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샘 1318.001209
단장의 아들
신문물의 보급은 행정을 맡은 읍면을 통하여 , 경찰의 치밀한 민심파악의 도움을 얻으면서 펴졌다 . 자동차가 없던 시절 , 이는 기차를 통하여 신속히 보편 파급됐다 . 그러나 전통마을인 우리 동네는 여전히 주춧돌을 움직이지 않았다 . 그저 새로 짓는 집을 바라보고 담담히 감상할 따름이다 . 새로운 양식의 건축구조를 보이고 , 새로운 색깔의 지붕도 길가에 얼굴을 들어낸다 . 비록 전모는 아니지만 일부는 전통적인 우리의 건물을 뜯어서 분칠하는 곳도 있다 . 일본인들의 비위에 맞추려는 몸짓을 보여서 그들로부터 인정받고 소위 문화인임을 자처하며 등용되려는 속셈을 들어내 보인다 . 이렇게 해서 개명의 물결에 앞장섰고 그들의 뜻이 집치장을 통하여 밖으로 들어 났다 . 이런 개량 집과 전통 초가집 모양은 또렷이 , 新舊 ( 신구 ) 가 금 그어지는 시골의 작은 마을 우리 동네다 . 전통한옥을 달아내어서 마루 창을 달고 손바닥만 한 유리조각을 끼워서 비와 바람을 막는 소위 아마도 ( 雨戶 ) 를 만들어 달아야만 그들과 대화 할 수 있고 초청받을 수 있는 , 지위를 얻는다는 생각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 거지반 다 일본인들과 관련된 사람들의 집은 이 모양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 그들이 단순히 영농과는 거리를 둔 그런 생활에서 연유된 것도 있을 것이다 . 우리네의 가옥구조가 농사일과 주거공간을 한꺼번에 한 지붕 밑에 마련하고자하는 소박한 생각을 버리지 못해서 , 좀 더 위생적인 주거공간을 생각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 그 무렵 , 어린 나이에도 이런 집들을 보면 금방 이 집은 끈을 대고 사는 집이구나 하는 것을 생각했을 정도다 . 우리의 정서와 조금은 떨어져있는 , 어색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을 느꼈다 .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신은 유리창문 밖에 벗어놓고 들어가야 하는 불편함도 있지만 도무지 빈틈이 없어서 숨이 막힐 것 같다 . 먼지하나가 떨어지면 그 자리가 표 나고 옷에 묻은 흙먼지를 받아드릴 흡입 장치가 없는 집이다 . 그나마 우리가옥구조의 피를 이었다면 온돌에 장판을 깐 탓으로 다다미방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위안이다 . 어느 날 , 반 친구인 경방단장 아들은 우리를 몰고 자기 집에 끌어 드렸다 . 그의 부모가 모임에 가셨거나 따로 볼일을 보시려고 외출했는지 알 수는 없었다 . 예의 아마도 문을 열고 들어가니 기다란 마루를 온통 유리문으로 막아서 복도식 마루를 만들어놓은 곳에 들어서게 됐고 다시 큰 미닫이문을 열어 두 칸짜리 통짜 방에 우루루 몰려 들어갔다 . 우리의 놀이는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없다 . 그 날의 초청자 경방단장 아들은 양양했다 . 작은 책상 위엔 새까만 수동식 전화기가 놓여있고 전화기에선 높은 옥타브의 벨소리가 울렸다 . 아들은 우리를 향해서 하소연하듯이 내몰았고 우리는 각기 이런 집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몰려나왔다 . 누구나 같은 심경이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조금도 아쉬움 없이 물러났다 . 그것은 내가 있을만한 포근한 자리가 아니라 내가 이 자리에 어떤 해를 끼칠까 먼저 생각하게 해서 불안하고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정갈한 유리상자 안 같은 , 그런 집이어서 더 그랬다 . 그의 아버지는 우리 면에서 유지축에 끼는 젊은 분이셨다 . 신문물 중에는 자전거도 있다 . 자전거를 타는 이는 신식사람이요 자전거를 못 타는 이는 시대에 뒤쳐진 사람으로 여겨도 될 만했다 . 이즈음 골프를 못 치는 이와 버금갔으리라 . 나는 극성맞은 성격 탓에 구장 집 조카를 꾀어서 구장 집의 자전거를 그 집 조카와 몰고 기찻길 건널목 언덕에서 몇 번을 내려오면서 배우긴 했다 . 우리 집의 형편으로는 두발 자전거는커녕 세 발 자전거조차도 엄두를 낼 수 없는 처지였다 . 