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010321 친구들- 급우 일 학년 사 반에서 생각나는 친구, 기억되는 친구는 많지 않다 . 반에서는 늘 ‘ 고저 ’ 읍 애들이나 ‘ 통천 ’ 읍 애들이 판쳤고 우리면에서는 나 홀로 외톨이로 있으니 외롭게 끼여서 공부하는 꼴이 됐다 . 그나마 지금 기억되는 친구는 여기 남쪽에서 그의 목소리라도 듣고 몇 년에 한 번씩 우연치 않게 만나는 친구는 몇 뿐이다. 그 중 하나 , ‘ 유승일 ’ 모르던 그의 성정도 알게 되고 새롭게 만나게 되면서부터 그 때를 회상하며 우의도 돈독해 지고 있다 . 각자의 생활이 워낙 바쁘니 다른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을 테다. 그런 가운데 서로 만나기란 그리 쉽지는 않다 . 그래서 아직까지 서울에 있다는 ‘ 이 윤관 ’ 이라는 친구는 만나지 못했다 . 그는 다리가 약간 불편한 몸으로 우리 반에서는 누구보다도 특별하게 기억될 수밖에 없다 . 또 한 친구. 얼굴이 백지장같이 희어서 내 기억에 남는 이 친구는 이미 이승을 떠난 사람이다 . ‘ 진 협동 ’. 그의 장례식 때 울산에 내려간 적이 있다 . 그는 살아 있을 때 말하였다 . 자기의 생명을 이웃을 위해서 헌신한 기독교인이라고 . 자기를 어느 대학병원에 기증했단다 . 자기의 시신을 기증한 상태로서 나에게 자랑까지 한 특별한 친구였다 . 그는 자기 할일은 다하지 못하고 부인에게 짐을 떠넘겼다 . 그는 과거 한 때 나와 같은 행동을 했던 것을 뒤늦게 알았다 . 즉 북에서 징병 당하고 배속될 때까지 나와 같이 움직였던 것이다 . 그는 전투도 했노라고 했다 . 그것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는 , 누구나 그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어서 추호도 그를 이상히 여기질 않는다 . 마찬가지로 나의 행적에 대해서도 아무런 여과나 분식 없이 노출시킨다 . 그래서 나를 평가받고 그 범위 내에서 떳떳이 살고 있다 . 이것이 많은 사람이 과거를 숨기고 현재의 세도를 탐닉하고 안주하면서 과거의 행적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하는 것과 대조된다 . 나는 그런 사람의 꼴을 자주보고 냄새도 맡고 있다 .
그 냄새는 꾸리고 고약하다 . 학교생활, 그 무렵 나는 다른 애들에게 어떻게 비쳤을까 . 아마 산골에서 소먹이다가 잘못된 길로 빠진 머슴쯤으로 여겼을 것이다 . 마찬가지로 내게 원숭이처럼 비쳐진 친구도 있었으니 그가 바로 지금껏 오가는 ‘ 유승일 ’ 이다 . 그래서 또렷이 기억하고 더욱 친밀감을 갖는가보다 . 그도 나와 같이 긴 영어 ( 囹圄 )
의 생활을 했고 일찍이 손이 닿아서 이곳에서 학업을 계속했다고 한다 .
이런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엔 내가 한없이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 돌이킬 수 없는 숙명이다 .
이름은 알 수 없으나 우리 반에 기계체조를 썩 잘하는 애가 있었다. 쉬는 시간에는 그가 손에다가 붕대를 감고 철봉에 매달려서 ‘ 대차 ’ 라는 것 , 몸이 일직선을 이루어서 철봉을 축으로 몇 바퀴씩 도는 고난도의 철봉을 서슴없이 했고 평행봉도 자유로이 구사하는 만능 체육선수였다 .
그의 가슴은 터질 듯이 튀어나와 있고 어깨는 벌어져서 상체가 삼각형을 이루는 전형적 체조선수였다 .
사진도 동창회도 없는 과거.
이 과거를 잊지 못하고 있다 .
언젠가 회포를 풀 날을 맞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이 서글프기도 하다 .
짧은 학창생활에서 그나마 과거를 새김질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친구조차 하나둘씩 사라져가니 이제 , 어두움이 발밑을 엄습하는듯해서 고향 길 , 마음이 조급하다 ./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