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는 남에게 보이지 않게 심어야 했다, 텃밭에 남에게 보이도록 넓게 많이 심으면 그 집 마님의 밤의 작태를 안다 해서 곧 음욕을 드러내는 것으로 알았다.
상추의 파종량은 마님의 음욕과 비례했다. 숨어서 자라야 했던 숙명 때문인지 상추의 속성도 은근(慇懃) 초였다. 의뭉스러운 사람이나 숨어서 매음하는 자를 뜻하는 은군자(隱君子)에서 얻은 이름이다.
특히 고추밭이랑 사이에 심은 상추일수록 약이 잘 오른 상품으로 여겨 서방님 밥상에만 고추밭 상추를 가려서 올렸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욕할 때 ´고추밭 상추 가리는 년´이라고 하면 곧 남편을 위하는척하며 자신의 음욕을 채우는 년이란 저의가 내포되어있었다.
우리 민속에 있어서 이런 상징의 침투는 오묘하고 다양하며 상추를 둔 민속하나만 보더라도 한편의 상징시를 읽는 느낌이다. 우리 선조들은 생활 자체로 시를 구현한 상징 시인들이었다.
상추는 삼국시대부터 먹어온 역사 깊은 채소로 고려 때 문헌에는 그로써 밥을 싸 먹는다는 기록이 적지 않다. 원나라 시인 (楊允孚)는 그의 시에서 상추쌈 싸 먹는 고려의 풍습이 원나라에 전래하여 크게 유행했음을 밝혀주고 있다.
´고려의 맛 좋은 상추를 되 읊거니와
산에 나는 새 박 나물이며 줄 나물까지 사들여온다.´
했다. 곧 상추쌈뿐 아니라 산나물 쌈까지, 맛 들여 수출했던 것 같다.
한식 문화의 특성으로 탕이나 찌개 같은 물기 음식과 김치, 간장 같은 발효 음식이 발달한 것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쌈 음식도 특유하고 독보적인 것으로 국제화 사회에 주목받을 만한 음식이 아닐까 싶다.
18세기 실학자 이익의 성호사설에서는 채소 중에 잎이 큰 것은 모두 쌈을 싸서 먹는데 상추쌈을 제일로 여긴다 했고, 19세기 작자 미상의 是議全書 등에 보면 상추쌈뿐만 아니라 곰취 쌈이나 양제채(羊蹄採)쌈, 산채는 물론 깻잎쌈, 피마자잎 쌈, 호박잎쌈, 배추쌈, 김치쌈 등 잎이 큰 것이면 모두 쌈이 된다고 적혀있다.
특히 구절판에서 보듯 각기 다른 8색의 각종 어육채소(魚肉菜蔬)를 얄팍한 부꾸미에 싸서 먹는 것은 쌈 문화의 미학으로서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우리 한국인의 의식주 생활에 일관된 특유한 구조적 공공인자(公共因子)를 가려볼 수 있다. 싼다는 것은 내부를 외부로부터 가리는 행위요, 곧 외향적인 외개문화(外開文化)에 대한 내향적인 내포 문화를 뜻하는 것으로 우리 생활문화의 기조가 되어온 것이다.
사립문이며 안방 문까지 열어 제쳐놓고 논밭 일을 나가도 훔쳐 갈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빈민까지도 울타리나 담을 쳐 놓고 사는 이유는 내부를 외부로부터 가리기 위한 쌈의 문화의 소산이다.
그리하여 ´장옷´이라는 온몸을 싸는 옷까지 생겼다. 이렇듯 내포(內包)형 문화의 음식에 대한 투영이 우리나라에만 별나게 발달한 쌈 문화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싶다.
/ 임영만 -시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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