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아는 오늘도 동네 아이들의 몸살에 정신이 없다. 밥아가 아이들과 만나게 된 계기는 이렇다.
몸 빛깔은 새하얀 것 같은데 얼마나 오랫동안 집을 나와 있었는지, 염색을 한 두 귀 끝은 시커멓고 가로등 불빛에 보았는데도 허기에 지쳐 아무 손에나 덥석 와 안겼다.
마침 동네 사람들과 술을 한잔하고 있는데 녀석이 작은 몸을 이끌고 와 발밑에서 킁킁거리기를 몇 분, 옆에 있던 아저씨가 쥐포 부스러기를 하나 내려주자 덜컥 받아먹고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 자리가 끝날 때까지 그 근처를 맴돌았는데 우린 그때까지만 해도 집주인이 한눈을 판 사이 나온 강아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녀석에게서 눈을 떼지 않아서인지 먹을 그것이 없어졌다고 생각했는지 다른 곳으로 킁킁거리며 가고 있었다. 내 개도 아닌데 얼른 가서 잡아 오는 데 마침 빗줄기가 강해지고 있어 술자리도 자연스레 끝맺을 수 있었던 참이었다.
˝ 거 녀석 비 맞고 안 되겠는걸. 녀석 좀 데려가자 그래요. 집 나온 거 같은데 번린 것 같기도 하고 지가 나온 것 같기도 하네. 비 오는데 내버려 두면 쫄딱 맞고 덜덜 떨다 버려지기에 십상이지. 거 주인이 누구인지 안 버렸다면 무척 애타겠는걸. 허허 ˝
어느새 녀석은 그 더러운 몸으로 내 품 안에 와 얌전히 있다. 그러고 보니 올해 들어 개와의 인연이 벌써 세 번째가 아닌가. 사람 인연이든 아니든 참 우습기도 하고 뭔가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스쳤고, 전에 사용하던 개 샴푸로 녀석을 목욕시키고 방에 두었는데 훈련이 잘되어서인지 현관에서 오질 않는다. 그때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뭐 또 개야? 야. 그 개 나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원. 뭔 인연이 사람 인연은 못생기고 개 인연이라느냐.˝
그런저런 사이에 녀석을 내 커뮤니티 이름 중 한 자를 따서 ˝밥아˝로 지었다. 호격을 따로 넣지 않고서라도 쉽게 부를 수 있고, 어디서나 밥값을 하라는 의미로. 그런데 문제는 녀석의 본래 거처를 모른다는 것이다. 슈퍼 아저씨는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하다고 하고 내 집이긴 하지만 세를 사는 나로선 옆집 할머니의 성미로 강아지 소리를 받아주실 것 같지 않으므로 당분간도 기를 수 없어 곤란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언젠가 미미(밥아 먼저 있던 개. 목욕 후 다음 날 사라짐)의 사라짐을 안타까워하며 울먹이던 소영네가 생각났다. 라면을 사러 간다며 집에 들른 소영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말해주며 키워볼 거냐고 했더니 일단 병원부터 가보자고 한다. 결국 밥아는 병원에서 양호한 건강 상태를 인정받았다. 나이는 두 살에서 세 살 사이. 터럭을 자르고, 예방 접종을 하고 소영네로 옮겨지고 나니 더 작아 보인다.
그날 오후 주워온 거라는 말 대신 이모의 선물이라 하잔다. 주워온 거라면 이상하다며 소영이 엄마가 그러잔다. 아이들은 정말 키워도 되냐면서 반은 의심, 반은 기뻐 날뛸 정도다. 워낙 깔끔한 소영네인데 사실 걱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딸이 둘 있는데 매일 목욕하는 터라, 어쩌면 밥아도 매일 목욕하게 되는 건 아닌지, 그래서 감기나 들지 않을까. 하지만 의외로 잘 지냈다.
녀석이 길들은 터럭이 없어서인지 많이 떨어댄다기에 아이들 옷 중에 안 입는 걸 입혀주랬더니 정말 헐렁한 티셔츠를 입은 아이 같다. 그러길 이틀이 지나 좋은 소식이 들렸다. 강아지 주인이 나타났는데 그냥 키우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집엔 개가 세 마리가 있었는데, 큰 개에게 물려 두 마리 새끼를 그날 -밥아을 발견한 날- 살며시 문을 열고 내보냈다는 것이다. 그 집에도 딸이 하나 있는데 만약 근처에서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알면 울고불고 난리일 거라면서 그래도 좋은 사람에게로 가서 고맙다고 하더란다.
주워온 거라 조마조마하다던 소영이 엄마는 한시름 놓고 본격적으로 밥아를 돌보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정서에 좋다면서 모두가 품 안에 안아보게 하고, 아이들이 어려서 덮던 이불을 푹신하게 만들어 밥아 잠자리를 깔아주고 아이들과 산책을 시키고 오늘은 양쪽 귀와 꼬리에 염색을 해줬단다. 성질이 급해서 밥아는 이기지 못했는지 분홍색이라는 데 노란색이 되어있었다. 그래도 너무 예쁘다.
차 한잔하러 갔다가 가지고 간 카메라로 사진 몇 장 찍어줬다. 어색한지 활짝 웃지 않은 아이들. 그래도 매일같이 아이들끼리만 놀다가 밥아가 그들 놀이에 들어있으니 더없이 좋을 것 같다. 사실 밥아 입장에선 요즘 무척 피곤할 거다. 동네 아이들의 강아지가 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까이 사는 소희(신묵초·2학년 1반. 여덟 살)의 친구 다슬(신묵초 1학년 2반. 여덟 살)기와 그 오빠와 아이들. 골목이 떠들썩하도록 데리고 돌아다니는가 하면 어젠 묵동 삼거리 축제에도 데려갔다고 한다. 어쩌면 전 주인집에서 움츠려 살던 밥아가 적어도 사랑 부족증은 겪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아직은 다섯 살인 소영이는 며칠 전만 해도 무섭다고 안지도 않더니 요즘은 다슬이가 데려가 산책시킨다고 하면 잘 만지지도 못하면서 울어댄다. 오늘도 몇 차례 울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다슬이와 소영이는 밥아를 데리고 골목에서 놀고 있다.
노란 띠의 소희는 태권도장에 갔기 때문에 차지가 된 것이다. 하지만 다섯 시가 되면 어김없이 소희를 위해 집에 데려다 놔야 한다. 그래야만 울음소리를 듣지 않을 테니.
사진에서 뽀뽀하라는 다슬이의 말에 쑥스러워하는 소희. 환한 웃음의 아이들의 친구 밥아.
때론 사람보다 다른 무엇이 위로되고 사랑이 되는 걸 보게 된다. 아이들도 사랑을 받기만 하는 것보다 줄 수 있다는 것과 사랑을 주고받음에 익숙하고 화가 나서 발로 차는 그런 개가 아니라, 품에 꼭 안고 사랑해줄 수 있는 마음을 배울 수 있어 좋다.
지금도 어딘가를 떠도는 길 잃은, 그리고 내버려진, 강아지들이 있을 거다. 주인도 아닌 데 내가 뭘 하지 말고 우선은 데려다 따듯한 물로 목욕이라도 시키고 밥 한 끼 먹여 내보내 줄 수 있었으면 싶다. 내게 와 한 저녁 목욕과 밥 한 끼 뒤로 사라져버린 미미를 추억하며 이 글을 마친다.
/ 김명신 - 빛고을 햇살 천사 - 시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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