정거장에서 언덕을 조금 내려오면 철도관사가 있다 . 여기서 이전엔 들어보지 못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 조용한 시골 마을하늘의 동풍을 타고 들리는 소리다 . 닭 우는 소리 , 소우는 소리 , 워낭소리 , 개짓는 소리 , 아기울음소리 , 다듬이질 소리 , 애 부르는 소리 , 이 소리에 섞여서 쇠의 마찰음 소리가 짤막짤막하게 들렸는데 이것이 세 발 자전거 타는 소리임을 한참 뒤에 단장의 아들인 내 친구의 구설수를 기화로 해서 알게 됐다 . 단장의 아들 , 내 친구는 잘 생겼다 . 잘 먹어서 그런지 , 타고나서 그런지 , 아무튼 발군의 용모를 갖춘 미남이었다 . 그가 우리 학교에서 친구들로부터 놀림감이 된 것은 단순히 한 가지 이유에서였다 . 역장 딸의 세 발 자전거를 밀어 주었다는 것이다 . 들을 건너서 한참을 가야하는 정거장까지 가서 ‘ 자전거를 밀어 ’ 주었다는 것이 입을 오르내리는 방아거리이고 , 남녀가 따로따로 놀던 우리의 학교놀이에서조차 그 시절에 걸맞지 않는 풍기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 당연히 아무것도 아닌 것인데도 한 동안은 곤혹을 치렀다 .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남의 일을 빌려서 내 아름다운 꿈을 만들어보려는 잔잔한 물결이 일면서 눈을 감는다 . 그 단장의 아들 내 친구는 이 일체의 일을 잊었을 것이다 . 초등학교 삼 사 학년 때의 일이다 . 동구 밖에 외나무다리를 건너서 정거장으로 가는 지름길을 자주 다닌 내가 그 때마다 들려왔던 삐걱 삐삐걱 소리가 단장의 아들 , 내 친구가 역장 딸의 세 발 자전거를 밀어주는 소리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면 , 이제 슬그머니 부화가 오른다 . 역장의 집은 관사여서 유리문이 겹으로 있는 겹집이었다 . 개량된 집에 유리문을 달고 나서 생각해볼 일인 것을 , 돌이킬 수 없는 지난날의 아름다운 시샘이다 . 1318.001209 단장의 아들 신문물의 보급은 행정을 맡은 읍면을 통하여 , 경찰의 치밀한 민심파악의 도움을 얻으면서 펴졌다 . 자동차가 없던 시절 , 이는 기차를 통하여 신속히 보편 파급됐다 . 그러나 전통마을인 우리 동네는 여전히 주춧돌을 움직이지 않았다 . 그저 새로 짓는 집을 바라보고 담담히 감상할 따름이다 . 새로운 양식의 건축구조를 보이고 , 새로운 색깔의 지붕도 길가에 얼굴을 들어낸다 . 비록 전모는 아니지만 일부는 전통적인 우리의 건물을 뜯어서 분칠하는 곳도 있다 . 일본인들의 비위에 맞추려는 몸짓을 보여서 그들로부터 인정받고 소위 문화인임을 자처하며 등용되려는 속셈을 들어내 보인다 . 이렇게 해서 개명의 물결에 앞장섰고 그들의 뜻이 집치장을 통하여 밖으로 들어 났다 . 이런 개량 집과 전통 초가집 모양은 또렷이 , 新舊 ( 신구 ) 가 금 그어지는 시골의 작은 마을 우리 동네다 . 전통한옥을 달아내어서 마루 창을 달고 손바닥만 한 유리조각을 끼워서 비와 바람을 막는 소위 아마도 ( 雨戶 ) 를 만들어 달아야만 그들과 대화 할 수 있고 초청받을 수 있는 , 지위를 얻는다는 생각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 거지반 다 일본인들과 관련된 사람들의 집은 이 모양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 그들이 단순히 영농과는 거리를 둔 그런 생활에서 연유된 것도 있을 것이다 . 우리네의 가옥구조가 농사일과 주거공간을 한꺼번에 한 지붕 밑에 마련하고자하는 소박한 생각을 버리지 못해서 , 좀 더 위생적인 주거공간을 생각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 그 무렵 , 어린 나이에도 이런 집들을 보면 금방 이 집은 끈을 대고 사는 집이구나 하는 것을 생각했을 정도다 . 우리의 정서와 조금은 떨어져있는 , 어색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을 느꼈다 .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신은 유리창문 밖에 벗어놓고 들어가야 하는 불편함도 있지만 도무지 빈틈이 없어서 숨이 막힐 것 같다 . 먼지하나가 떨어지면 그 자리가 표 나고 옷에 묻은 흙먼지를 받아드릴 흡입 장치가 없는 집이다 . 