참수토록 하고 직산(稷山)에 있던 진(晉) 경공에게 전과를 보고했다. 그날 밤이 되어 위과가 막 잠이 들자 꿈속에서 한 노인이 읍을 하면서 다가와 말을 했다. 노인 "장군은 두회가 어떻게 해서 잡히게 된 줄 아십니까? 그것은 이 노구가 결초하여 두회로 하여금 발이 걸려 넘어지도록 해서 잡게 된 것입니다. "위과가 놀래어 꿈속에서 노인에게 말하였다." 나는 본래 노인장과는 일면식도 없는 처지인데 이렇게 큰 도움을 얻었으니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노인 "나는 곧 조희(祖姬)의 아버지 되는 사람입니다. 장군이 부친의 치명(致命)을 받들어 부친이 돌아가신 후에 내 딸을 좋은 배필을 골라 개가 시켜 주어 노구(老軀)가 구천 지하에서 딸의 목숨을 구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가 이번 차제에 미력한 힘이나마 사용하여 장군으로 하여금 군공을 이룩케 한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부단히 공덕을 쌓기를 노력하시면 후세에 이르러 영화롭게 되어 존귀한 왕후의 열에 서게 될 것입니다. 부디 이 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염선(髥仙)이 시를 지어 칭송했다. 結草何人亢枓回(결초하인항두희)누가 결초하여 두회를 잡게 했는가? 夢中明說報恩來(몽중명설보은래)꿈속에서 노인이 나타나서 은혜를 갚기 위해서 왔다고 했다.勸人廣積陰功事(권인광적음공사)사람들에게 음덕을 널리 쌓으라고 권하노라理順心安福自該(리순심안복자해)마음을 순리에 맞추어 편안히 하면 스스로 복 받지 않겠는가?
[원문] 秋七月, 秦桓公伐晉, 次于輔氏. 壬午, 晉候治兵于稷, 以略秋士, 立黎侯而還. 及洛, 魏顆敗秦師于輔氏, 獲杜回, 秦之力人也. 初, 初魏武子有擘妾無子 武子病 謂其子顆曰“我死 嫁此妾”病極 又曰“殺爲殉”及死 顆曰“寧從治時命而嫁之” 及輔氏之役 魏顆 見老人結草 以亢杜回 回跌而顚 故獲之. 後에 顆夢에 老人 云“我而所嫁婦人之父也 爾從治命. 余是以報.”--『春秋左氏傳』** 次(머무를 차), 候( 염탐할 후), 稷山, 秋士: 狄土일 수 있음, 黎城, 嫁(시집보낼 가), 殉(따라죽을 순), 亢(막을 항) ,杜(막을 두), 跌(넘어질 질), 顚(엎어질 전)
가을7월 진桓公이 晉을쳐서 輔氏지역에 머물렀다.晉은 물러나 稷山에서 망을 보며 군대를 지휘했다. 狄土를 공략하여 (略秋士를) 黎城의 제후를(로) 세우고 돌아왔다(?분명치 않음). 위과가 輔氏지역에서 진 군대에게 패할 때쯤 두회를 잡았는데 秦의 力士였다. 처음에 위무는 첩이 있었는데 둘사이에 자식이 없었다. 무자가 병이 들어 그 아들 顆에게 이르기를 "내가 죽으면 이 첩을 개가를 시켜라" 병이 심해지자 또 이르기를 "죽여서 순장을 시켜라" 죽자 顆가 말하기를 "어찌 정신이 있을 때의 명을 따라서 개가시키지 않으리오?" 輔氏지역 전투에서 위과는 노인이 풀을 묶어 두회를 막는 것을 보았는데, 두회가 발이 걸려 넘어졌다. 때문에 잡을 수 있었다. 나중에 顆의 꿈에 노인이 말하기를 "나는 당신이 개가시킨 부인의 아비입니다. 당신이 정신이 있을 때의 命을 따라서 내가 이로써 갚는 것입니다."
[참고1] 함환(啣環) (啣: 머금을 함. 環: 고리 환)
[원말] 함환이보(啣環以報).
[출전]《후한서(後漢書)/양진전(楊震傳)》[내용] 양보(楊寶)라는 아주 착한 아이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양보는 화음산(華陰山)에서 다친 꾀꼬리 한 마리를 발견하였다. 양보는 꾀꼬리를 집으로 데려와 잘 치료하여 낫게 한 다음 날려 보내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꾀꼬리가 다시 날아와 양보에게 말했다."저는 서천왕모(西天王母)의 사자(使者)인데, 그대에게 드릴 네 개의 백옥환(白玉環)을 물고 왔습니다. 장차 그대의 자손들은 모두 이 백옥처럼 정직하고 고결하여, 높은 벼슬에 오를 것입니다." 훗날 양보의 자손들은 모두 조정의 대관(大官)들이 되었다 한다.
[참고2] 再嫁·改嫁 : 일반적으로 시집갔던 여자가 다시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는 것. 조선시대에는 엄격히 구분하여, 再嫁는 남편이 살아있을 때 다시(再) 다른 남자에게 시집간 것을 설명한 말이고, 改嫁는 남편이 죽은 다음에 다른 남자에게 고쳐(改) 시집간 것을 지칭한 말이다. (팔자를 고쳐 새롭게 시작)
[예문] ▷ 영감의 은혜는 백골난망이외다. 죽어 저승에 가서라도 결초보은을 하오리다.≪박종화, 임진왜란≫
▷ 저희 모녀는 그분에게 반드시 결초보은할 것입니다.
▷ 낭군은 첩의 유언을 저버리지 마르사 전일의 정의를 생각하시고 이 두 딸을 어엿비 여겨 장성한 후 같은 가문에 배필을 얻어 봉황의 짝을 지어 주신다 하면 첩이 비록 명명한 가운데라도 낭군의 은택을 감축하여 結草報恩하리이다.《薔花紅蓮傳》
▷ 어소, 이 사람아. 연실이라는 말이 당치않네. 강남 미인 들이 초야반병 날 맑을 적에 죄다 따 버렸는데 제까짓 놈 이 어찌 연실을 물어 와? 뉘 박 심은 데서 놀다가 물고 온 놈이제. 옛날 수란이가 배암 한 마리를 살려, 그 은혜 갚느라고 구실을 물어 왔다더니마는, 그 물고 오는 게 고마운께 우리 이놈 심세 《흥보가》
▷ 위흔이는 영특하고 걸출한 아이니 언젠가는 너를 도와반드시 결초보은할 것이니라." 그리하여 김우징은 아버지의 명을 받들어 김양을 무진의 도독으로 영전시키지 아니하였던가.<해신>中에서
▷ 내일이라도 영광스럽게 감옥을 나가실 분이 아니십니까? 그러니 부디 저를 살려주시면 결초보은(結草報恩) 하겠습니다." 말의 의미를 확연하지 않게 하였다.<백범일지> 中에서
▷ 현재 목포는「기회와 희망의 땅」에서 기회와 희망이 실현된 「번영과 축복의 땅」으로 변모하고 있는 중차대한 시기로 한 번 더 고향발전을 위해 봉사해 달라는 목포 시민의 염원과 기대를 깊이 새겨 앞으로 4년 동안 결초보은의 각오로, 오직 목포발전을 위해 시장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겠다<2006 연합뉴스>


■ 겸인지용 兼人之勇
[아우를 겸/사람 인/어조사 지/용기 용]
☞혼자서 능히 몇 사람을 당해 낼 만한 용기.
[출전] 『논어(論語)』 선진편(先進篇)
[원문] 子曰, "求也退, 故進之, 由也兼人, 故退之."
[내용] 공자가 '구(求:공자의 제자)는 소극적이기 때문에 격려해 주었고,유(由:공자의 제자)는 두 몫 이상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겸손하도록 가르쳐 주었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겸인지용(兼人之勇)이라고 하면 혼자서 두 사람 몫을 겸하는 빼어난 용기를 뜻한다.
[예문] ▷ 한신의 사람됨은 내가 평소부터 잘 알고 있어 다루기가 쉽다(이여이·易與耳). 그는 빨래를 생업으로 삼고 있는 가난한 아낙네(표모·漂母)에게서 밥을 빌어먹었을 만큼 제 몸 하나 먹여 기를 재주가 없고, 불량배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나가야 하는 욕을 보아야 했을 만큼 몇 사람을 당해낼 용기도 없으니 조금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거기다가 제나라를 구원하러 왔으면서 싸우지도 않고 항복만 받아낸다면, 그게 무슨 공이 되겠는가? ≪2005 동아일보-[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17>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자라 말하기를 "너는 우물안 개고리.라. 오직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도다.五子胥의 兼人之勇도 검광에 죽어지고, 楚覇王의 氣蓋世도 垓下城에 패하였나니 우직한 네 용맹이 내 지혜를 당할소냐≪토끼전≫
▷ 남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망연(茫然)히 오래 있다가 말하기를,“오늘 이지정(李之楨)의 집에 가서 서로 바둑을 두다가 인하여 말하기를, ‘북방에 일이 있으면 나라에서 반드시 나를 장수로 삼을 것인데 누가 부장(部將)을 맡을 만한가?’ 하니, 이지정이 말하기를, ‘민서(閔여)·김견수(金堅壽)·장효손(張孝孫)이 모두 겸인지용(兼人之勇)이 있으나, 장효손은 외방에 있고 김견수는 이미 현용(顯用)되었고 또 외방에 있으니, 오직 민서가 좋다.’고 하였습니다<최정안의 한국중세사 강의실>


■ 경거망동 輕擧妄動
[가벼울 경/들 거/망령될 망/움직일 동]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경솔하게 함부로 행동함.
[반] 인자중 隱忍自重
[유] 개구리가 뛰면 올챙이도 뛴다. 망둥이가 뛰면 꼴뚜기도 뛴다 [예문] ▷ 경거망동을 삼가다
▷ 경거망동을 뉘우치다
▷ 중벌을 받고 있는 적객 신분으로서 조용히 근신하지 못하고 난리에 가담하여 난민 대장이 되다니 이 무슨 경거망동일까? ≪현기영, 변방에 우짖는 새≫
▷ 매제가 어린애도 아니겠고 풍상도 겪을 만큼 겪었으니 경거망동할 사람은 아니다.≪박경리, 토지≫
▷ 이 신문은 "미제가 우리의 존엄높은 정치체제를 넘보고 헛된 꿈을 꾸고 있는데 대해 추호도 용납할 수 없다" 며 "미제는 경거망동하지 말고 무모한 북침 핵전쟁 음모를 당장 철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2006 연합뉴스-북 노동신문 기사>


