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전쟁터에 갔을 때는 겨울이었다. 나는 처음에 끊임없는 사격 때문에 흥분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에 환멸을 느꼈다.
전에 나는 왜 인간이 어떤 이상을 위해서 살지 못하는가를 많이 생각해 보았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많은 사람, 아니 모든 사람이 이상을 위해서 죽을 수 있음을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이고, 자유스럽고, 스스로 선택한 이상이어서는 안 되고, 공동으로 받아들여질 이상이어야 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나는 내가 인간을 과소평가했던 것을 알았다. 임무와 공동의 위험이 그처럼 그들을 단일화하고 있었음에도, 나는 살아 있는 사람과 죽어가는 사람 중에 많은 사람이 운명의 의지에 가까이 가는 것을 보았다.
많은 사람, 아주 많은 사람이 공격 때뿐이 아니라 그 밖에도 약간 광기를 띤 굳고도 아득한 시선을 갖고 있었다. 그 시선은 목적 같은 것에는 전혀 무관심하고 거대한 운명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있는 듯한 눈길이었다. 그들이 무엇을 믿고 무엇을 생각하든지 간에- 그들은 각오가 되어 있었고, 유용했으며, 그들로부터 미래가 형성되고 있었다. 세계가 전쟁과 영웅주의와 기타 낡아빠진 이상을 향해 응결되어 있으면 있을수록, 또 가상적인 인류의 음성이 그만큼 멀고 비현실적으로 들리면 들릴수록, 그 모든 것은 전쟁의 외부적이고 정치적인 목적에 관한 질문과 마찬가지로 다만 피상적인 것에 불과했다.
깊은 곳에서 무엇이 생성되고 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인류와도 같은 무엇이었다. 나는 많은 사람을 볼 수 있었고 그중의 많은 사람이 내 옆에서 죽어갔다- 그들은 증오와 분노와 살해와 파괴가 그들 자신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대상도 목적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우연한 것이었다. 가장 원시적인 감정조차도 적에게로 돌려지지 않았다.
그 피비린내 나는 작업은 새로운 탄생을 위해서 광분하고 죽이고 파괴하는 분열된 영혼과 내부의 발로에 불과했다. 거대한 새가 알에서 뛰쳐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알은 세계였다.
세계는 파괴되어야만 했다.
우리가 점령했던 어느 농가 앞에서 나는 이른 봄바람에 보초를 섰다. 맥빠진 바람이 불규칙하게 멋대로 불었고 놀라운 플랑드르의 하늘에는 떼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구름 뒤에 어딘가에는 달이 숨어 있었다. 나는 종일 불안했었다.
무엇인지 모를 어떤 근심이 나를 방해했다. 지금 나의 어두운 초소에서 나는 여태까지의 나의 생활과 에바 부인, 그리고 데미안을 절실히 생각했다. 나는 미루나무에 기대서서 움직이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살며시 꿈틀거리는 밝은 하늘이 곧 커다랗게 솟아나는 일련의 그림으로 되었다가는 맥박이 이상하게 약해지고 비바람에 대해서 무감각해진 나의 피부와 번득이는 내면의 맑게 깬 의식에서 지도자가 내 근처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구름 속에서는 커다란 도시가 보였다. 그 도시에서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서 넓은 지역으로 흩어져 갔다. 그들의 한복판에 거대한 신의 모습이 반짝거리는 별을 머리에 달고 산처럼 크게 에바 부인의 표정을 띠고 걸어갔다. 사람들은 그 여자의 모습 속으로 마치 동굴 속으로 사라지듯, 사라져 들어가 버렸다. 여신은 땅에 몸을 구부렸다.
그 여자의 이마 위의 점이 밝게 빛났다. 어떤 꿈이 그 여자를 억누르는 것 같았다. 그 여자는 눈을 감았고, 그 여자의 커다란 얼굴은 고통에 일그러졌다. 갑자기 그 여자는 크게 소리 질렀고, 그 여자의 이마로부터 수천 개 빛나는 별이 쏟아져 나와 아름다운 곡선과 반원을 그으면서 검은 하늘이 날았다.
그 별 하나가 밝은 소리를 내며 바로 나에게로 날아왔고 나를 찾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소리를 내면서 수천 개의 불꽃으로 부서지고 나를 끌어당기고는 다시 땅바닥에 내던져졌다. 내 위에서 세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무너졌다.
/ 헤르만헷세 - 시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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