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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한 통

외통 2023. 5. 18.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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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걸려온 전화 한 통

안녕하세요. 저는 이동통신 회사에서 민원을 상담하는 일을 하는 이혜영이라고 합니다.

2년이 훨씬 넘게 많은 고객과 통화를 하면서 아직도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그날은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어요.

그날 따라 불만 고객들이 유난히 많아 은근히 짜증이 나기도 했지요.

하지만 업무의 특성상 서비스업이기 때문에 고객이 소리를 지르거나 욕설을 해도 저희 쪽에서 할 수 있는 말이란….

˝죄송합니다.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서…. 다시 조치하겠습니다.˝

이런 말 외에 같이 흥분하거나 소리를 지를 수는 없거든요.

그날도 비까지 내린 데다가 컨디션도 많이 안 좋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 사정이기 때문에 걸려오는 전화에 제 기분은 뒤로 숨긴 채 인사멘트를 했죠…. 목소리로 보아 어린 꼬마 여자였어요.

이혜영 :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텔레콤 이혜영입니다.

고객 : 비밀번호 좀 가르쳐주세요….

(목소리가 무척 맹랑하다고 생각하며.)

이혜영 : 고객 분 사용하시는 번호 좀 불러주시겠어요.

고객 : 1234-5678이요.

이혜영 : 명의자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고객 : 난 데요…. 빨리 불러주세요.

(어린 꼬마애가 엄청 건방지군.)

이혜영 : 가입자가 남자분으로 되어 있으신데요? 본인 아니시죠?

고객 : 제 동생이에요. 제가 누나니까 빨리 말씀해주세요.

이혜영 : 죄송한데 고객분 비밀번호는 명의자 본인이 단말기 소지 후에만 가능하십니다. 저희 밤 열 시까지 근무하니 다시 전화 주시겠어요?

고객 : 제 동생 죽었어요. 죽은 사람이 어떻게 전화를 해요?

가끔 타인이 다른 사람의 비밀번호를 알려고 이런 거짓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므로 전 최대한 차가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혜영 :그럼 명의변경을 하셔야 하니까요, 사망진단서와 전화해 주신 분 신분증 또 미성년자이시니까 부모님 동의서 팩스로 좀 넣어 주시어요.

고객 : 뭐가 그렇게 불편해요. 그냥 알려줘요.

너무 막무가내였기 때문에 전 전화한 그 꼬마애의 부모님을 좀 바꿔 달라고 했죠.

고객: 아빠 이 여자가 아빠 바꿔 달래….

그 꼬마 애의 뒤로 아빠와 엄마 그리고 그 가입자의 말소리가 들리더군요.

˝비밀번호 알려 달라고 해…. 빨리.˝

아빠 : 여보세요.

이혜영 : 안녕하세요. **텔레콤인데요. 비밀번호 열람 때문에 그런데요, 명의자와 통화를 할 수 있을까요?

아빠 : 제 아들이요? 6개월 전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콰당!! 그럼 사실이란 말이야??)

그때부터 미안해지더군요.

아무 말도 못 하고 잠시 정적이 흐르는데 아빠가 딸에게 묻더군요.

아빠 : 얘야 비밀번호는 왜 알려고 전화했니?

딸 : (화난 목소리로) 엄마가 자꾸 혁이(그 가입자 이름이 김혁이였거든요) 호출 번호로 인사말 들으면서 계속 울기만 하잖아. 그거 비밀번호 알아야만 지운단 말이야.

전 그때 가슴이 꽉 막혀왔습니다.

아빠 : 비밀번호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혜영 : 아? 예. 비밀번호는 명의자만 가능하므로 이름을 고치셔야 합니다. 건강보험증과 보호자 신분증 넣어주셔도 가능합니다.

아빠 : 알겠습니다.

(전 감사하라고 설명 종료를 해야 하지만 저도 모르게.)

이혜영 : 죄송합니다. 확인 후 전화해 주십시오.

아빠 : 고맙습니다.

이혜영 : 아…. 예….

그렇게 전화는 끊겼지만, 왠지 모를 미안함과 가슴 아픔에 어쩔 줄 몰랐죠.

전 통화종료 후 조심스레 호출 번호를 눌러봤죠. 역시나.

˝안녕하세요. 저 혁인데요. 연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식으로 멘트가 녹음되어 있더군요.

전 조심스레 그 사람의 사서함을 확인해 봤죠.

좀 전에 통화한 혁이라는 꼬마애의 아빠였습니다.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혁아…. 아빠다…. 이렇게 음성을 남겨도 니가 들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오늘은 니가 보고 싶어 어쩔 수가 없구나. 미안하다 혁아, 아빠가 오늘 네 생각이 나서 술을 마셨다. 니가 아빠 술을 마시는 거 그렇게 싫어했는데. 안 춥니? 혁아. 아빠 안 보고 싶어??˝

가슴이 미어지는 거 같았습니다. 그날 하루를 어떻게 보낸 건지….

아마도 그 혁이의 엄마는 사용하지도 않는 호출기임에도 불구하고 앞에 녹음된 자식의 목소리를 들으며 매일 밤을 울었나 봅니다. 그걸 보다 못한 딸이 인사말을 지우려 전화를 한 거고요. 가슴이 매우 아프더군요.

일 년이 훨씬 지난 지금이지만 아직도 가끔 생각나는 잊히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 이혜영-유머 랜드 사랑 글 마당-시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