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현 9단과 이창호 9단은 하늘이 맺어준 스승과 제자라고 한다. 하지만 이창호는 조훈현의 제자가 되어 바둑을 배운 지 6년 반 만에 바둑 최고위 타이틀에 이어 국수위마저 스승에게서 건네받았다. 그들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지만 대결에는 한 치의 양보가 없었다.
전통과 명예를 자랑하는 국수전에서 조훈현과 이창호가 만났을 때의 일이다. 이창호 9단은 국수위 6연패를 위해서 스승과 불꽃 튀는 접전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 중요한 대국을 앞두고도 이창호는 조훈현의 곁에 서서 스승이 하는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바둑을 두지 않는 순간에는 그는 항상 제자로 있었다.
대국이 시작되자 스승과 제자의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긴장한 표정이 뚜렷해졌다. 아침에 시작한 대국은 점심을 먹기 위해 잠시 중단되었을 뿐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자 저녁이나 먹으러 가지.”
조훈현이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데 표정이 밝았다. 그가 이겼을까?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 오랜 승부의 길에 이력이 난 조훈현은 지고도 이긴 사람같이 보일 때가 많았다.
식당에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갔다. 이때는 이미 승부 결과가 나왔지만, 식사 중에는 누구도 바둑에 대해서 말을 꺼내지 않았다.
가끔 가벼운 농담이 오고 갔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날 이창호가 스승 조훈현에게 졌다는 것은 그와 마주 보며 식사하는 편안한 표정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이창호가 맘 편히 식사하는 경우는 그가 졌을 때였다. 스승을 이기고 스승 앞에서 그는 밥을 편히 먹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하이얀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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