■ 경국지색 傾國之色
[기울 경/나라 국/어조사 지/여인 색]
☞나라를 기우릴 만한 여자.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미인도 [동] 傾城之美(경성지미)/ 萬古絶色(만고절색)/ 絶世(代)美(佳)人(절세가인)/一顧傾城(일고경성) / 丹脣皓齒(단순호치)-붉은 입술 흰 이/明眸皓齒(명모호치)-맑은 눈동자와 흰 이/花容月態.(화용월태)-꽃같은 용모와 달빛같은 자태/雪膚花容(설부화용)-눈같이 흰 피부와 꽃같은 용모/羞花閉月(수화폐월)--꽃도 부끄러워하고 달도 숨을 만큼 아름다운 미인『장자』/沈魚落雁[침어낙안]--물고기가 숨고 기러기가 떨어지다/ 國香(국향), 國色(국색) [반]薄色(박색) : 매우 못생긴 여자.
[출전]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 『漢書』
[내용] 漢나라의 武帝 때 음악에 재능이 있고 춤이 뛰어난 이연년(李延年)이 어느 날 무제 앞에서“북방에 아름다운 사람이 있는데, 세상에 견줄 만한 것 없이 홀로 서 있네. 한 번 돌아보면 성이 기울고, 두 번 돌아보면 나라도 기우네.”라고 노래 하였다. 무제는 이연년의 누이동생을 빗댄 노래임을 알고 그녀를 불렀다. 과연 절세 미인이엇고 춤도 잘 추어 그 미모에 빠졌다.
[원문] 北方有佳人한대, 絶世而獨立이네. 一顧傾人城하고, 再顧傾人國이네.--, '李夫人傳'
▷ 絶(끊을 절) 薄(엷을 박) 獨(홀로 독) 顧(돌아볼 고) 再(다시 재)
[해설] 傾國의 본뜻은‘나라를 위태롭게 한다’이다. 史記 항우본기(項羽本記)에 고조(高祖)가 항우에게 부모 처자를 포로로 빼앗겨 괴로와하고 있을 때, 후공(候公)이 그의 변설(辯舌)로써 이들을 찾아왓다. 이때 고조는“이는 천하의 변사(辯士)로다. 그가 있는 곳이면 나라도 기울게 하리라.”한 것이 본 뜻이다.
[참고]
▷玉樹後庭花(옥수후정화)--남북조 시대에 陳(진)나라의 마지막 왕 후주가 사치하고 놀기를 좋아 하여 항상 연회를 베풀고 빈객을 청하여 궁녀(양귀비)들과 함께 불렀던 음란한 노래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악학궤범》에 후전(後殿)·후정화(後庭花),북전 [北殿]이라하여 고려 충혜왕(忠惠王)이 뒤뜰에서 여자들과 어울려 불렀다고 전해지는데 조선 세종 때 폐지되었다고 한다. 이어 성종 때 성현(成俔)이 왕명에 의하여 악가(樂歌)를 개산(改刪)할 때, 조선창업을 송축한 가사로 개작하였다. 《악학궤범》에 실려 있는 1절은 다음과 같다. "山河千里北에 宮殿에 五雲高 ㅣ로다니/瑞日굽 輝輝明璃陛어 騎騎香煙굽繞袞袍ㅣ로다나."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향악공(鄕樂工)을 뽑을 때 시험곡으로 썼다는 기록도 있다.
麗宇芳林對高閣新粧艶質本傾城 여우방림대고각이요 신장염질본경성을
映戶凝嬌乍不進 出유含態送相迎 영호응교사부진하니 출유함태송상영을
妖姬瞼似花含露 玉樹流光照後庭 요희검사화함로하니 옥수유관조후정을
화려한 집 꽃숲은 높은 누각을 대하고 새로 단장한 아름다운 몸매는 성을 기우릴 지경이로다.
문을 비친 엉긴 교태에 짐짓 움직이지 않으니
휘장을 나와 먹음은 교태는 보내며 서로 맞이하네.
아름다운 여인의 뺨은 꽃이 이슬을 머금음과 같고
아름다운 나무는 빛을 흘리어 뒤 정원을 비추네.
▷ 이백(李白)의 [名花傾國兩相歡]
▷ 백거이의 『장한가』의 [한왕은 색(色)을 중히 여겨 傾國을 생각한다.]※ 중국 고대 미인의 조건. 옛날 중국의 황제들은 수많은 궁녀를 거느렸는데, 궁녀들은 모두 빼어난 미모를 갖추고 있었으며, 경국지색을 겸비한 미녀들 또한 적지 않았다. 그 시절 미녀들은 어떤 조건을 구비하였는지 무척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다음에 열거하는 몇 가지 조건들을 살펴보면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오발선빈(烏髮蟬鬢): 烏까마귀(검을) 오/髮 머리 발/蟬 매미 선/鬢 귀밑털 빈/미인들은 머릿결이 칠흑(漆黑)같이 검은빛을 내야만 했다. 서 있을 때에는 긴 머리카락이 검은 폭포처럼 아래로 흘러내렸으며, 광택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넋을 빼앗는 향기를 발하였다.「선빈(蟬鬢)」이란, 매미의 날개처럼 쪽진 두 갈래의 머리를 말한다.「오발(烏髮)」이라는 말은 <좌전>에 이미 나타나지만, 「선빈(蟬鬢)」의 기원은 위(魏)나라 문제(文帝)의 후궁이었던 막경수(莫瓊樹)라는 미녀의 헤어스타일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머리를 매미 날개처럼 얇게 빗어 매우 아름다웠는데, 궁중의 다른 여인들이 그녀의 헤어스타일을 모방하면서부터 「선빈(蟬鬢)」이라는 말이 나타나게 되었다.
2.운계무환(雲髻霧鬟): 雲 구름 운/ 髻 상투 계/霧 안개 무/鬟 쪽진머리 환/계나 환 등은 모두 쪽진 머리를 뜻하며, [운계무환]란 여인들의 머리가 운무(雲霧)처럼 높게 쪽지어진 것을 형용하는 말이다.전설에 따르면, 「계환(髻鬟)」은 「여왜(女왜)」에게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여왜는 양털로 가는 실을 만들어 이를 머리 뒤에 묶고, 다시 대나무로 만든 「비녀」를 머리 밑부분에 꽂아 「계(髻)」를 만들었다.전한(前漢) 성제(成帝)의 총희 합덕(合德)은 목욕할 때. 머리에 향수를 뿌리고 다시 머리카락을 가볍게 말아 「계(髻)」를 만들었는데, 그 모양이 매우 아름다웠으며, 이 때문에 성제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후한(後漢) 명제(明帝) 때의 마황후(馬皇后)는 길고 짙은 촘촘한 머릿결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머리를 말아 올려 아주 높은 「계(髻)」를 만들고, 남은 머리카락으로는 머리를 세 번이나 더 돌릴 수 있었다고 한다.순제(順帝) 때의 데장군 양익(梁翼)의 아내 손수(孫壽)는 마황후의 헤어스타일보다 약간 비스듬하게 기운 「타마계(墮馬계)」라는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발명하였다. 「타마계」는 매우 아름다웠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널리 유행되기 시작하였다.전설에 의하면, 문제(文帝)의 황후는 매일 화장할 때면 한 마리의 청사(靑蛇)가 나와 그녀의 얼굴로 기어올라와 또아리를 틀었다고 한다. 황후는 청사가 또아리를 튼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곧 그 모습을 본따서 머리의 모양을 만들고 보니 과연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그런데 매일 아침 청사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또아리를 틀었기 때문에, 황후 역시 그 헤어스타일을 매일 바꾸었다. 당시 사람들은 황후의 아름다운 헤어스타일을 「영사계(靈蛇髻)」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당(唐)나라 덕종(德宗) 때에는, 한때 「문소계(門掃髻)」라는 헤어스타일이 유행하였는데, 이것은 머릿결이 바람에 흩어지며 이마에서 출렁이는 모습을 하였다.
3. 아미청대(蛾眉靑黛) : 蛾 나방 아 / 黛 눈썹먹 대주(周)나라 때에는 여인들 사이에서 눈썹을 제거하고 그 위에 눈썹먹, 즉 [黛/대]로 검푸른 색의 눈썹을 그리는 풍조가 유행하였다. [아미/娥眉 또는 蛾眉]라는 것은 누에나방의 눈썹처럼 예쁜 눈썹을 이르는 말이다. 이는 초승달과 같은 형태를 하였는데, 초승달을 [아미월/月]이라고 부르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하였다.한(漢)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아내였던 탁문군(卓文君)의 눈썹은 길고 완만하게 구부러져 있어 멀리서 보면 산처럼 아름다왔다고 하며, 여기에서 [미여원산/眉如遠山]이라는 표현이 생겨났다.수나라 양제의 애비(愛妃) 오강선(吳絳仙)은 눈썹을 잘 그리기로 유명하였으며, 이때문에 수양제의 총애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수양제는 모든 궁녀들에게도 눈썹그리는 법을 배우도록 어명을 내렸다 한다. 이러한 눈썹을 그리는 법은 [아록대/蛾綠黛]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당시 궁녀들은 모두 페르샤에서 들어온 [라자대/螺子黛]라는 안료를 사용하여 눈썹을 그렸다. 그러나 이 안료는 값이 너무 비쌌으므로, 만약 궁중의 후비들이 모두 사용한다면, 하루에 적어도 다섯 상자 이상을 써야만 했다. 이때문에, 일반 궁녀들은 [라자대]에 구리의 녹분(綠粉)을 섞어 사용하였으며, 오직 오강선만이 순수한 라자대를 사용하여 눈썹을 그릴 수 있었다. 이로 미루어 오강선이 수양제의 총애를 얼마나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록대/蛾綠黛] [라자대/螺子黛] [아취/蛾翠] 등은 모두 눈썹을 그리는 검푸른 색의 먹을 뜻하는 말이다.
4. 명모류면(明眸流眄) : 眸 눈동자 모/ 眄 곁눈질할 면입 뿐만 아니라, 눈도 감정을 전달하는 도구의 하나이다. 이른바 [미목전정/眉目傳情/눈으로 마음을 전하다]이라는 말도 바로 이러한 것을 뜻한다. 한쌍의 아름다운 눈은 고대로부터 미인을 만들어주는 중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였다. [명모]란, 크고 검고 빛이 나는 눈을 말하고, [류면]이란 살살 눈웃음을 치는 눈을 말한다.
5. 주순호치(朱脣皓齒) : 脣 입술 순/ 皓 흴 호이는 붉은 입술과 하얀 치아를 말한다. 살짝 열린 붉은 입술 사이로 드러난 치아는 더욱 하양게 보이며, 치아는 다시 입술을 더욱 붉고 촉촉하게 보이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붉은 입술과 하얀 치아는 서로 보완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다.
6. 옥지소비(玉指素臂) : 素 흴 소 / 臂 팔 비고대로부터 중국사람들은 손가락을 매우 중요시하였는데, 점치는 방법 가운데 손가락을 만져 [골상]을 보는 것이 있었다. 미녀들은 손톱을 매우 길게 길러야 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가지런하게 다듬어야 했다. 손가락이 섬세한 사람들은 대부분 영리하며, 손가락 끝이 가늘고 뾰족한 사람들은 지혜까지 겸비했다고 한다.팔에 살이 있고 어깨가 둥근 사람은 쉽게 성공을 이룬다고 하였다. 가장 이상적인 손은, 손가락의 끝이 뾰족하고 가늘고 길며 부드러운 손이며, 이러한 조건에 부합하는 손가락을 이른바 [옥지]라고 부른다.손가락 외에도 미인의 팔은 [호비(皓臂)]나 [소비(素臂)]로 표현되는데, 모두 하얀 피부의 팔을 뜻한다.
7. 세요설부(細腰雪膚) : 腰 허리 요/膚 살갗 부중국의 고대 미녀들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양귀비형 미인이 있는데, 이는 살이 찐 풍만한 미인으로서 모란꽃에 비유되며, 또 다른 종류는 한나라 조비연(趙飛燕) 타입의 마른 몸매의 미인으로서 버드나무에 비유된다. 양귀비형의 풍만한 미인은 사람들을 유혹하는 요염한 미인이며, 조비연형의 섬세한 미인은 이지적이고 기질이 있는 미인이다. 이 두 가지 종류의 미인들 가운데 중국 사람들은 섬세한 미인을 선호하는 것 같다. 대부분의 문학 작품이나 역사 기록에서 칭송을 받는 미인들은 대부분은 섬세한 미인형에 속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초(楚)나라 영왕(靈王)은 가는 허리의 마른 미인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졌는데, 이때문에 궁녀들은 목숨을 걸고 살을 빼며 영왕의 총애를 얻고자 애를 썼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여인들이 굶어 죽었다고 한다. <홍루몽/紅樓夢>의 임대옥(林黛玉)(오른쪽 그림)은 대표적으로 버드나무형 미인이다.마르고 가는 허리 외에도 피부 역시 수정처럼 투명하고 눈처럼 희어야 하는데, [설부]란 바로 이러한 피부를 뜻하는 말이다.
8. 연보소말(蓮步小襪) : 蓮 연꽃 연 /襪 버섯 말[연보/또는 蓮足]는, 전족(纏足)을 한 여인의 걸음걸이를 형용한 말이고, [소말]이란 전족을 하여 발이 작아진 여인이 신는 아주 작은 버선을 가리킨다.
9. 홍장분식(紅粧紛飾) 이는 여인들이 얼굴에 백분(白粉)을 바르고 뺨에 붉은 색으로 화장하는 것(홍분/紅粉)을 말한다. [백분]은 출현은, 대략 상(商)나라 말엽과 주나라 초기 사이로 보이며, [홍분]이 발명된 것은 이보다 더늦은 춘추시대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백분]은 곧 [연백/鉛白] 또는 [연분/鉛粉] [연백분/鉛白粉]이라고도 하는데, [연화/鉛華]라고 하는 이도 있으며, 직접 [분/粉]이라 부르기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백분]은 하우(夏禹)가 발명했다고 하는데, 상나라 주왕(紂王)이 만들었다고 하는 이들도 일부 있다. 그러나, 여성들이 보편적으로 얼굴에 분을 바르기 시작한 것은 주나라 문왕 때로 알려져 있다.[홍분]은 여성들이 [주/朱]라는 염료를 얼굴에 바르면서부터 시작되었는데, 후에는 연지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연지는 북방의 흉노족들이 발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연(燕)나라에서는 연지의 원료가 되는 식물들을 재배하였다. 한대에 흉노족은 군주의 정실(正室)을 [알씨(閼氏/yan1zhi1)]라고 불렀는데, 이는 [연지]와 그 발음이 똑같다. [연지]는 [烟支] [焉支] [燕支] [燕脂] 등등 다양하게 표기되었다.
10. 기향배훈(肌香配薰) : 肌 살 기 /薰 향내 훈[기향배훈]이란, 살갗에서 향내가 나는 것을 뜻한다. 이는 연지의 냄새가 아닌 여성 자신의 피부에서 발산되는 향기를 말한다.춘추시대,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에게 바쳤는다 서시(西施)의 몸에서는 사람을 미혹하는 향기가 발산되었다고 하며, 그녀가 몸을 씻은 물은 [향수천/香水泉]이라 하였다. 궁녀들은 서로 다투어 [향수천]을 구하려 하였다고 하는데, 이 물을 방안에 뿌리면 집안이 온통 사람을 유혹하는 향기로 가득차게 되었다 한다.서시 외에도, 한나라 때의 비연, 합덕(合德), 당나라의 요영(瑤英), 청나라의 향비(香妃) 등도 모두 향기나는 피부를 가진 미녀들이었다.
[예문]▷ “당신 같은 팔자 어디 있어요, 주지육림(酒池肉林)에 경국지색(傾國之色)을 모아 놓고 밤 깊도록 노시다가 갑갑하실 때 쯤 때를 맞춰서 바람이나 쏘이시라고 나같은 모던 미인이 자동차까지 가지고 등대를 하고…하하…”경애는 야죽야죽 놀린다.≪廉想涉, 三代≫
▷ '미인 소박은 있어도 박색 소박은 없더라,천하에 어떤 경국지색도 덕성기품을 당하지는 못해.'최명희 씨의 소설 '혼불'에 나오는 대화 한토막이다. 일제치하 봉건제도가 붕괴되면서 겪는 매안 이씨 양반가문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사대부가 연인들의 생활이 생생하게 표현된 풍속소설이다<매일경제
▷ 중국 역사에서 ‘경국지색’으로 악명을 높인 첫 여인은 아마도 은(殷 BC1600~BC 1046)나라를 멸망시키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달기’일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미모에 빠진 주왕(紂王)을 휘둘러 주지육림(酒池肉林)의 향락을 즐기는 한편 비간(比干)을 주살시키게 해 은나라가 주(周) 무왕에게 무너지게 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하지만 은나라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서주(西周)가 무너진 것은 달기와 같은 ‘경국지색’ 포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2002.11 오마이뉴스>



