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천사와 커피를 마셔본 적이 있습니까?
옛날하고도 꽁꽁 먼 옛날, 호랑이 담배씨 사러 다니던 옛날입니다.
함경도 함흥 땅에 한 옹기장이 부자가 살았습니다. 얼핏, 할아버지와 손자처럼 보이는 이 부자는 옹기그릇을 구우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진달래꽃이 활짝 핀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불러 앉혔습니다.
˝네 나이가 이제 일곱 살이 되었구나. 너도 곧 알게 되겠지만 옹기장이는 굉장히 천한 신분이다. 말이나 소도 때론 우리보다 나은 대접을 받기도 한다. 멸시를 당하지 않으려면 열심히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아들은 수염이 허옇게 난 아버지의 이야기를 새겨들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옹기그릇을 팔러 장에 나가면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이래라저래라, 헤라를 하고, 심지어는 아무 일도 아닌데 욕설을 하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아들은 그날부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공부라곤 해도 따로 선생님을 모실 형편도 못 되고 읽을 책이 많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적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전부터 읽혔을 천자문 책 한 권이 고작이었습니다. 아들은 천자문 책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아들이 열심히 공부하게 되자 아버지에게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아들에게 글씨 공부를 할 종이를 사 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네가 양반 집에 태어나기만 했어도 종이 걱정은 안 했을 텐데….˝
아버지의 이런 중얼거림을 듣기라도 한 듯 아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세상에 땅이 있다는 것은 너무 행복한 일이에요. 옹기를 구울 흙도 땅에서 나오고 종이가 없어도 글자 연습을 이렇게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요.˝
아버지는 아들의 작은 등을 힘껏 껴안아 주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 주는 아들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종이를 사 줄 수 없는 마음은 여전히 아팠습니다. 종이가 있다면 아들이 공부한 흔적이 그대로 남을 뿐 아니라 책으로도 엮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어느 날 자신이 빚은 옹기들을 굽기 위해 가마로 옮기던 옹기장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옹기그릇들의 거죽에 온통 아들이 쓴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충효전가[忠孝傳家] 』
『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
과 같은 글자가 정성스레 새겨진 옹기그릇들은 장터에서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많은 사람이 글자가 새겨진 물독이며, 항아리들을 대견하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불행은 다른 곳에서 찾아왔습니다. 글자가 새겨진 옹기그릇들을 보고 고을 원님을 비롯한 양반들이 성깔을 부렸던 것입니다.
˝상놈 주제에 공부한다고, 이런 고얀 것들.˝
아버지는 동헌에 붙잡혀 가 곤장을 쉰 대나 맞고 풀려났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행복했습니다. 글자가 새겨진 옹기들을 장에 내다 팔 수는 없겠지만, 아들이 공부한 흔적을 남길 방법들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또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곤장을 맞고 풀려 난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한 스님이 옹기장이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스님은 옹기장이의 상처에 바를 몇 가지 약을 준비해 왔습니다.
˝당신과 당신 아들이 만든 옹기그릇들에 대해서 이미 소문을 들었습니다. 내가 찾아온 것은 한 가지 부탁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귀한 약까지 주시고……. 그래, 부탁은 어떤 일입니까?˝
옹기장이는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벽에 기댄 채 공손하게 물었습니다.
˝우리 절에서 쓸 옹기 항아리를 구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옹기 항아리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자리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바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따로 말씀을 드릴 것이 있습니다. 항아리 표면에 글자를 새겨 달라는 것입니다.˝
스님을 말에 옹기장이는 얼른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관가에 끌려가 매를 맞은 지 사흘밖에 되지 않았는데 다시 글을 쓴 항아리를 만들었다가 무슨 일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써 달라는 글은 다른 글이 아닌 불경입니다. 반야심경이라는 불경이 있는데 그 불경을 세 개의 항아리에 나누어 써 주시면 그 은혜가 무척 크겠습니다. 대신 보답은 꼭 하겠습니다. 저희 절에 큰스님이 계시는데 학문이 무척 높으십니다. 아드님이 계속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큰스님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옹기장이는 그 자리에서 항아리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관가에서 알더라도 글공부가 아닌 불경을 새긴 것이니까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아들의 공부를 도와주겠다는 말은 무엇보다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다음 날 옹기장이는 세 개의 항아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매 맞은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았지만, 아들이 하루빨리 공부를 할 수 있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옹기장이가 만든 옹기 항아리에 아들은 스님이 가져다준 반야심경을 정성껏 새겨나갔습니다. 항아리가 완성되었을 때 절에 있는 스님들은 모두 크게 기뻐했습니다.
옹기장이의 아들은 큰스님의 제자가 되어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큰스님은 나이가 여든이 넘었는데도 옹기장이의 아들에게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책을 읽을 수 있게끔 도와주었습니다.
세월이 꽤 흘렀습니다. 큰스님이 세상을 떠난 지도 다섯 해나 지났습니다. 나라에서 과거를 본다는 방이 고을마다 붙었습니다. 아들은 과거를 보러 임금이 계신 서울로 떠났습니다. 다 늙어 이제는 옹기그릇 하나를 빚기도 힘든 아버지가 손을 허옇게 흔들었습니다.
과거장에는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대화 내용은 시험 문제가 과연 무엇이겠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열심히 공부한 문제가 출제되기를 바랐겠지요.
이날 시험 문제는 ´불 속에서 학문을 닦는다´라는 주제로 시를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과거장에 모여든 모든 사람이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출제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불 속에서 어떻게 학문을 닦지?˝
˝그건 죽으라는 말과 다름이 없어.˝
사람들은 웅성거렸습니다.
오직 단 한 사람, 옹기장이의 아들만이 이 시험 문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옹기 가마 속에서 불길로 타오르던 그릇들, 그 그릇들에 글자를 새기던 자신과 아버지의 모습이 환히 떠올랐습니다. 아들은 제일 먼저 답안지를 제출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한 답안지를 읽고 또 돌려 읽으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찾고자 하는 인재를 비로소 찾았다는 생각에 무릎을 쳤습니다.
그 답안지의 주인공은 바로 옹기장이의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은 장원으로 급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옹기장이의 마을은 온통 뒤집혔습니다. 사람들은 마치 제 일처럼 축하해 주었습니다.
백마를 타고, 멋진 관복을 입은 옹기장이의 아들이 풍악을 울리며 마을에 당도했을 때 이 잔치의 또 한 주인공인 옹기장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버님! 아버님!˝
옹기장이 아들의 부름 소리에도 옹기장이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아들이 옹기장이를 찾은 곳은 가마터 안이었습니다. 아직도 잔불이 채 스러지지 않은 가마 입구에서 노인은 기도하듯 손을 모은 채 쓰러져 숨져 있었습니다.
과거장의 시험 문제가 왜 ´불 속에서 학문을 닦다´가 되었는지 비로소 알게 된 아들이 재처럼 푸석한 아버지의 등을 힘껏 껴안았습니다. / 작자미상-시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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