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다리를 저는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어느 날 냇가에서 물에 떠내려오는 흰 구름을 보았다. 소녀는 항아리 속에 흰 구름을 물과 함께 떠 담아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소녀는 아무도 몰래 흰 구름을 우물 속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는 기쁜 일이 있을 때나 슬픈 일이 있을 때면 우물가로 나가서 흰 구름하고 이야기하며 지냈다.
하루는 흰 구름에 물어보았다.
˝어떻게 살면 행복해지니? 알고 싶다고 말해다오.˝
˝좋아, 내가 깨닫게 해주지.˝
흰 구름이 일어나서 바깥으로 나왔다. 그러자 우물 속이 빈 화면이 되었다.
동전 하나가 나타났다. 양쪽 얼굴이 각각 다른 동전이었다. 한쪽은 웃는 표정이었고, 한쪽은 찌푸린 표정이었다.
동전은 때굴때굴 굴러서 뜨락에 섰다.
˝볕이 드는군. 고맙기도 해라.˝
웃는 얼굴이 말하자 찌푸린 얼굴이 투덜거렸다.
˝무슨 놈의 햇볕이 이렇게 시들해. 활짝 좀 쏟아지지 못 하고서.˝
바람이 불어왔다. 단풍잎을 흔들었다.
웃는 얼굴이 말했다.
˝상쾌한 바람이야. 산 너머의 소식이 단풍 물을 들이네.˝
찌푸린 얼굴이 말했다.
˝빌어먹을, 웬 바람이 이렇게 차담.˝
동전은 때굴때굴 굴러서 언덕 위로 올라갔다.
찌푸린 얼굴이 말했다.
˝먹지 못하는 풀이 왜 이렇게 많아.˝
웃는 얼굴이 말했다.
˝여기는 더덕이 있고, 저기에 고들빼기가 있네.˝
해가 서산마루에 걸렸다.
웃는 얼굴이 감탄했다.
˝아, 저 해 지는 아름다운 풍경 좀 봐. 이제는 또 별을 보는 기쁨이 오겠네.˝
찌푸린 얼굴이 말했다.
˝해가 청승맞게 지는군. 지긋지긋한 밤이 또 오겠지.˝
돌아오는 길에서 웃는 얼굴이 말했다.
˝한 다리가 성하니 나는 행복하다. 어머니가 계시니 행복하다. 코로 향기를 맡을 수 있으니 나는 행복하고, 뜨거운 물을 마실 수 있으니 또한 행복하다.˝
찌푸린 얼굴이 말했다.
˝한 다리를 저니 나는 불행하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으니 더더욱 불행하다. 왼쪽 귀가 약간 먹었으니 나는 불행하고 찬물을 마셔야 하니 역시 불행하다.˝
소녀는 우물에 기대어 잠깐 잠이 들어 있었다. 소녀의 얼굴이 웃는 표정이 되어 우물 속에 떠 있었다. 흰 구름이 살며시 소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 있었다./정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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