■ 경세제민 經世濟民
[다스릴 경/세상 세/구제할 제/백성 민]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함.(준말 : 經濟)
[예문] ▷ 정사 '삼국지'에 등장하는 역사 속의 실존인물 조조(曹操)는 '삼국지연의'라는 소설 속에서는 음흉한 간웅(奸雄)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우리는 재주가 많고 간특한 사람을 '조조같다'고 비아냥댄다. 그러나 실제 조조는 합리주의와 실용주의를 실천한 선국적 인물로서 '조조 전문가' 이재하교수는 재조명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조조 시문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부산 경성대교수이다. 현재까지 전하는 조조의 글중 각종 법령과 서한, 시등을 통해서 보면 그의 경세제민 사상은 재평가받아야 마땅할 인물이다.
▷ 정통 유가 사상에서는 대체로 선비들이 성인의 도에 달하기 위하여 體, 用, 文 세가지 방면에 조화있게 매진해 나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 중 체란 것은 군신, 부자 등 사이의 인륜과 인의, 예악 등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용이란 것은 이러한 수양을 통해 어떻게 정치 사회질서를 수립해 나가는가 하는 문제 즉 「경세제민」의 분야를 말하고, 마지막으로 문이란 것은 경, 사, 우, 집 등의 각종 문헌의 해석과 처리 등에 관한 폭 넓은 지식 그 자체를 가리킨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들 세가지 목표는 앞에서 언급 했듯이 조화있게 추구 해야지 어느 한쪽에 치우치게 되면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적 최종 목표는 달성할 수 없다.<안동대신문>
▷ 아랫사람을 너그러이 대하면 백성으로 순종치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윗사람이 되어 너그럽지 아니하고 예(禮)를 차리는데 공경하지 아니하면, 내가 무엇으로써 볼 것인가.' 하였고, 또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을 얻는다.' 하였다.
사람들이 항용(恒用) 말하기를 '벼슬살이에 위맹(威猛)함을 숭상하는 것이 제일이다.' 하는데 이는 속된 말이다. 먼저 맹(猛)이라는 한 글자를 가슴 속에 품고 있으면, 그 심중에 간직한 것이 이미 스스로도 좋지 않을 터이니 어찌 되겠는가. (.중략)
후세 사람들이 옛 사람들만 못할지라도, 역시 유가(柔嘉: 柔는 安의 뜻이며, 嘉는 善의 뜻이다. 그러므로 편안히 하기를 잘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한 자는 반드시 높이 오르고 많은 사람을 얻되, 그 울울불락하고 사나운 자는 많이들 중도에 넘어지니 나는 이로써 유가한 것이 좋은 기상인 줄로 안다.(.중략)
오직 그 평일의 말씨나 기색이 유가하고 온공(溫恭)한 후에야 능히 강해도 뱉지 않고 강포해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이니, 이 이치는 또한심히 분명한 것이다.- 정약용의 <목민심서> 중에서
-<목민심서>에서는 지은이의 경세제민(經世濟民)과 애국애족(愛國愛族)의 정신을 읽을 수 있다.수령으로 있는 사람은 사납게 하는 것이 제일이라는 말은 잘못된 것이며 관대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 경이원지 敬而遠之
[공경할 경/말이을 이/멀 원/어조사 지]
☞겉으로는 공경하는 체하면서 실제로는 꺼리어 멀리함. 표리부동한 태도. **敬遠= 敬鬼神而遠之
[동] 面從腹背 (면종복배)/表裏不同(표리부동)
[출전] 『논어(論語)』옹야편(雍也篇)
[내용] 공자의 제자 번지(樊遲)가 "지(知)란 어떤 것이냐”고 묻자 공자는 "백성의 도리[義]를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면서도 멀리하면 지(知)라고 말할 수 있다(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고 대답하였다
[예문] ▷ 물론 적지 않은 경우 사람들은 자신들의 범용한 머리에 포착되지 않는 비범한 사람들의 성취를 '천재의 것'으로 규정하는 치지도외 내지는 경이원지(敬而遠之) 식의 접근을 왕왕 본다.그것이 사회사적 접근이 없는 진공 속의 손 쉬운 논리에 불과하다는 흔지않게 지적도 동시에 접하기도 한다<책과 사람들>
▷ 세간에 살고있는 사람들이, 돈과 더 가까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돈을‘경이원지(敬而遠之)’해야될 것 같다. 필요한 존재지만 항상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존재가 바로 돈이다.<2002.01 한국일보>


