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갓난아이 때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난 할머니·할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두 분의 손녀에 대한 사랑은 더할 나위 없었지만 두 노인이 꾸려 가는 빤한 살림으로는 어린 손녀의 뒷바라지가 늘 힘에 부쳤다. 그런 경제적 어려움 탓일까? 나는 커 가면서 예쁜 것, 먹는 것에 대한 욕심이 늘었고, 과자를 훔치는가 하면 친구들의 인형이나 공책 등에 손을 댔다. 어느 날은 이웃집 물건에 손을 댔다가 할머니가 딸 같은 이웃집 아주머니 앞에서 무릎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일도 있었지만, 내 손버릇은 고쳐질 줄 몰랐다.
그런데 초등학교 2학년 때 내 삶이 바뀌는 일이 일어났다. 내 짝 정민이는 2교시 뒤에 있는 간식시간마다 엄마가 싸 준 곰보빵을 참 맛있게 먹곤 했다. 어찌나 먹고 싶던지 어린 자존심을 뒤로하고
“정민아! 나 한입만 주어라!”
해보았지만,
“먹고 싶으면 너희 엄마한테 싸 달라고 그래라”
하며 돌아앉아 버렸다.
다음날 간식시간, 주인 없는 정민이의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안 될 일이었지만 그 달콤한 향기에 이끌려 친구들이 수선스러운 틈을 타 정민이의 곰보빵을 한입에 넣어 버렸다. 쌀이 떨어져 아침밥도 구경 못 한 내게 그 빵은 그야말로 천국의 음식이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정민이의 곰보빵은 내 것이 되었다.
며칠 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우리 엄마가 너 좀 보재”
하며 정민이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는데, 정민이네 엄마는 나를 가만 안으셨다.
처음으로 안겨 본 엄마의 품은 구름 솜처럼 따스하고 포근했다.
“민희야. 이 아줌마가 내일부터 우리 민희한테 선물을 줄 거야. 엄마가 주는 거로 생각하고 받아 주었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이후, 정민이가 함빡 웃으며 내 앞에 내놓은 것은 딸기잼이 풍성한 샌드위치였다.
난 그때 사랑을 나누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 그분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 남의 물건에 욕심을 내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았을까./주민희 서울 서대문구 홍은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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