그나마 우리가옥구조의 피를 이었다면 온돌에 장판을 깐 탓으로 다다미방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위안이다 . 어느 날 , 반 친구인 경방단장 아들은 우리를 몰고 자기 집에 끌어 드렸다 . 그의 부모가 모임에 가셨거나 따로 볼일을 보시려고 외출했는지 알 수는 없었다 . 예의 아마도 문을 열고 들어가니 기다란 마루를 온통 유리문으로 막아서 복도식 마루를 만들어놓은 곳에 들어서게 됐고 다시 큰 미닫이문을 열어 두 칸짜리 통짜 방에 우루루 몰려 들어갔다 . 우리의 놀이는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없다 . 그 날의 초청자 경방단장 아들은 양양했다 . 작은 책상 위엔 새까만 수동식 전화기가 놓여있고 전화기에선 높은 옥타브의 벨소리가 울렸다 . 아들은 우리를 향해서 하소연하듯이 내몰았고 우리는 각기 이런 집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몰려나왔다 . 누구나 같은 심경이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조금도 아쉬움 없이 물러났다 . 그것은 내가 있을만한 포근한 자리가 아니라 내가 이 자리에 어떤 해를 끼칠까 먼저 생각하게 해서 불안하고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정갈한 유리상자 안 같은 , 그런 집이어서 더 그랬다 . 그의 아버지는 우리 면에서 유지축에 끼는 젊은 분이셨다 . 신문물 중에는 자전거도 있다 . 자전거를 타는 이는 신식사람이요 자전거를 못 타는 이는 시대에 뒤쳐진 사람으로 여겨도 될 만했다 . 이즈음 골프를 못 치는 이와 버금갔으리라 . 나는 극성맞은 성격 탓에 구장 집 조카를 꾀어서 구장 집의 자전거를 그 집 조카와 몰고 기찻길 건널목 언덕에서 몇 번을 내려오면서 배우긴 했다 . 우리 집의 형편으로는 두발 자전거는커녕 세 발 자전거조차도 엄두를 낼 수 없는 처지였다 . 정거장에서 언덕을 조금 내려오면 철도관사가 있다 . 여기서 이전엔 들어보지 못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 조용한 시골 마을하늘의 동풍을 타고 들리는 소리다 . 닭 우는 소리 , 소우는 소리 , 워낭소리 , 개짓는 소리 , 아기울음소리 , 다듬이질 소리 , 애 부르는 소리 , 이 소리에 섞여서 쇠의 마찰음 소리가 짤막짤막하게 들렸는데 이것이 세 발 자전거 타는 소리임을 한참 뒤에 단장의 아들인 내 친구의 구설수를 기화로 해서 알게 됐다 . 단장의 아들 , 내 친구는 잘 생겼다 . 잘 먹어서 그런지 , 타고나서 그런지 , 아무튼 발군의 용모를 갖춘 미남이었다 . 그가 우리 학교에서 친구들로부터 놀림감이 된 것은 단순히 한 가지 이유에서였다 . 역장 딸의 세 발 자전거를 밀어 주었다는 것이다 . 들을 건너서 한참을 가야하는 정거장까지 가서 ‘ 자전거를 밀어 ’ 주었다는 것이 입을 오르내리는 방아거리이고 , 남녀가 따로따로 놀던 우리의 학교놀이에서조차 그 시절에 걸맞지 않는 풍기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 당연히 아무것도 아닌 것인데도 한 동안은 곤혹을 치렀다 .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남의 일을 빌려서 내 아름다운 꿈을 만들어보려는 잔잔한 물결이 일면서 눈을 감는다 . 그 단장의 아들 내 친구는 이 일체의 일을 잊었을 것이다 . 초등학교 삼 사 학년 때의 일이다 . 동구 밖에 외나무다리를 건너서 정거장으로 가는 지름길을 자주 다닌 내가 그 때마다 들려왔던 삐걱 삐삐걱 소리가 단장의 아들 , 내 친구가 역장 딸의 세 발 자전거를 밀어주는 소리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면 , 이제 슬그머니 부화가 오른다 . 역장의 집은 관사여서 유리문이 겹으로 있는 겹집이었다 . 개량된 집에 유리문을 달고 나서 생각해볼 일인 것을 , 돌이킬 수 없는 지난날의 아름다운 시샘이다 . 세 발 자전거는 소리가 나야 세 발 자전거 같다 . 요사이처럼 아무소리도 나지 않는다면 나 같은 둔자는 어떻게 무지개를 타고 소리 없는 자전거를 찾아 갈 것인가 . 유리문은 어느 집이나 달았을 테니 더욱 그렇다 . 세 발 자전거가 내는 삐걱 비삐걱 소리를 듣고 싶다 . 눈을 떴다 ./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