■ 경조부박 輕兆浮薄
[가벼울 경/경박할 조(人+兆)/뜰 부/엷을 박]
☞언어와 행동이 경솔하고 신중하지 못함.≒ 경박輕薄, 경박부허輕薄浮虛, 경부輕浮
[예문] ▷ 경조부박한 것을 독실해지게 교화하고, 언행이 괴이하고 과격한 것은 순박하고 진실한 것으로 바꾸어….≪번역 명종실록≫
▷ 여반장(如反掌)으로 우정(友情)이 변하는 것을 오뉴월 날씨 변하듯 금시 흐리기도 하고 금시 비가 내리기도 한다는 비유를 들고 있다. 세상이 어수선(紛紛)하고생활태도가 경조부박(輕 浮薄)하니 죽마고우의 옛 교분을 하루 아침에 헌신짝 버리듯 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는 말이다. <월간 불광>


■ 경천위지 經天緯地
[날 경/하늘 천/씨 위/땅 지]
☞온 세상을 다스림. 일을 계획적으로 준비하고 다스림.
[예문] ▷ 대감, 대감의 경천위지하는 큰 재주 로 어서 빨리 대적을 소탕한 뒤에 중흥 공신이 되어….≪박종화, 임진왜란≫
▷ 한(漢)나라 말엽 위한오(魏漢吳) 삼국시절에 황후유약(皇后幼弱)허고 군도병기(群 盜竝起)헌디 간흉(奸凶)허다. 조맹덕(曺孟德)은 천자를 가칭(假稱)하야 천하를 엿보았고 범람(汎濫)타 손중모(孫仲謀)는 강하(江夏)에 험고(險固)믿고 제업(帝業)을 명 심(銘心)허며 창의(倡義)헐사 유현적(劉玄德)은 종사(宗社)를 돌아보아 혈성(血誠) 으로 구치(驅馳)허니 충간(忠奸)이 공립(共立)허고 정족(鼎足)이 삼분헐새 모사는 운집(雲集)이요 명장은 봉기(蜂起)로다.
북위모사(北魏謀士) 정욱(程昱) 순유(筍攸) 순문약(筍文若)이며 동오모사(東吳謀士) 노숙(魯肅) 장소(張紹) 제갈근(諸葛瑾)과경천위지(經天緯地) 무궁조화(無窮造化)잘긴들 아니허리. 그때여 한나라 유현덕은 관우(關羽) 장비(張飛)와 더불어 도원(桃園)에서 의형제 결의(結義)를 허는디 ≪적벽가≫
▷ 당시에 독보할 경천위지의 영웅호걸이라.그대가 마치 팔팔 뛰는 버릇이 있으므로 본토에만 묻혀 있어서는 이 위에 여러 가지 복락을 결코 한가지로 누리지 못하고 전일과 같이 곤란한 재앙만 올 것이요, 본토를 떠나야만 여의(如意)할 것이로다." ≪별주부전≫에서 별주부가 토끼에게 유혹하는 말



■ 계구우후 鷄口牛後
[닭 계/입 구/소 우/뒤 후]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 쇠꼬리(항문)는 되지 말라는 뜻. 곧 큰 집단의 말석보다는 작은 집단의 우두머리가 낫다는 말.
[출전] 『史記』蘇秦列傳<
[내용] 전국시대 중엽, 동주(東周)의 도읍 낙양(洛陽)에 소진(蘇秦: ?∼B.C.317)이란 종횡가(縱橫家:모사)가 있었다. 그는 합종책(合縱策)으로 입신할 뜻을 품고, 당시 최강국인 진(秦)나라의 동진(東進) 정책에 전전긍긍(戰戰兢兢)하고 있는 한(韓) 위(魏) 조(趙) 연(燕) 제(齊) 초(楚)의 6국을 순방하던 중 한나라 선혜왕(宣惠王)을 알현하고 이렇게 말했다."전하, 한나라는 지세가 견고한데다 군사도 강병으로 알려져 있사옵니다. 그런데도 싸우지 아니하고 진나라를 섬긴다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옵니다. 게다가 진나라는 한 치의 땅도 남겨 놓지 않고 계속 국토의 할양을 요구할 것이옵니다. 하오니 전하, 차제에 6국이 남북, 즉 세로[縱]로 손을 잡는 합종책으로 진나라의 동진책을 막고 국토를 보존하시오소서. '차라리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寧爲鷄口]쇠꼬리는 되지 말라[勿爲牛後]'는 옛말도 있지 않사옵니까."선혜왕은 소진의 합종설에 전적으로 찬동했다. 이런 식으로 6국의 군왕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소진은 마침내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임하는 대정치가가 되었다.
[원문] "大王事秦, 秦必求宜陽.成皐.今玆效之, 明年又復求割地. 與則無地以給之, 不與則 前功而受後禍. 且大王之地有盡而秦之求無已, 以有盡之地而逆無已之求, 此所謂市怨 結禍者也, 不戰而地已削矣. 臣聞鄙諺曰 『寧爲鷄口, 無爲牛後.』 今西面交臂而臣事秦, 何異於牛後乎? 夫以大王之賢, 挾彊韓之兵, 而有牛後之名, 臣竊爲大王羞之.於是 韓王勃然作色, 攘臂瞋目, 按劍仰天太息曰 "寡人雖不肖, 必不能事秦. 今主君詔以趙王之敎,敬奉社稷以從."
[예문]계구우후(鷄口牛後) 라는 말이 있다.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 소꼬리는 되지 말라"는 의미다. 그러나 음식재료의 차원에서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표현이다. 여름내 파리 떼를 쫓느라 분주했던 소꼬리는 영양분의 보고다...<2002.10 한국경제>



■ 계란유골 鷄卵有骨
[닭 계/알 란/있을 유/뼈 골]
☞계란에도 뼈가 있다. 운수가 나쁜 사람의 일은 모처럼 좋은 기회가 있더라도 무엇하나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
[유] 雪上加霜(설상가상)
[속담] 재수없는 사람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 (窮人之事는 飜亦破鼻라)재수없는 포수는 곰을 잡아도 웅담이 없다.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 /밀가루 장수를 하면 바람이 불고 소금 장수를 하면 비가 온다.
[출전] 『松南雜識』
[내용] 세종 때 영의정(領議政)을 지낸 황희(黃喜, 號 : 尨村)는 마음이 착하고 생활이 검소하엿다. 황정승의 생활이 매우 빈한한 것을 상감(上監)께서 궁휼히 여기시고 어떻게 잘 살게 할 방도를 생각하시었다. 한 묘안을 얻어 명령하시되 내일은 아침 일찍 남대문을 열자부터 문을 닫을 때까지 이 문을 들어오는 물건을 다 황정승에게 주신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 날은 뜻밖에도 새벽부터 폭풍우가 몰아쳐 종일토록 멎지 아니하므로 문을 드나드는 장사치라고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다가 다 어두워 집에 들어 갈려고 할 때 무슨 까닭인지 시골 영감이 달걀 한 꾸러미를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되어 이것을 사 가지고 집에 돌아와 곧 삶아 먹으려고 하니 알마다 곯아서 한 알도 먹지 못하고 말았다 한다.‘곯다’의 어간이 한자의 骨과 음이 같은 데서‘뼈가 있다’로 된 듯함.
[참고] 최창렬 전북대 교수(국어교육학)가 쓴 <우리 속담 연구>는 민중의 생활정서가 고스란히 녹아든 우리말 속담을 더 늦기 전에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순 우리말 속담들이 한글을 `언문'으로 낮춰보는 한자사대주의자들에 의해 고사성어인 듯 만들어진 사례다. 심지어 “박복한 놈은 모처럼 선물로 얻은 달걀도 곯아 있다”는 황희 정승의 일화에서 `곯아있다'가 `유골(골 있다)'로 잘못 표기되면서 `계란유골'이 숙어화한 웃지 못할 사례라는 지적이 날카롭다<한겨레 신문>
[예문] 그 깊은 슬픔도 나를 떠나고 우리를 떠나면 속물적인 뉴스가 되는 건 지. 사람들은 조용필씨의 아내가 남긴 유산을 두고 툭툭 농담을 던 진다. "복도 많아, 유산이 꽤 될 텐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섬뜩 했다.농담이라는 걸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계란유골이기 때문이었다 . 웃고 나서 홀가분해지지 않으면 유머가 아니다.<2003.01매일경제>


