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나는 너 같은 손녀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네가 나의 썩고 있는 육신을 보지 않았으니, 그렇게 말짱한 입술로 맹랑한 생각을 하였는지 몰라도, 난 그래도 너 같은 손녀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한때. 나도 너만큼이나 뽀얀 속살로 벌판을 누비며, 홍조 띤 얼굴로 시냇가에서 빨래하면서 재잘거리던, 너만큼이나 철없던 계집아이 시절이 있었단다.
부잣집은 아니어도 건장한 청년 만나서 초가삼간에 살아도 이쁜 아이 낳아 옥수수 심고 고추 심어 나지막하게 살아가는 것이 소원이었던 사람이었다.
처음엔 무서웠어. 조금 지나니 고통스럽더라. 그래도 세월이라고 시간이 흐르고, 차라리 죽을 수 있는 건 행운이라고 여길 즈음. 난 고향으로 돌아왔단다.
살아 있다는 것이 악몽이라는 걸. 네가 지금 느끼느냐? 나는 수십 년을 그렇게 지옥 속에서 살았단다. 나는 나를 놓아 버린 것이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나는 여자 였던 것도 오래전의 일이다. 너는 마음만 먹으면 너처럼 고양이 눈을 하는 딸아이를 얻을 것이다. 하지만 내 속에는 아이를 만들 수 있는 땅이 없어. 그들이 다 파서 먹었으니.
수십 명의 개 떼들에게 내 몸 하나 먹힌 건 그래도 별거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고향이라고 돌아와 발을 디딜 곳 하나 없이 만들어 놓고 개 떼들의 습격이 마치 내 의지였던 것처럼 나를 죄인 취급하던 내 사랑하는 조국이 나의 숨통을 더 조여왔던 것 같다.
내가 너를 미워한다면. 그건 네가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네가 여자이기 때문이다. 네가 나를 모른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그저 너를 대신하여 개 떼들에게 끌려간 것일 뿐이다.
너덜너덜한 육신을 안고서 돌아와서. 온전한 햇볕 한번 못 보고 살아온 내가 지금 와서 너에게 사진의 모델이나 되라고 하니까. 내 살아온 것이 오늘 이 꼴을 보려고 했던 것이구나.
나를 동정하지 마라. 내 조국이 나를 버리던 그때부터, 나는 누구의 동정 따위를 원하며 살아온 것이 아니다.
나에게 카메라를 비추지 마라. 내 육신이 비록 너덜너덜하지만 너희들이 아무 곳에나 들이대며 플래시를 터트릴 그런 삶은 아니었다.
애야. 어떤 때에는 네가 무슨 죄가 있을까. 싶었다. 동물원 구경 오는 심정이었을지도 모를 너에게 나를 고스란히 옮겨 놓으려는 내 욕심이 어리석은 것이라 여겼다.
너처럼 부푼 젖가슴을 나도 가졌었단다. 너처럼 고운 등을 나도 가졌었단다.
개 한 마리 세워놓고, 네가 얼굴에 숯을 바른다고 정녕 네가 내가 될 수 있겠느냐? 네가 그 고운 등을 들이대고, 풀어 헤친 저고리 고름 사이로 하얀 젖가슴을 내민 것은, 사치였다. 그건 내가 아니었다.
나는. 그냥 살아도 조국 속에 묻힐 것이다. 아마도. 내 눈감을 그 날까지 나는 그저 개 떼들의 습격 속에서 다행히도 살아온 병들고 썩고 있는 늙은 할머니로 기억될 것이다.
그것이 안타까워, 나 인 것처럼 하지 마라. 정녕. 너는 내가 아니다. 고양이 눈을 하는 애야. 들끓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마라. 그들이 나였다.
왜 진심을 이해해주지 않냐고 원망 하지 마라. 수십 년을 소외된 채 사회와 단절된 나도 살아온 땅이다. 내가 언제 너에게 많은 것을 바랬던 적이 있었느냐. 내가 언제 너에게 손을 벌린 적이 있었느냐.
정녕 네가 내가 되기를 원한다면, 조용히 눈 감고 기도해다오. 내 젊은 시절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게. 평안하게 잠들도록. 그리고. 내 힘없는 조국을 그래도 안고 갈 수 있도록.
˝정녕. 너는 내가 아니다. 정녕 네가 내가 되기를 원한다면, 조용히 눈 감고 기도해다오.˝
/문학과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