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바로 2년 전인 어느 겨울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동아문화센터의 창밖으로 가루 같은 눈이 쏟아지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L이라는 시작 연구반원의 얼굴을 처음으로 자세히 본 것도 그날이었습니다.
그녀의 눈동자는 토끼 눈처럼 순수한 아름다움으로 빛나고 있었던 것이 망막에 남았습니다.
그녀는 항상 A, B반을 합쳐서 40명 정도의 연구반원 중에서 교실 제일 뒷자리에 검은 보자기에 싸인 토끼처럼 앉아서 노트만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제시하는 창작시는 날로 좋아져 가고 있었습니다.
모티브도 새로웠고 이미지의 조형성도 독특했고 언어도 참신했고 순발력도 있어서 나는 그녀의 시를 주목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대부분이 국문학과나 영문학과를 나온 수강생들이었지만 그녀는 E데 불어교육과는 나왔다는 것도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언제부터인가 교실에 나오지 않게 되어 나도 자연히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느닷없이 전화가 회사로 걸려 왔습니다.
「선생님 저 L인데요. 잊어버리셨지요? 그동안 친구와 조그마한 사업을 시작해서 교실에는 나가지 못하지만 시는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시간을 쪼개서라도 선생님을 자주 찾아뵈옵기로 하겠습니다. 용서하여 주세요.」
「그래? L이 누구였더라. L이라는 글자는 고무지우개로 지워 버렸는데.」
그 후에도 때때로 전화도 걸려 왔고 찾아와서 차도 마시며 시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63빌딩에서 밥을 대접하겠다며 여러 편의 시를 가지고 온 일이 있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정말 시를 쓸 만한 재능이 있습니까? 없다고 하시면 사업이나 열심히 할래요.」
「글쎄, 재능도 반짝이고 시도 날로 좋아지기는 하는데, 감성이 약간 부족해서.」
「선생님은 저더러 연애라도 하라는 말씀이세요? 요즈음 시시한 연애 따위를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일회용이 유행이라는 시대인데, 그런 것도 싫고.」
「영화를 보든지, 소설을 읽든지, 음악을 듣든지.」
열심히 해보겠다며 웃는 그녀의 눈빛은 진정 토끼 눈처럼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미니스커트 차림에서 30대 중반의 여성을 찾아볼 수 없는 하루였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페미니즘 시대의 여인상을 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김경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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