■ 계륵 鷄肋
[닭 계/갈비 륵]
☞① 닭의 갈빗대. 먹기에는 너무 맛이 없고 버리기에는 아깝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 ② 닭의 갈빗대가 약하고 작은 것처럼 자기 몸이 약하다.
조조 [유] 兩手執餠(양수집병) : 양손에 든 떡. 갖기도 버리기도 아깝다
[출전] 『後漢書』
[내용1] 촉한(蜀漢)의 유비(劉備)가 한중(漢中)을 먼저 점령하니 위(魏)의 조조(曹操))가 반격해 왔다. 그러나 조조는 수개월간의 싸움에 군량미가 떨어지고 도망병이 속출하게 되자‘鷄肋’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조조에게 양수(楊修)라는 은어를 잘 푸는 재주를 가진 주부(主簿)가 있었다. 그는 조조의 명령을 듣고 부리나케 수도 장안으로 돌아갈 차비를 차리는 것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까닭을 물으니,“닭의 갈비는 먹으려하면 먹을 것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것인데, 한중(漢中)을 이에 견주었으므로 왕은 곧 귀환 할 것을 결정하신 것이오.”그 말대로 조조는 위나라 전군에게 한중으로부터의 철군 명령을 내렸다.
[내용2] 유영(劉怜-竹林七賢)이 취홍 끝에 어떤 속인과 옥신각신 하였다. 그 속인이 팔을 걷어 부치고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드니 유영은 점잖게 말하기를,“닭의 갈빗대가 허약하니 어찌 그대의 주먹을 당해 내리오. 달려들던 속인은 어이없이 그만 두어 버렸다.
[예문] ▷ 정부는 한의학전문대학원을 설립한 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계륵으로 전락할 정책을 중단하고, 각 시도의사회를 비롯한 의료 각계의 잇따른 성명서를 받아들여 새로운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2006 뉴시스-전공의, 의대생 “한의학전문대학원 설립 반대”>
▷ 전 수원시민의 열기를 모아 준비한 최첨단 월드컵구장에서 갖는 개막경기가 고작 자매도시 초청 청소년대회라니…. 개장경기에서 최고 선수들의 화려한 플레이를 목 놓아 기다리던 팬들이 실망스러워한 것은 당연한 일. 그러니 썰렁한 분위기는 사전에 예상됐던 바다.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세계 최고의 경기장을 갖춰 놓고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계륵’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월드컵 리허설’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겠다<스포츠투데이>
▷ 여기에다 몬트리올은 잠재적으로 4, 5선발 투수급도 트레이드 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혀 김선우(26)도 대상에 포함된다. 그러나 김선우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반면 박찬호는 텍사스가 내보내고 싶어도받아줄 팀이 없는 경우로 계륵과같은 존재라는 것이 평가이다.<2003.7 한국일보>


■ 계명구도 鷄鳴狗盜
[닭 계/울 명/개 구/도둑 도]
☞닭의 소리를 내고 개 모양을 하여 도적질하다. ① 잔재주를 자랑함. ② 비굴한 꾀로 남을 속이는 천박한 짓. ③ 行世하는 사람이 배워서는 아니 될 천한 기능을 가진 사람.④천한 기능을 가진 사람도 때로는 쓸모가 있다, 하찮은 재주도 언젠가 귀하게 쓰일 데가 있다
[동] 函谷鷄鳴(함곡계명) : 함곡관의 닭 울음소리라는 뜻.
[출전] 『史記』, 孟嘗君傳
[내용] 제(齊)나라의 맹상군(孟嘗君)은 갖가지 재주있는 식객이 많았다. 어느 날 진(秦)나라 소왕(昭王)의 부름을 받아 가서 호백구(狐白?)를 선물했다. 소왕은 맹상군을 임명하려 했지만 많은 신하들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한편 맹상군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음모를 알아차리고 소왕의 애첩 총희(寵嬉)를 달래 나가게 해달라고 부탁하니 호백구를 요구 하였다.
개 흉내로 도둑질에 능한 사람이‘신이 능히 호백구를 얻어 오겠습니다.’하고 이에 밤에 개 흉내를 내어 진나라 궁의 창고로 들어가서 바쳤던 호백구를 취해서 그녀에게 주니 그녀의 간청으로 석방되었다.
그 곳을 빠져 나와 밤중에 함곡관에 이르니 닭이 울어야 객을 내보낸다는 관법으로 객 중에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자가 꼬끼오 하니 모든 닭이 따라 울어 관문이 열렸고 무사히 통과하여 제나라로 올 수 있었다. 나중에 소왕은 맹상군의 귀국을 허락한 것을 뉘우치고 병사들로 하여금 뒤쫓게 했으나 이미 관문을 통과한 뒤였다.
[원문] 孟嘗君使人抵昭王幸姬求解, 幸姬曰: "妾願得君狐白(求+衣)." 此時, 孟嘗君有一狐白(求+衣), 直千金, 天下無雙, 入秦獻之昭王, 更無他求. 孟嘗君患之, (두루변)問客, 莫能對, 最下坐有能爲狗盜者, 曰 : "臣能得狐白(求+衣)." 乃夜爲狗, 以入秦宮藏中, 取所獻狐白(求+衣), 至以獻秦王幸姬, 幸姬爲言昭王, 昭王釋孟嘗君. 孟嘗君得出, 卽馳去, 更封傳(驛券)變名姓以出關. 夜半至函谷關, 秦昭王後悔出孟嘗君, 求之已去, 卽使人馳傳逐之. 孟嘗君至關, 關法鷄鳴而出客, 孟嘗君恐追至, 客之居下坐者, 有能爲鷄鳴, 而鷄盡鳴, 遂發傳出. 出如食頃, 秦追果至關. 已後孟嘗君出, 乃還. 始, 孟嘗君列此二人於賓客, 賓客盡羞之, 及孟嘗君有秦難, 卒此二人拔之, 自時之後, 客皆服.--『史記』, '孟嘗君列傳'
[해설] 鷄鳴狗盜(계명구도)의 주인공 戰國時代(전국시대) 齊(제)의 孟嘗君(맹상군)이 3000명의 食客(식객)을 두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특이한 재능만 있으면 ‘過去不問’(과거불문)하고 받아들이고 衣食住(의식주)까지 해결 해 주다보니 자연히 별 희한한 인간群像(군상)들이 다 모였을 것이다. 그 중 鷄鳴狗盜의 고사에서 개 흉내나 닭울음소리를 내서 맹상군을 위기에서 구했던 식객은 아마도 전직이 좀도둑 정도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보니 계명구도가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인 것 같다. 그러나 내용으로 보면 "천한 기능을 가진 사람도 때로는 쓸모가 있다", "하찮은 재주도 언젠가 귀하게 쓰일 데가 있다"는 의미도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계명구폐 鷄鳴狗吠
[닭 계/울 명/개 구/짖을 폐]
☞닭이 울고 개가 짖는다. 人家나 村落이 잇대어 있다.
[내용] 닭 울음 소리와 개 짓는 소리가 서로 들림. 땅이 활짝 트여있고, 이웃 지방이 잘 보이고 인가가 서로 이어져 있다는 뜻.
[원문] 鷄鳴狗吠相聞


■계발 啓發
[열 계/필 발]
☞지능을 깨우쳐 열어준다는 뜻으로, 문답을 통하여 자발적으로 이해하게 하여 지식을 향상시키고 창의와 자조심(自助心)을 길러 주는 교육방법을 이르는 말.
[내용] 공자 왈(曰) "분발하지 아니하면 열어 주지 아니하며, 뜻은 있으나 말하지 아니하면 이끌어 주지 아니하고, 한 모퉁이를 들어 가르치면 나머지 세 모퉁이를 스스로 깨닫지 아니하면 다시 일러 주지 아니한다[不憤不啓 不排不發 擧一隅不以三隅反, 則不復也]."라 하였는데, 이 글 가운데 '불계(不啓)'와 '불발(不發)'의 끝 글자 두 개로 성어(成語)화한 말이다.여기에서 나오는 분(憤)이란 마음에 맞는 것을 구하는데 아직 얻지 못하였음을 나타낸다. 배(排)는 말하려고 하는데 아직 말하지 못한 것을 뜻한다. 그리고 계(啓)는 뜻을 편다는 것을 의미하고, 발(發)은 말을 다 함을 뜻한다.이 글은 공자의 교육 방법을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공자는 학문을 좋아하여 마음속으로부터 분발하여 의욕을 나타내는 제자들에게 그 다음 단계를 열어서 보여 주며, 하나라도 알고 싶어 애태우는 제자에게 해답을 가르쳐 주고, 하나를 들려 주어 세 가지를 이해 할 만큼 무르익을 때까지는 또 다른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이러한 공자의 교육 방법은 지식의 일방적인 전달을 배제하고 제자들이 스스로 알아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흔히 쓰고 있는 '계발'이라는 말이 이런 공자의 교육방법에서 유래된 것이다. 공자는 제자의 수준 정도에 따라 가르쳤으며 특히 자신들이 스스로 깨닫게 하는 교육이야말로 참된 교육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원문] 鷄鳴狗吠相聞


■ 계주생면 契酒生面
[맺을 계/술 주/날 생/얼굴 면]
☞남의 물건으로 자기가 생색을 냄.=곗술에 낯내기
[속담]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받는다.
[예문] 이번 합의소식은 송민순 외교부 장관이 24일부터 사우디아라비아ㆍ카타르ㆍ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3개국을 순차 순방하는 중에 전해졌지만 천 대변인이 마이크를 잡았다. 이에 따라 대선을 4개월도 채 남겨놓지 않은 민감한 시기에 피랍자 가족은 물론 국민들에게 희소식이 될 호재를 청와대가 독차지하려 했거나 낭보의 공을 가로채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2007 한국일보>



