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디고 펑퍼짐하다.뻔뻔하고 당당하다. 파마머리에 숨넘어가는 웃음소리·버스든 지하철이든 자리만 나면 100m 달리기라도 하듯 뛰어가 엉덩이를 들이민다.아무리 많은 사람이 앞에 서 있어도 옆에 자리가 날라치면 멀리 있는 일행에게 ˝야야,여기 자리 났다˝ 고 외친다. 식당에서도 책상다리하고 보쌈을 싸먹을 수 있으며 드라마라면 사족을 못 쓴다.』
경향신문에 연제중인「그대 이름은 여자」시리즈에서 김윤덕 기자가 그린 우리 시대 아줌마의 평균적인 모습이다. 그동안 결혼해서 살림하는 여자의 비칭(卑稱)쯤으로나 쓰이던 아줌마가 요즘은 위기의 한국을 구할 억척 전사로 미화되는가 하면 더러는 가족이기주의에 얽매인 천민 계층으로 질타당하기도 한다.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아줌마들이야말로 우리가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친근한 이웃이요,가정을 지키고 자식을 키워낸 우리 어머니들의 자화상이라는 사실이다.
아내에 대한 잔정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으면서 전근대적 가부장적 질서를 고집하며 군림하는 남편 때문에 속상해하고 돈 많은 처가에서 데릴사위처럼 사는 맏아들이 못마땅하고,그러면서도 누군가가 자식들을 깔보는 듯한 낌새라도 보이면 분을 참지 못하고 마구 삿대질해대는 것이 바로 아줌마의 낯익은 모습이다. 이런 모습이 남의 눈에는 못마땅하게 비칠지 몰라도 아줌마들의 이런 극성이야말로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는 원동력이자 생명력이다.
아줌마들보다 요즘 텔레비전이나 신문으로 전해지는 몇몇「사모님」들의 비생산적인 일상과 행태는 부끄럽고 창피하기 짝이 없다.삼삼오오 커피숍에서 만나 한담을 하고 어느 고관의 관저에서 점심을 먹다가 일행 중 한 명의 옷을 놓고 어디서 얼마에 샀느냐로 화제로 삼는다. 점심을 끝낸 뒤 그 의상실로 몰려가 한 벌에 수백만 원씩 하는 옷을 입어보기도 하고 더러는 사기도 한 뒤,저녁에는 어느 유명 가수의 쇼를 구경하러 함께 갔다는 것이다.어쩌면 흔히 있을 수도 있는 이런 행적들이 시시콜콜 언론에 대서특필 되는 바람에 사모님들의 체면이나 상류계층 부인으로서의 품위도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국회 청문회에 불려 나왔던 어느 고관 부인은『죽고 싶다』라는 말로 자신의 참담한 심경을 피력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잘못된 처신으로 남편은 일패도지(一敗塗地)공직자로서 수십 년 동안 쌓아온 명예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말았으니 그 참담한 심경은 충분히 헤아리고도 남는다.그러면서도 우리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공직자 부인으로서 처신을 조심하고 삼가는 지혜를 왜 진작 깨닫지 못했느냐는 점이다.
역사가들에 의해 무가치한 엘리트의 전형으로 낙인찍힌 고대 로마 귀족계급의 부인들도 남이 보는 앞에선 삼가고 절제하는 모습을 연출하곤 했다. 평소 호의호식하며 지내던 귀부인들은 성직자나 신도들이 찾아오면 일부러 창백한 화장에 베옷을 입고 나가 그들을 맞아 검은 보리 빵과 냉수 한 그릇을 내놓았다고 한다.어쩌면 남에게 보이기 위한 위선으로 비치기에 십상인 이런「거행숭배의식」은 안일에 빠져 느슨해지기 쉬운 귀부인들의 일상을 다잡아주는 고삐 구실을 해주었을 것이다.
서로「형님 아우」하며 친하게 지내던 사이가 원수처럼 멀어지고 끝내는 청문회에 불려 나와 서로「네 탓이오」라며 삿대질하기에까지 이른 것은 남의 이목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언행을 삼갈 줄 몰랐기 때문이다.예부터 공직자들에겐 가학적일 정도로 엄격한 도덕률과 윤리의식을 요구하는 것이 우리의 문화 전통이 아닌가.
/ 이광훈 - 경향신문 -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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