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석진국 씨는 자신의 사무실을 다른 변호사에게 고스란히 넘겼다. 법률 서적이며 사무집기, 직원들까지 그대로 남기고 뱀이 허물 벗듯 몸만 빠져나왔다. 올해 나이 마흔하나에, 변호사 경력 11년인 석 씨는 그렇게 변호사 인생을 일단락지었다. 섭섭이야 하지만 그야말로 시원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그에겐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니까.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앙동에 있는 헌책 위탁판매 서점 ´집현전´. 쉽게 말해 헌책방인 이곳이 석진국 씨의 새 일터이다. 예전의 그가 늘 말끔한 양복 차림이었다면, 요즘은 간편한 티셔츠에 때때로 목장갑을 끼고 얼굴에 검댕도 묻히며 산다. 하루에 바나나 상자로 몇 박권식 헌책들이 들어오는데, 그것들을 정리하다 보면 자연 그렇게 된다.
˝변호사 사회의 뿌리가 깊은 비리에 염증을 느끼고 깨끗한 직업인 헌책방으로 전업했다? 그건 아닙니다. 변호사를 그만둔 건, 무엇보다 제 적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죠.˝
석 씨는 서울대 천문학과 3학년 1학기에 휴학을 하고 입대를 했는데, 제대 무렵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했다. 복학은커녕 등 붙이고 잘 곳조차 없었다. 장남인 석 씨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가족을 극빈의 상태에서 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사법시험에 도전해보기로 한 것이다. 오직 배짱 하나만 믿는 말이다. 처음에는 삼촌 댁에서 수험생활을 시작했고, 나중엔 건국대 법학과에 입학해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수험준비를 시작한 지 3년 만인 ´85년 제2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원래 판, 검사가 될 생각이 없었으므로, 하루라도 빨리 변호사가 되어 가족들을 보살펴야 했다. 그래서 ´88년 다소 이른 서른 살의 나이에, 고향인 마산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다. 그 후,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소속으로 마산과 창원 지역의 노동 사건이나 학생, 전교조 사건들을 줄기차게 맡으면서, 노동변호사로서 명망을 얻었고 일하는 보람도 느꼈다. 하지만 법률 사무, 특히 소송사무를 오래 하다 보면 법률과 판례에 따라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옛날부터 해오던 관행대로 할 뿐이지 창조적인 방식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변호사가 전업을 생각한다. 하지만 변호사라는, 사회적으로 안정된 울타리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쉬운 예로, 법조인이라는 조건을 달고 돈 많은 집 규수와 혼인을 한 변호사라면, 결혼의 조건을 이행하기 위해서라도 변호사를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석 씨는 변호사 일에 갑갑증이 일었다. 그사이 집안은 많이 안정되었고, 어느새 자신이 마흔의 나이로 접어들었음도 깨달았다.
˝변호사를 그만두고 헌책방을 차렸다고 하면, 사람들은 제 위치가 크게 덜어진 것처럼 생각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수평 이동 내지는 미래지향적 상승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 북 쇼핑 사이트를 통해 책의 전자상거래가 활발하다. 하지만 헌책의 경우, 한마디로 정체될 수밖에 없는 유통 구조를 가졌다. 책을 한 뭉치 사가도 쓰레기 취급을 당하니 책을 맡기려는 사람이 드물다. 또한 분류나 관리가 잘 안 되어 원하는 책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책값을 놓고 주인과 실랑이를 벌여야 하는 등. 이런저런 이유로 헌책방이 점점 곰팡내 나는 곳이 돼 버린 것이다.
책값이 싸니 잠재적인 고객은 충분하다고 판단한 석 씨는, 손님이 직접 자기 책에 가격을 매기게 하고, 일정 비율의 판매 수수료를 받는 방식을 채택했다. 그리고 책방을 130평으로 대형화했다. 다양하고 많은 양의 책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해서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는 서가, 편안한 의자 그리고 작은 연못이 있는 정원, 집현전은 쾌적한 북카페를 연상시킨다. 가을부터는 홈페이지를 개설할 예정이란다. 틈틈이 무료 법률상담도 하는 석진국 씨는 만화책 읽기를 좋아해 틈날 때면 법률 만화를 위한 이야기 습작도 하고 있단다. 변호사 울타리를 벗어나니 보이는 게, 하고 싶은게 그렇게 많을 수가 없다는,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 신나는 나날이다.
/석진국 -샘터-변호사에서 헌책방 주인으로 변신한-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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