■ 계찰괘검 季札掛劍
[계절 계/패 찰/걸 괘/칼 검]
☞계찰이 마음 속으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임금의 묘에 칼을 걸어두고 돌아왔다는 고사에서 신의를 중히 여긴다는 뜻이다.
[출전]『史記』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
[내용] 오(吳)나라 계찰(季札)이 상국(上國)으로 사신가는 길에 서국(徐國)을 들르게 되었는뎨, 그 나라의 임금이 계찰의 칼을 매우 부러워 하였다. 계찰은 칼을 주기로 마음속으로 작정하고 사신 갔다가 돌아 오는 길에 서국을 들렀으나 임금은 이미 죽은 뒤였다. 계찰은 마음 속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임금의 묘에 칼을 걸어 놓고 왔다.는 이야기로《사기(史記)》 〈오태백세가편(吳太伯世家篇)〉에 보인다. 오(吳)나라 왕 수몽(壽夢)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막내 아들이 계찰(季札)이다. 계찰은 그 형제들 가운데 가장 현명하고 재능이 있어서 수몽은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였고 백성들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계찰은 왕위는 장자가 이어야 한다며 가족을 떠나 산촌에 살면서 밭을 갈며 살아 거절의 뜻을 분명히 했다.
계찰의 형들 역시 계찰의 높은 인격과 굳은 절개를 칭찬하며 차례로 집권하여 왕위가 그에게까지 이르도록 하려고 하였다. 계찰은 자신이 왕위에 오를 순서가 되었지만, 이때도 받지 않아서 왕은 계찰을 연릉(延陵)으로 봉후(封侯)했다. 그 후로부터 계찰을 연릉의 계자(季子)라 불렸다.
계찰이 처음 사신으로 길을 떠났을 때, 오(吳)나라의 북쪽으로 가는 도중에 서(徐)나라에 들러 서왕(徐王)을 알현하게 되었다. 서왕은 평소 계찰의 보검을 갖고 싶었으나 감히 말하지 않았다. 계찰 역시 속으로는 서왕이 자신의 보검을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사신으로 중원(中原) 각 나라를 돌아다녀야 하였기 때문에 바치지 않았다.
각 나라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서(徐)나라에 도착해 보니 서왕은 이미 죽고 없었다. 이에 계찰은 보검을 풀어 서왕 집의 나무에 걸어놓고 떠났다[於是乃解其寶劍 繫之徐君家樹而去]. 그의 종자(從子)가 물었다.
"서왕은 이미 죽었는데 또 누구에게 주는 것입니까?"라고 하자, 계찰이 말하기를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처음에 마음속으로 그에게 주기로 결정하였는데, 그가 죽었다고 해서 내가 어찌 나의 뜻을 바꿀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계찰계검'은 이 글을 요약한 말이며, 중국의 유서(類書)인 《몽구(蒙求)》의 표제어에는 '계찰괘검(季札掛劍)'으로 적고 있다.
태사공(太史公)사마천(司馬遷)은 계찰의 인물됨을 평가하여, "연릉계자(延陵季子)의 어질고 덕성스런 마음과 도의(道義)의 끝없는 경치를 앙모한다. 조그마한 흔적을 보면 곧 사물의 깨끗함과 혼탁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어찌 그를 견문이 넓고 학식이 풍부한 군자가 아니라고 하겠는가!"라고 했다.
[원문] 季札之初使, 北過徐君. 徐君好季札劍, 口弗敢言. 季札心知之, 爲使上國, 未獻. 還至徐, 徐君已死, 於是乃解其寶劍, 繫之徐君  樹而去. 從者曰ː"徐君已死, 尙誰予乎?" 季子曰"不然. 始吾心已許之, 豈以死倍吾心哉!"



■ 계포일낙 季布一諾
[철 계/베풀 포/한 일/허락할 낙]
☞한 번 한 약속은 끝까지 지킴.
[출전] 『史記』季布傳
[내용] 초(楚)나라 계포는 어떤 일에든지‘좋다’하고 한 번 내뱉은 이상은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었다.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이 천하를 걸고 싸울 때, 계포가 초나라 대장이 되어 유방을 여러차례 괴롭혔는데 한나라가 천하를 통일을 하자 쫓겨 다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성품을 잘 아는 자가 그를 밀고 하기는 커녕 도리어 그를 유방에게 천거하여 사면시킨 뒤 벼슬까지 얻게 하였다.
[원문] 楚人曹丘生, 辯士, 數招權顧金錢. 事貴人趙同等, 與竇長君善. 季布聞之, 寄書諫竇長君曰: "吾聞曹丘生非長者, 勿與通." 及曹丘生歸, 欲得書請季布. 竇長君曰: "季將軍不說足下, 足下無往." 固請書, 遂行. 使人先發書, 季布果大怒, 待曹丘. 曹丘至, 卽揖季布曰: "楚人諺曰: '得黃金百(斤), 不如得季布一諾.' 足下何以得此聲於梁楚閒哉? 且僕楚人, 足下亦楚人也. 僕游揚足下之名於天下, 顧不重邪? 何足下距僕之深也!" 季布 大說, 引入. 留數月, 爲上客, 厚送之. 季布名所以益聞者, 曹丘揚之也


■ 고굉지신 股肱之臣
[다리 고/팔 굉/어조사 지/신하 신]
☞다리와 팔뚝에 비길 만한 신하. 임금이 가장 신임하는 중신(重臣).
[동] 股肱(고굉)/. 股掌之臣(고장지신)./柱石之臣(주석지신)
[출전] 『서경』익직편(益稷篇)
[내용] 순(舜)임금이 말했다.“신하들이여! 옆에서 도와 주시오. 어려울 때 도와 주는 신하가 참된 신하로다.”하니 우(禹)가“옳으신 말씀입니다.”하였다. 순임금이 신하들을 둘러보며“
그대들과 같은 신하는 짐의 팔다리요, 눈과 귀로다. 내가 백성을 교화시키고 돕고자 하니 아울러 그대들도 도와 주시오(臣作朕股肱耳目 予欲左右有民汝翼 予欲宣力四方汝爲). 나에게 잘못이 있으면 충고해 주고 모든 동료들이 서로 공경하고 예의를 지켜 주오. 그리고 관리는 백성의 뜻을 짐에게 전하는 것이 임무이니 올바른 이치로써 선양하고 뉘우치는 자가 있으면 용서하며 그렇지 않은 자는 처벌하여 위엄을 보이도록 하시오.”라고 당부하였다.
[참고] 순임금이 성군이 되는 데는 신하들의 보좌가 필요했고, 나라가 잘되기 위해서는 제도의 준수, 인애(仁愛)와 형벌의 병행이 필요했던 것이다.같은 뜻의 고장지신(股掌之臣;다리와 손바닥 같은 신하)이라는 말이 있고, 비슷한 말에 주석지신(柱石之臣;나라를 떠바치는 중심이 되는 신하)과 사직지신(社稷之臣:나라의 안위를 맡은 중신)이 있다. '고굉지신'을 줄여서 '고굉'이라고도 한다. <두산백과>



■ 고군분투 孤軍奮鬪
[외로울 고/군사 군/떨칠 분/싸울 투]
☞수가 적고 도움이 없는 약한 군대가 강한 적과 용감하게 싸움. 적은 인원과 약한 힘으로 남의 도움도 없이 힘에 겨운 일을 악착스럽게함.
[예문] ▷ 흰돌머리의 기업을 지키기 위한 고군분투의 몇 년이 그를 한 쇠약한 노인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이문열, 황제를 위하여≫
▷ 아군은 고군분투하였으나 결국 패하고 말았다.
▷ 군대에서 돌아온 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 나는 진실로 고군분투했었다.≪조선작, 영자의 전성 시대≫
▷ 고인은 5·31 지방선거 기간 우리당 대전시 선거기획단장을 맡아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병세가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2006 국민일보-우리당 구논회 의원 지병 별세 >
▷ 안동선(安東善) 최고위원은 동교동계 수비수로 고군분투(孤軍奮鬪)하고있다. 그는 최고위원 간담회에서도 정동영 최고위원의 최고위원 사퇴론을 공격했다.<동아일보>



■ 고량진미 膏粱珍味
[기름고/조,곡식 량/보배 진/맛 미]
☞기름진 고기와 곡식으로 만든 맛있는 음식.
[동] 山海珍味(산해진미)/珍羞盛饌(진수성찬) 龍味鳳湯(용미봉탕)/食前方丈(식전방장)
[내용] "시경 대아에 이르기를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으로 충족했다"라는 구절이 있다. 그 뜻은 이미 인의가 충만하기 때문에 더 이상 남의 고량지미를 원하지 않고, 명성이 가득하기 때문에 남의 좋은 의복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고량(膏粱)은 살진 고기(肥肉)를 뜻하고, 진미(珍味)는 좋은 곡식(美穀)을 뜻한다
[원문] 詩云 旣醉以酒 旣飽以德 言飽乎仁義也 所以不願 人之膏粱之味也
[예문] ▷ 구미가 없으면 고량진미도 맛이 없어서 소화불량을 일으키나니, 자신에게 도가 있으면 역경도 능히 좋게 운전하여 복락을 수용할 수가 있고, 자신에게 도가 없으면 순경도 나쁘게 운전하여 재앙의 밑천을 짓는 수 있나니라.<원불교 홈페이지
▷ 한방은 통풍의 원인을 외부의 차고 습한 기운이 침범하고 정신적인 억울함이 누적되며 기혈이 허약할때 생긴다고 본다.또 고량진미와 과음 육류과다섭취 등으로 인해 발병한다고 설명하고 있다.<한국경제>
▷ 비만은 한방의 고전 의서에서도 비반증이라 하여 고량진미를 즐겨 먹고 몸의 움직임이 적은 사람들에게서 생기는 질병으로 언급하고 있다.<2002.3국민일보>


■ 고려공사삼일 高麗公事三日
[높을 고/고울 려/공변될 공/일 사/석 삼/날 일]
☞고려의 정령(政令)이 사흘 만에 바뀐다 착수한 일이 자주 바뀜.
[동] 作心三日(작심삼일)/.朝令暮改(조령모개)./ 朝變夕改(조변석개)
[내용] 이 속담이 처음 쓰인 예는 <세종실록(世宗實錄)> 권 73 정해조(丁亥條)에서 찾아 볼 수 있다.세종대왕께서 평안도 도절제사(都節制使)에게 전지(傳旨)하는 대목에 나온다.
인용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평안도 도절제사에게 전지하기를 연대(烟臺)를 설비하는 것은 높은 데에 올라 멀리 관망하며 변경을 시찰하여,유사시에 각(角)을 불고 포(砲)를 놓아 이를 사방 인근에 알리고는,혹은 싸우기도 하고 혹은 수비하는 등,만전을 기하는 이기(利器)인 까닭에,여연(閭延),자성(慈城),강계(江界),이산(理山) 등 각 고을에 일찍이 화통교습관(火통敎習官)을 보내어 연대를 설치할 만한 곳을 심정(審定)한 바 있다.
그러나 신진의 이 무리들의 본 것이 혹시 대사를 그르치지나 않을까 염려되었으므로 즉시 시행하지 못했던 것이니,경은 친히 가서 두루 관찰하고 그 가부를 생각한 연후에 기지(基地)를 정하여 축조하도록 하라.대저 처음에는 근면하다가도 종말에 태만해지는 것이 사람이 상정(常情)이며,더욱이 우리나라 사람의 고질이다.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고려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이라고 하지만,이 말이 정녕 헛된 말은 아니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이 속담은 '우리나라 사람의 성격이 처음에는 잘 하다가 조금 지난 후에는 흐지부지해진다.'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용두사미격(龍頭蛇尾格)으로 일을 처리한다는 말이다.어떤 일을 거창하게 벌려만 놓았지 끝마무리를 제대로 맺지 못하고 중단한다는 뜻이다.그러나,오늘날 이 속담은 조변석개(朝變夕改)로 정령(政令)이 자주 바뀐다는 뜻으로 쓰인다.이런 뜻으로 쓰이게 된 것은 인조조(仁祖條) 유몽인(柳夢寅)의 <어유야담(於于野談)>에서 비롯된 '조선공사삼일(朝鮮公事三日)'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명상(名相) 서애 유성룡(西涯 柳成龍)이 도체찰사(都體察使)로 있을 때,각 고을에 발송할 공문이 있어서 역리(驛吏)에게 주었다.보낸 후 사흘 뒤에 그 공문을 다시 고칠 필요가 있어서 회수시켰더니 그 역리가 돌리지도 않고 있다가 고스란히 그대로 갖고 오더라는 것이다.서애는"사흘이 지나도록 왜 공문을 발송하지 않았느냐"고 꾸짖자,역리 대답하기를"속담에 조선공사삼일이란 말이 있어 소인의 소견으로 사흘 후에 다시 고칠 것을 예견(豫見)하였기에 사흘을 기다리느라고 보내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서애는"가히 세상을 깨우칠 말이다.내가 잘못이다."라고 역리에게 말하면서 고쳐서 반포했다.」라 되어 있다.지금은 「고려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이나 「조선공사삼일(朝鮮公事三日)」이나 다같이 우리나라 사람은 인내심이 부족하고 정령(政令)을 자주 변경한다는 뜻으로 똑 같이 쓰인다.그러나 위의 두 인용문에서 쓰인 뜻은 각기 달랐던 것이다.
[참고] 高麗 :나라 이름. 또는 남의 사려를 높이어 이르는 말/考慮 : 생각하여 헤아림/ 苦慮 :애써 생각함. 顧慮 : 지난 일을 다시 돌이켜 생각하여 봄.


■ 고립무원 孤立無援
[외로울 고/설 립/없을 무/도울 원]
☞외톨이가 되어 도움을 받을 데가 없음.
[동] 孤立無依 (고립무의)
[예문] ▷고립무원의 생활
▷요즘은 고립무원, 외톨이가 된 것 같고 길을 가다가도 목덜미가 설렁해지는 것을 느낍니다.≪박경리, 토지≫
▷ 지난달 19일 탕 특사와 만난자리에서 ‘6자 회담 복귀’ 의향을 내비쳤다. 북한은 중국마저 등을 돌릴 경우 고립무원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듯하다<2006 업코리아-北의 6자 회담 복귀>.
▷ 유엔 총회 참석중 본국에서의 전격적인 쿠데타로 권좌에서 밀려난 탁신 치나왓 태국 총리가 뉴욕 맨해튼에서고립 무원의 상태에 빠졌다.<2006 연합뉴스>
▷ 굴원은 제나라와 연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한 친제파였다. 당시 초나라는 굴원의 반대파인 친진파가 득세하고 있었는데 이들 친진 세력들은 진나라의 장의가 6백리의 땅을 베어 주겠다는 미끼에 속아 제나라와 친교를 끊은 후 끊임없이 진나라의 침략을 받게 되고 초나라가 고립무원의 지경에 이르게 되자 회왕은 다시 굴원을 불러들여 다시 등용하려고 하였다. 굴원은 오직 조국 초나라에 공헌하겠다는 일념으로 수도인 영으로 돌아왔으나 재차 녹상의 참소를 입어 강남지방으로 추방되는 비운에 처해졌다.


■ 고복격양 鼓腹擊壤
[두드릴 고/배 복/칠 격/흙덩이 양]
☞배를 두드리고 발을 구르며 흥겨워한다. 매우 살기 좋은 시절
[동] 堯舜之節(요순지절) : 요임금과 순임금이 다스리던 시대/太平聖代(태평성대) : 어진 임금이 다스리는 살기 좋은 시대./ 康衢煙月(강구연월) /태평연월(太平烟月)/함포고복(含哺鼓腹)/격양지가(擊壤之歌)/당우천지(唐虞天地)/당우성세(唐虞盛世)/요순시절(堯舜時節) /태평성대(太平聖代)*唐--堯이 세운 나라 虞--舜이 세운 나라
[출전] 『十八史略』제요편(帝堯扁)『사기(史記)』오제본기편(五帝本紀扁)
[내용] 유가(儒家)에서는 성군(聖君)의 표상(表象)으로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을 꼽는다. 두 임금의 치세는 아직 고증이 되지 않아 신화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으나, ‘공자나 맹자 같은 성인이 가상이나 전설의 인물을 그토록 받들고 거론했겠느냐’는 반론이 많다.에, 천하의 성군으로 꼽히는 요임금이 천하를 통치한 지 50년이 지난 어느 날, 자신의 통치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평복으로 거리에 나섰다. 그가 어느 네거리를 지날 때였다. 어린 아이들이 서로 손을 잡고 이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康衢謠 강구요>
입아증민[立我烝民] 우리가 이처럼 잘 살아가는 것은 막비이극[莫匪爾極] 모두가 임금님의 지극한 덕이네. 불식부지[不識不知]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순제지측[順帝之則] 임금님이 정하신 대로 살아가네.
어린이들의 순진한 노랫소리에 요임금은 기분이 매우 좋았다. 마음이 흐뭇해진 요임금은 어느 새 마을 끝까지 걸어갔다. 그곳에는 머리가 하얀 한 노인이 우물우물 무언가를 씹으면서 손으로 ‘배를 두드리고 발로 땅을 구르며(鼓腹擊壤)’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한편 ‘격양’을 나무로 말굽 모양으로 만든 양(壤)을 땅에 세워 두고 떨어진 곳에서 다른 양을 던져서 맞히는 놀이라는 설이 있다.
[有老人含哺鼓腹 擊壤而歌曰 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畊田而食 帝力何有于我哉擊壤以木爲之 狀如履 側一壤於地 去三四步 以一壤擊之 中者爲上..<十八史略>]《악부시집(樂府詩集)》 〈격양가(擊壤歌)〉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보인다.일출이작 일입이식[日出而作 日入而息]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네.
경전이식 착정이음[耕田而食 鑿井而飮] 밭을 갈아 먹고 우물을 파서 마시니
제력하유우아재[帝力何有于我哉] 임금님의 힘이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
백발노인의 고복격양에 요임금은 정말 기뻤다. 백성들이 아무 불만없이 배를 두드리고 발을 구르며 흥겨워하고, 정치의 힘 따위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으니 그야말로 정치가 잘 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 노래의 내용은 요임금이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정치였다. 다시 말해서 요임금은 백성들이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스스로 일하고 먹고 쉬는, 이른바 무위지치(無爲之治)를 바랐던 것이다. ‘요 임금의 덕택이다’ ‘좋은 정치다’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보다, 그 노인처럼 백성이 정치의 힘을 의식하지 않고 즐겁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이 이상적인 정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요임금은 자신이 지금 정치를 잘 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도교(道敎)의 창시자 노자(老子)도 이런 정치를 두고 ‘무위(無爲)의 치(治:다스림)’라고 했으며 정치론의 근본으로 삼았다. 그리고 요임금처럼 지배자가 있는지 없는지를 모를 정도로 정치를 잘하는 지배자를 최고의 통치자로 꼽았다.
** 息(쉴 식) 鑿(뚫을 착) 飮(마실 음) 耕(밭갈 경)


■ 고분지탄 叩盆之嘆
[두드릴 고/동이 분/어조사 지/탄식할 탄]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한탄≒고분지통 鼓盆之痛, 붕성지통 崩城之痛<
[출전] [장자(莊子)]
[원문] "장자처사(莊子妻死) 고분이가(鼓盆而歌)"
[내용] 장자의 친구 혜자(惠子)가 장자의 부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조문(弔問)을 갔는데, 장자는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鼓盆而歌]. 혜자는 장자에게 부인이 죽었는데 슬퍼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는 건 지나치다고 말하였다.장자는 "아내의 죽음에 금방은 슬펐지만 인간은 본래 생명이 없었고 형체도 기(氣)도 없었으며 나중에 기가 생기고 기가 유형으로 변하고 형체가 생명을 갖추었다가 죽음으로 바뀌게 되었으니 사계절의 변화와 같은 것이다. 아내가 죽은 뒤 천지 사이에서 편히 쉴 테니 통곡하면 천명에 통하지 못하므로 울음을 그치고 동이를 두드린다." 하였다고 전해진다.


■ 고색창연 古色蒼然>
[옛 고/색 색/푸를 창/그럴 연]
☞오래되어 옛날의 풍치가 저절로 들어나 보이는 모양.
[예문] ▷ 고색창연한 산사(山寺)
▷ 얼핏 보기에도 고색창연한 성벽은 푸른 이끼로 덮여 있었다.
▷ 옛모습 제석봉을 넘어서 고색창연한 고사목의 앙상한 선골들이 암벽 기숡에 위태로이 나열하고 있는 고산지대의 특이한 선경을 감상하며 가파른 몇 개의 봉우리를 가쁘게 넘고 넘으면 천왕봉을 지키며 하늘과 통한다는 마지막 관문인 통천문에 이른다<지리산 노고단>
▷ 먼지라도 날 것 같은 고색창연한 무대와 고풍스러운 의상. 백 여년 전, 이탈리아의 로마 극장이 그대로 재현됩니다.<2006 YTN>
▷ 여기에다 조선 궁궐과 전통 사찰의 고색창연한 단청의 아름다움,전통 한복의 화려함과 절제미 등을 화면에 담아 한국적인 미감도 살아 있다<2006 한국경제>


■ 고성낙일 孤城落日
[외로울 고/성 성/떨어질 락/날 일]
☞고립무원한 외딴 성이 해가 지려고 하는 곳에 있다. 쓸쓸한 심정이나 삭막한 풍경을 비유하여 하는 말
[동] 四顧無親(사고무친) : 친척이 없어 의지할 곳이 없이 외로움.
[출전]『송위평사(送韋評事)』 왕유(王維)의 칠언절구(七言絶句)
[내용] 장군을 쫓아 우현을 잡고자, 모래땅에 말을 달려 거연으로 향한다. 멀리서 짐작하노니 한나라 사신이 소관 밖에서,외로운 성에 지는 해의 언저리를 수심으로 바라볼 것을--멀리 외로이 서 있는 성에 해마저 서산으로 기운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쓸쓸한 풍경과 외로운 심정을 노래한 데 불과하지만 보통 ‘고성낙일’이라 하면, 멸망하는 그날을 초조히 기다리는 심정을 나타낸다.
[원문] 欲逐將軍取右賢 沙場走馬向居延 遙知漢使蕭關外 愁見孤城落日邊



■ 고식지계 姑息之計
잠시 고/쉴 식/어조사 지/꾀할 계]
☞당장의 편안함만을 꾀하는 일시적인 방편, 부녀자나 아이들이 세우는 계책(?)
[동] 因循姑息(인순고식) : 구습을 버리지 않고 목전의 편안함을 취함. /彌縫策(미봉책) /臨時方便/
[속담] 눈가리고 아웅 ,언발에 오줌누기(凍足放尿), 아랫돌 빼어서 윗돌 괴기(下石上臺), 귀 가리고 방울 도독질 (掩耳盜鈴 엄이도령)
[출전] 『예기(禮記)』 단궁편(檀弓篇)
[내용] 예기 단궁편에 이르기를 '증자가 말하기를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저것과는 같지 않다.군자가 사람을 사랑할 때는 덕으로써요 소인이 사람을 사랑할 때는 고식(姑息)으로일 뿐이다. 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나는 올바른 것을 취하여 사악한 것을 넘어뜨리고자 할 뿐이다'라고 하였다. 즉 군자의 사랑은 덕으로하기 때문에 오래가고 소인의 사랑은 당장의 눈앞의 이익을 두고 하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다.
[원문] 曾子曰, "爾之愛我也不如彼. 君子之愛人也以德, 細人之愛人也以姑息. 吾何求哉? 吾得正而斃焉, 斯已矣."
[참고] 《시자(尸子)》에 "은나라 주왕은 노련한 사람의 말을 버리고 부녀자나 아이의 말만 사용하였다[紂棄老之言而用故息之語]"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눈앞의 손익만 보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 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뜻이다
[예문] ▷ 고식지계(姑息之計)의 변칙을 버리고,시간이 걸려도 정도를 걷겠다는 LG 구단의 새로운 각오는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 되고 있다<2002.01스프츠투데이>
▷ 그러나 금연 분위기가 전혀 조성되지 않은 중국에서 담배의 타르와 니코틴 함량을 낮추는 것으로 국민 건강을 지킨다는 것은 그야말로 고식지계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2006 국정브리핑-중국 대륙을 휘감은 자욱한 담배 연기>


■ 고어지사 枯魚之肆
[마를 고/고기 어/어조사 지/어물전 사]
☞목마른 고기의 어물전. 매우 곤궁한 처지
[내용] 장자(莊子)는 가정 형편이 매우 어려웠다. 하루는 식량이 떨어져 감하후라는 자에게 꾸러 갔다. 감하후는 말했다.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의 형편 역시 어렵습니다. 조세를 거둬들인 후에 은자 3백냥을 빌려드리겠습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는 장자는 그의 말에 화를 벌컥 내며 말했다. "어제 나는 길을 가다가 길가의 마른 구덩이 속에 있는 물고기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그 물고기는 나를 보고는, '저는 본래 동해에 있었는데 불행히 물이 말라 버린 구덩이에 떨어져 죽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물 한 통만 가져다 주어 구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그래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하겠다. 나는 지금 남쪽의 여러 왕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 곳에는 물이 많으니 물을 가져와 너를 구해주겠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물고기는 화를 내며 '그것이 가능합니까? 지금 저에게는 물 한 통만 있으면 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서강(西江)의 물을 가져올 때까지 기다린다면 저는 이 곳에 없고 어물전에나 가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 고육지책 苦肉之策
[쓸 고/고기 육/어조사 지/계책 책]
>☞적을 속이는 수단으로서 제 몸 괴롭히는 것을 돌보지 않고 쓰는 계책
[동] 고육계(苦肉計) /고육지계(苦肉之計) / 窮餘之策 (궁여지책
[출전] 『삼국지(三國志) 』오지(吳志).
[내용] 계책은 가능한 한 자신을 희생시킴 없이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가장 상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건이 좋지 못해서 자신을 희생시켜 가면서 계책을 세울 수밖에 없는 경 경우가 있는데, 이런 계책을 고육지책이라고 한다. 삼국지에서 조조는 말하기를 '고육책'을 쓰지 않고서 어떻게 조조를 속일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군사상 고육계(苦肉計)란 자기편 사람을 고의로 해쳐 적국으로 달아나게 하여 적이 믿게 한 다음에 적정을 염탐해서 적을 함정에 빠뜨리는 계책이다.
조조가 군사를 몰아 오(吳)나라를 공격하고 승승장구(乘勝長驅)하다가 커다란 강, 장강(長江)을 만나 진격을 멈추게 된다. 조조의 군사는 배를 타보지도 못한 군사들이라 배를 타자마자 모두들 배멀미하느라 난간을 붙잡고 물고기 밥을 주고 있어 강을 건너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시간은 위(魏)나라의 편, 언젠가는 조조의 군사들이 배멀미에 적응하게 되면 숫자로 불리한 오나라는 전쟁에서 질 수밖에는 없었다.그 때 오(吳)나라의 장군은 주유. 매일 고민에 빠져 있는데 늦은 밤 늙은 신하가 주유를 찾아와선 무언가 작전은 짜고 돌아간다. 다음 날 작전회의 시간에 주유는 역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그 늙은 신하가 주유와 말다툼을 하게 되고 화가 난 주유는 늙은 신하를 몹시 때려 쫓아낸다. 이에 화가 난 늙은 신하는 강을 건너 조조에게 투항을 하게 된다.
그러나 조조도 약은 사람, 그를 믿지 않고 오나라에 보낸 첩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모든 것이 사실이라 그 늙은 신하를 믿고 자신의참모로 쓰게된다. 그리고 그 신하는 강을 건널 수 있는 좋은 방법을 말해 주게되는데.. 작은 배들을 쇠사슬로 묶어 큰 배를 만들게 하니 배의 흔들림도 적어 배멀미를 하지 않자 조조는 많은 배를 하나의 커다란 배로 엮게 하고는 강을 건너 진격을 하게 된다.
강을 반쯤 건넜을 때까지도 강 건너편의 오나라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더니 갑자기 작고 빠른 배 몇 척이 나타나 조조의 배에 불화살을 쏘아 불을 지르게 된다. 하나로 묶여 이는 배들은 모두들 불에 타고 조조의 군사들은 물에 빠져 죽거나 하여 조조는 대패하지요 겨우 목숨만을 구한 조조는 도망가다가 장비를 만나 또 혼이 나고 결국 관우에게 사로 잡히지만 관우는 그를 풀어 준다.
이 전쟁의 내용이 적벽대전(赤壁大戰)), 적벽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소동파(蘇東坡)의 글을 적벽부(赤壁賦), 판소리로 만든 것을 적벽가(赤壁歌)이다.
주유와 그 늙은 신하가 쓴 작전이 고육지계(苦肉之計)이다. 조조를 속이기 위해 주유는 자신의 늙은 신하를 몹시 상처주어 조조를 속인 것이다.
[예문] ▷ 과다한 흡연으로 국민건강이 위협 받는 상황이지만 주요한 세수원이 되는 담배판매를 규제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중국 정부가 택한 고육지책은 바로 담배의 타르와 니코틴 함량을 낮추도록 하는 것이었다 <2006 국정브리핑-중국 대륙을 휘감은 자욱한 담배 연기>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멀치감치 앞서있는 미국,일본 등을 따라 잡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구체적으로는 디지털제조시스템의 경우 고기능 공작기계와 e-팩토리,산업용 로봇이 역점 개발대상이다.<2003.7 한국경제>


■ 고장난명 孤掌難鳴
[외로울 고/손 바닥 장/어려울 난/울릴 명]
☞외 손뼉은 울릴 수 없다. 혼자서는 일을 이루지 못한다. 또는 맞서는 사람이 없으면 싸움이 되지 않는다.
[동] 因人成事(인인성사) : 남의 일을 비어 일함/十匙一飯(십시일반) :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여 한 사람을 돕는 일은 쉽다. / 獨掌難鳴 / 獨掌不鳴
[속담]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종이도 네 귀를 들어야 바르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난다.
[예문] ▷ 시장의 큰손인 외국인과 기관은 상대방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도 실제론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상대방에 대한 완벽한 불신이다.고장난명(孤掌難鳴)의 형국이다. 그렇다면 지금 주가를 방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한 증권맨은 "11조가 넘는 고객예탁금이 보초를 서고 있다"고 분석한다. 큰 손들이 박자를 맞추지 않으면서도 주가가 오르는 현상, 그건 한마디로 유동성의 힘이 아닐까.<2002.6 한국경제>
▷ 먼저 구성원을 섬기는 일이 중요하다. 단 구성원들도 사랑받을 자격을 갖춰야 될 것이다. 사랑은 주면서 받는 것이오, 주고받기보다 빼앗는 것 즉,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2006 내일신문>




■ 고진감래 苦盡甘來
[쓸 고/다할 진/달 감/올 래]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동] 生口不網(생구불망) : 산 사람의 입에 거미줄 치지 않는다.
[반] 興盡悲來 (흥진비래)
[예문] ▷ 밤은 깊어 삼경인듸 안자쓴들 임이올가, 누워슨들 잠이오랴. 임도 잠도 아니 온다. 이 일을 어이하리. 아?도 원수로다. 홍진비? 고진감鏡 예로부텀 잇건마는 지달임도 륢지 안코…(完板春香傳) /이제는 살아갈 길이 막연하다. 이왕 시작한 일이라 주판지세요.고진감래(苦盡甘來)라 하였으니 나중에야 설마 길한 일이 없으랴.『興夫傳』
▷ 소진도 일시의 곤란을 겪으며 뜻을 가다듬어 필경 육국상인을 허리에 띄였다 하니 나도 재조와 담력을 가지고 신고를 견디어 큰 사업을 성취할지니 속담에 이르되 고진감래라 하고 궁한즉 통한다 하니 좋은 때 돌아 오기를 기다릴지로다.『李仁稙,雪中梅
▷ 그러나 불황속에서도 속살을 채워가면서 남몰래 웃고있는 기업이 적지않다. 사람들의 시야에서 멀어졌던 기업이 고진감래(苦盡甘來)의 기쁨을 맛보고 있다. 보이지 않을때가 중요한 법. 농부들은 가끔 할 일이 없을 때가 생긴단다.<2003.5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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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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